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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외언(言外言)의 순수, 혹은 세련 <집으로…>
2002-02-22

화제의 신작 첫 시사회 관람평 - 이정향 <집으로…>

‘집으로’ 가는 길은 이정향 감독에게도 일곱살 소년 상우에게도, 멀고 고생스러웠다. 그러나 <미술관 옆 동물원> 이후 4년을 잠행한 이정향 감독이 지난 2월15일 시사회에서 공개한 신작 <집으로…>(4월 개봉예정)는, 두 사람의 여행이 소박하지만 나름대로 충일한 것이었다고 말해준다.

영화는 기찻간에서 출발한다. “귀머거리는 아냐?“ “그럼, 그냥 벙어리야?” “안 무서워?” 생활고에 떠밀려 산골의 노모에게 아들을 떼어놓으러 가는 심란한 엄마에게 상우(유승호)는 함부로 묻는다. 엄마는 젊지만 지쳐있다. 아이는 나이답지 않게 휘파람을 잘 분다. 아마 혼자서 연습할 시간이 많아서이리라는 짐작이 닿으면 보는 이의 마음이 서늘해진다. 촌 아주머니들의 우악스런 수다와 장닭의 몸부림으로 뒤숭숭한 버스 구석에 웅크려 도착한 상우를 기다리는 것은, 들리되 말하지 못하는 할머니(김을분)와 ‘없는 것’ 투성이인 시골의 궁상이다. 할머니는 “자고 가라”고 바싹 마른 손으로 베개를 그려 보이지만 엄마는 콜라와 과자, 햄 통조림이 든 보따리와 상우를 남겨두고 황망히 도시로 돌아간다.

이 돌연한 동거는 도대체 가망이 없어 보인다. 할머니 허리가 낫 모양으로 휜 까닭에 일곱살 상우와 일흔일곱살 외할머니의 키는 나란하지만, 두 사람은 좀체로 눈을 맞추지 못한다. 이정향 감독은, 심술로 입술을 앙다문 손자를 화면 ‘상석’에 놓고 할머니를 줄곧 주변에 어른거리게 한다. 할머니의 나뭇가지 같은 손목은 연신 사탕을 들이밀고 요강을 챙겨주고 김치를 찢어 밥에 얹어주지만, 상우는 외면하거나 내친다. 난데없이 춘희의 공간에 침입해 월권행위를 저지르는 <미술관 옆 동물원>의 철수는 감히 따를 수 없을 만큼 어린 상우는 얄미운 패악을 부린다.

이쯤해서 <미술관 옆 동물원>의 달콤한 추억을 안고 극장을 찾은 관객은 뜨악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데뷔작에 마법을 걸었던, 마치 옷에 풀물이 들듯이 미세하게 변해가는 관계를 스케치하는 이정향 감독의 능력은 이 외지고 느릿한 세계에서 그대로다. 아니, 어쩌면 더욱 세련됐다. 로맨틱한 논쟁과 동화적인 직유로 무장한 <미술관 옆 동물원>가 ‘언어’로 무장한 영화라면, 어린아이의 투정과 할머니의 ‘말없음표’ 뒤에 심리적인 사건들을 살짝 묻어놓은 <집으로…>는 ‘언외언(言外言)’에 관심을 보인다. 지팡이로 겨우 운신하는 할머니는 물건을 집어들거나 사람에게 다가가는 데에 오래 걸린다. 하지만 그녀는 고집스러우며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그 낙숫물처럼 고요하고 집요한 반복이 결국 철부지에게 응석을 멈추고 할머니를 염려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과정을 전하는 연출 리듬은 관객을 놓치지 않을 만큼 눈치 빠르며, 밝고 탄력 있는 영화 음악이 만들어내는 ‘정중동’이 충실한 어시스트 노릇을 한다. 그런가하면, 평생 영화를 한번도 본 적이 없다는 김을분 할머니의 스크린 속의 움직임은 훌륭한 ‘연기’는 아닐지라도 훌륭한 연기를 고민하는 이들이 눈여겨보아야 할 작은 교훈을 품고 있다. 벌레를 죽도록 겁내는 상우는 감독의 분신이며 할머니는 그녀가 사랑하고 2년 전 여읜 외할머니의 현신이다. 이정향 감독은 영화 인생의 어디쯤에서 한번쯤은 꼭 <집으로…>를 만들었을 것이다. 만약 <집으로…>에 그려진 할머니네 마을의 순박한 풍경에 ‘이국 취미(exoticism)’의 혐의가 보인다면 그것은 이미 서랍 속에 정리된 사적인 기억을 허구의‘고적한 낙원’에 투사한 영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근년 들어 한국영화는 온갖 수단으로 카타르시스를 극대화하는 데에 노력을 경주해왔으나 그 가운데 눈물을 통한 ‘씻김’은 매우 드물었다. 지난해 <파이란>으로 ‘진짜로 울리는’ 영화의 파워를 오랜만에 보여주었던 튜브 픽처스는, <집으로…>를 통해 다시 한번 말라붙었던 한국영화 관객의 눈물샘을 부드럽게 열어주는 영화를 내놓은 셈이 됐다. <집으로…>를 보는 우리를 울게 하는 것은 우리들에게 조건 없이 베풀어진 모든 것 -이를테면 부모나 신, 자연으로부터 받은 -에 대해 우리의 심장 언저리에 언제나 파편처럼 박혀있는 죄책감이며, 노쇠해가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향한 애도다.

영화가 못나게 만들어지면 이 땅의 모든 외할머니를 욕되게 할 테니 헌사를 쓸 수 없을 거라고, 지난 봄 이정향 감독은 말했었다. 가냘픈 등을 대지와 나란하게 굽힌 할머니가 타박타박 집으로 돌아가고 나면, ‘이 땅의 모든 외할머니께’라는 헌사가 화면 오른쪽 구석에 아담하게 떠오른다. 그래서 마지막 자막은 이 착하고 조심스러운 감독의 신중한 미소처럼 보인다. 김혜리 vermeer@hani.co.kr▶ 너무 많이 안 감독, 너무 많이 끌어안은 영화 <피도 눈물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