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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영]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
주성철 사진 오계옥 2014-02-03

박보영

<피끓는 청춘>의 영숙은 작지만 또래들의 ‘짱’이다. <과속스캔들>에서도 아들 하나를 억척스레 키운 어린 엄마였지만, 이번에도 집안 식당 일과 학교 불량서클 일 모두를 관리하느라 힘들다. 그에 비하면 <늑대소년>은 너무 편한 동화의 세계였다. 무표정한 얼굴로 무리를 끌고 다니며, 손에는 비장의 무기인 뾰족한 컴퍼스를 든 영숙은 영락없이 ‘일진’이다. 하지만 박보영은 ‘일진’이라는 표현이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다. “영화를 보면 아시겠지만, 영숙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가 캐릭터 이해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말장난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영숙은 일진이라는 사나운 단어로 묘사하기에는 딱히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정의로운 쪽에 가깝다. 그저 어쩌다보니 짱의 자리에 오르게 된 여자다. “제작발표회 때부터 ‘일진이냐?’는 질문에 뭐라고 딱히 답을 못했다. 그 단어에 거부감이 있었다기보다 영숙 캐릭터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영화를 보면 바로 내 얘기를 이해하실 텐데. (웃음) 아무튼 어렸을 적 너무나 순진했던 영숙이 왜 불량스럽게 변했을까, 왜 그리 친했던 중길이 영숙을 멀리하게 됐는지, 영화 속에는 비워진 6~7년 정도의 시간이 있다. 나로서는 그 시간을 유추하는 게 가장 큰 숙제였다. 영숙이 왜 그렇게 됐을까.”

<피끓는 청춘>이 화제를 모으고 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주연배우들의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 연기다. 이종석에 비해 실제 충북 증평 출신인 박보영은 ‘말수는 적지만 제대로인’ 사투리를 구사한다. 캐릭터 자체는 도전이었지만 바로 그 ‘출신’으로 인해 용기를 냈다. “영화 출연을 결정하기 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물어보는 편이다. 이전과 달리 너무 센 역할이라 말리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 반대도 많았다. 내가 충청도 시골 출신이다보니 말투나 행동에서 종종 그런 게 묻어나오니까 잘하겠다는 거다. 난 전혀 모르겠는데 주변 사람들은 티가 많이 난다더라. (웃음)” 그런데 그래서 오히려 더 힘들었다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처음에는 정말 능수능란하게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연구를 하다 보니 내가 살던 충북과 영화 속 배경인 충남의 사투리에 차이가 있더라. 충남쪽은 약간 전라도 사투리와 섞인 느낌이 있다. 오히려 내가 충청도 출신이라 그런 것까지 캐치하려 드니까 더 힘들었다.” 당사자는 너무 잘 알지만 관객은 눈치채기 힘든 디테일이랄까. 그 역시 박보영의 완벽주의자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일화일 것이다.

사실 영숙은 영화에서 가장 복합적인 캐릭터다. 다른 배우들은 일정한 톤으로 쭉 달려가는 느낌이지만, 영숙은 학교의 거친 불량소녀이면서 집에서는 식당 일에 지친 딸이다. 가장 속내를 알기 힘들고 겉으로 드러나는 변화의 폭이 큰 인물이랄까. 그래서인지 영화 속 진행순서를 거의 무시하고 나아갈 수밖에 없었던 촬영과정이 특히 힘들었다. “1982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여서 그런 로케이션을 전국 방방곡곡 어렵사리 찾아다니다 보니 특정 지역에 도착하면 거기서 찍어야 할 분량을 모두 처리하고 마치 유랑극단처럼 딴 곳으로 이동해야 했다. 그래서 내 첫 촬영은 느닷없이 막걸리 배달 가는 장면이었다. (웃음) 그렇게 감정선이 뒤죽박죽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전체 그림을 봐야 하는 훈련을 배우로서 혹독하게 한 셈이다.”

인터뷰 내내 박보영이 영숙에 대해 쉬지 않고 한 얘기는 ‘멋있다’였다. “<늑대소년>과는 반대로 <피끓는 청춘>의 영숙은 자기가 다칠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사랑하는 남자를 지키려 한다. 보호당하는 여자가 아니라 보호하는 여자라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었다. 어떨 때는 뒤끝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쿨’하다. 이제껏 연기했던 그 어떤 캐릭터보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서 ‘참 멋지네’라는 얘기가 나온다.” 그러면서도 영숙이 중길에게 잘 보이려고 화장을 하고 원피스를 입은 모습, 중길과 소희 사이를 방해하려고 운동회 장기자랑 시간에 갑자기 율동까지 하며 노래 부르는 모습은 귀엽기도 하다. 말하자면 이제껏 보아온 박보영의 모든 모습이 영숙에게 담겼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홀가분함을 느낀단다. “할까 말까 가장 고민했던 작품이다. 그동안 해온 것들이 깨질 수 있다는 걱정도 했다. 하지만 배우로서 좁은 길을 가긴 싫었다. 이젠 이보다 더한 선택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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