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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 x cross] 사람을 따뜻하게 만드는 것, 어려워요
이주현 사진 백종헌 2014-02-24

<동백 아저씨> 무대에 올리는 연극연출가 박근형

“연극 보러 오셨어요?” “아뇨. 술 마시러 왔어요.” 2월8일, 연극 <동백 아저씨>가 공연되는 대학로 선돌극장 입구에서 배우 윤제문과 나눈 짧은 대화다. 박근형의 제자인 이은준 연출가는 그가 “애연가이며, 휴머니스트이며, 평범한데 특이하다”라고 했다. 동료 연극인들이 입을 모아 좋아한다 말하고, 존경한다 얘기하는 박근형. 그는 극단 골목길의 대표이자, <> <청춘예찬> <선데이 서울> <경숙이 경숙 아버지> 등의 극을 쓰고 무대에 올린 연극연출가다. 그가 2월1일부터 23일까지 선돌극장에서 연극 <동백 아저씨>를 선보인다. 이은준 연출가의 번안극 <소설처럼>과 함께 이어 공연되는, 60분 남짓의 짧은 창작극이다. 2월14일부터 15일까지 충무아트홀에선 앙상블 시나위의 <두 여자의 노래>도 연출한다. 바쁘게 대학로와 충무아트홀을 오가며 작품 준비 중인 박근형 연출가를 만났다.

-토요일(2월8일)에 예기치 않게 눈이 많이 내렸는데 객석이 꽉 찼습니다. =네, 기분 좋았습니다.

-윤제문, 이대연, 정석용 배우도 극장에 얼굴을 비췄습니다. 이대연씨만 연극을 관람하던데요. =초대한 건 아니고 그날 제문씨랑 저녁 먹기로 했었어요. 같이 저녁 먹으면서 소주 한잔했습니다. 공연할 때 저희는 술 마셨어요.

-공연 중에 극장에 안 계셨다는 말씀인가요. =네. 배우들이 알아서들 잘하니까 괜찮습니다.

-영화 팬들에겐 윤제문, 박해일 등 배우들의 선생님으로 유명합니다. 연극으로 시작한 제자들이 영화나 TV에 더 자주 얼굴을 비추는 게 서운하진 않으세요. =그렇지 않고요. 연극이 중요한 기초예술이지만 방송이나 영화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연기력, 능력을 보여주는 건 좋은 거죠. 그리고 제문씨는 지난해에 같이 연극(<피리 부는 사나이>)을 한편 했어요.

-<동백 아저씨>는 낮에는 도장을 파고 밤에는 낡은 여관방에 제 몸을 뉘이는 마흔 넘은 남자 이동백과, 동백이 머무는 여관의 주인, 여관 주인의 다중인격 아들, 동백이 돈을 주고 관계 맺는 아가씨, 네 인물의 남루하고 비참한 현실을 비추는 작품입니다. 이 이야기는 어떻게 구상하셨나요. =연습실 근처 술집에서 주인 아주머니가 <가요무대>를 보시기에 저도 어깨너머로 봤죠. 이미자 선생의 음악인생 50년이던가 그랬는데, 그날은 <동백 아가씨>의 가사를 유심히 봤어요. 스토리가 느껴지더라고요. 인터넷을 뒤졌는데 거기 장사익 선생이 부른 동영상도 있더군요. 동백 아가씨? 아가씨여야 하나? 아저씨면 안 되나? 그렇게 공상을 시작했고 연극을 만들게 됐습니다.

-연출의 글에 이렇게 썼습니다. “속이 상하면 마음을 등집니다. 마음을 등지면 그 누구와 마주하고 있어도 그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무엇을 서로 읽을 수 있나요? (생략) 그런 사람들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연출의 글에 상세한 주석을 달아준다면요. =세상이 많이 변한 것 같은데, 아주 빠르게 변하고 풍요로워진 것 같은데 하등 변한 게 없는 것 같더라고요. 좋은 옷, 좋은 신발, 좋은 차를 타고, 날씨와 상관없이 자기가 원하는 온도 속에서 살고 있지만 실상 그게 다 껍질 같은 느낌이고. 더 각박해진 것 같고. 안은 더 메말라가고. 속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번듯하게 살고 있는 이면, 지금도 넉넉지 못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뤄보자해서 썼습니다.

-주인공 이동백은 도장 파는 일을 하는 남자입니다. 고아라 자신의 진짜 이름은 모르고, 오랜 기간 남의 이름만 파주던 사람입니다. 하고많은 직업 중에 이동백에게 도장 파는 일을 맡긴 이유는 무엇인가요. =딱히 어떤 이유는 없었고요. 저도 예전에 도장기술을 한번 배워볼까 생각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요새는 도장이 많이 필요하지도 않고, 간혹 목도장이 필요해 파러 가면 기계로 다 하더라고요. 수작업으로 하는 일, 그 기술로 먹고사는 사람들은 일감이 적어질 텐데 싶었습니다. 그렇게 세상 속에서 설 곳을 잃어가는 업종의 하나를 생각해본 거죠.

-<동백 아저씨>는 비극적 결말을 보여줍니다. 잠깐 희망을 주는 듯하다가 모두 절망에 빠뜨립니다. 현실에선 굉장한 휴머니스트라고 들었는데, 비극적 기운과 우울감이 언제나 극을 지배하는 것 같습니다. =휴머니스트도 아니고…. 글쎄요, 왜 연극을 자꾸 그렇게 만드는지 모르겠어요. 밝고 재밌고 그래야 하는데. 어렵죠. 코미디 만드는 게 어려워요. 아마 그래서 그런 것 같아요. 햇빛정책이 어려워요. (웃음) 사람을 밝게, 따뜻하게 만드는 것 말이에요.

-동시대를 살아가는 서민들, 조금은 “불쌍한 사람들”의 얘기에 천착해오셨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예술가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요.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고. 제가 강남에선 한번도 안 살아봤거든요. 지금도 강남 지리를 몰라요. 제가 속한 극단 이름이 골목길이듯이 아직도 뒷골목이 편해요. 어린 시절부터 쭉 그렇게 살아왔고 제 주변 벗들도 대부분 저와 같은 환경이고. 그런 정서에 익숙한 거죠. 그러다보니 극중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체적으로 소시민이거나 무기력하거나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 사람들이 보통의 우리라고 생각하고요.

-상업적인 연극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으세요. =있죠. 제가 연극을 가려서 하지 않아요. 번역극도 하고 상업극도 해요. ‘저건 내가 못해, 자신 없어’ 그러지만 않으면 해요. 어떠한 형태의 연극이든 중요한 건 거기 나오는 사람들이 뜬금없는 사람들이 아니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연극의 정서가 지극히 관객이 납득할 만한, 공유할 만한 정서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는 게으르다고 하셨지만 다작하는 극작가이자 연출가입니다. =다작이 문제가 아니라 질이 좋아야 하는데 불량연극만 요새 계속 만들고 있습니다.

-2월14~16일엔 국악그룹 앙상블 시나위의 공연 <두 여자의 노래>를 연출합니다. =말이 연출이지 여기 와서 제가 정화돼요. 앙상블 시나위의 음악이 좋아서. 이 사람들 음악 들으러 오는 거고, 이분들의 연주 그냥 바라보는 거예요.

-다음 작품도 정해지셨습니까. =4월1일부터 두산아트센터에서 <베키 쇼> 연극을 연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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