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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 x cross] 사서 고생하는 인간(들)

<송곳> 연재하는 만화가 최규석

“쓰레기도 함부로 안 버리던 바른 친구예요.” <돼지의 왕> <사이비>의 연상호 감독이 말하는 만화가 최규석이다. 둘은 대학 시절부터 친구로 지냈고 만화가 최규석은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원화를 그렸다. 연상호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면 제일 먼저 보여주는 사람도 최규석이다. 올바른 사람. “그런 사람이었던” 최규석이 자신과 비슷한 성격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을 네이버 웹툰에 연재한다. 제목은 <송곳>. ‘떼인 임금 받아드립니다’라는 명함을 지닌 노동상담소 소장 구고신과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하며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푸르미 마트 야채청과 과장 이수인이 주인공이다. 노동문제를 다룬 <송곳>은 이제 고작 10회 연재했을뿐인데 제목처럼 독자들의 양심을 송곳처럼 뚫고 있다.

-웹툰 연재는 처음이다. 반응이 어떤가. =순위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웃음)

-순위가 떨어지는 이유가 ‘일베’의 공격 때문이라는 댓글도 봤다. =그건 아닌 것 같다. 순위가 낮은 작품에 달리는 댓글에는 왜 이 만화를 안 보냐는 식의 꼰대질과 잘난 척하지 말라는 저항이 같이 나온다. 순위별로 정렬을 안 하면 작품 자체에 대한 댓글을 달게 될 텐데 순위에 따라 수직적으로 독자에게 제시가 되니 갈등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주로 출판만화쪽으로 활동했다. 웹툰 연재를 한 이유가 궁금하다. 왜 네이버였는지도. =많은 독자에 대한 욕심이 있는 성격은 아니다. 책 내고서는 볼 만큼 보면 된다는 주의였는데 이번 작품은 많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분량이 기니까 연재를 안 하면 한없이 늘어질 수밖에 없고…. 그 두 가지를 충족하려고 하다보니 웹툰 연재를 하게 됐다. <한겨레21>, 문학동네 블로그 등과 연재 얘기를 했는데 어차피 <한겨레21>의 독자들은 웬만큼 (노동문제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이니까 크게 의미가 없겠다 싶었다. 어린 친구들이 많이 봤으면 해서 네이버를 선택했다.

-노동문제에 대한 취재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취재가 문제였다. 언론을 보고 노동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수준이랑 그걸 그릴 수 있는 능력의 차이는 엄청나다. 그래서 (성공회대 노동대학장인) 하종강 선생님한테 연락드리고 무작정 만나서 얘기 좀 해달라고 했다.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선생님의 젊은 시절 이야기부터 들으면서 조금씩 감을 잡았다. 투쟁 사업장이 있으면 찾아가서 앉아 있다가 어깨너머로 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두명씩 알게 됐다. 정말 생판 모르는 상태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익숙해졌다.

-왜 마트를 배경으로 했는지 궁금하다. =초반에 어떤 사업장 이야기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강렬한 사건이 있었던 곳이 좋을지 정말 억울한 일을 당했던 곳으로 할지 고민했는데 마트는 익숙한 곳이다. 하청업체 공장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노동자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런데 마트 아줌마라고 하면 옆집 아줌마랑 비슷한 이미지라서 심리적 거리감이 줄어들지 않을까 기대했다.

-<습지생태보고서> <대한민국 원주민> 등 전작들도 그렇지만 <송곳>에는 최규석 작가의 성격이 많이 반영된 느낌이다. 직원들을 이유 없이 그만두게 하라는 상사의 지시에 이수인이 “저는 못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본인과 비슷한가. =그런 성격이었다. (웃음) 피곤한 성격이었다.

-사회현상이나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시기가 대학생 때인 경우가 많다. 어떤 대학 생활을 보냈나. =대학 다닐 때 큰 사건은 이런 거다. 후배들 기합 주는 걸로 싸우다가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한다거나…. (웃음) 군대 가기 전에는 그게 제일 컸다. 군대 갔다와서는 흔히 말하는 88만원 세대들이 겪는 위 세대와의 갈등이 컸다. 교수님들이 여러 가지 일을 시켰다. 큰 공모전에서 상도 받고 나름 촉망받는 학생이어서 교수님들이 챙겨주는 거였지만 내가 지금 과제나 알바를 하지 않으면 학교를 졸업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시더라. 그래도 지금은 많이 유들유들해졌다.

-유들유들해졌지만 노동만화를 그린다는 건 극중 이수인처럼 결국 꼰대가 되지 못한 거 아닌가. =노동만화라기보다는 그런 사람을 그려보고 싶긴 했다. 신념 때문에 끝없이 고생하는 사람. (웃음) 이수인은 끝없이 고생을 할 거다. 많은 벽에도 부딪힐 거고. 이런 종류의 인간이 하고 싶은 얘기를 하고 싸움이 일어났을 때 얼마나 인생이 힘들어지는지를 보여주고 싶다. 아주 사소한 것 하나라도 고치려고 마음을 먹고 행동에 옮기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주인공이 좌절만 맛보고 끝난다면 비참할 것 같다. =그렇지는 않을 거다. 대중문화에서는 보통 이런 문제를 예외적인 방식으로 다룬다. 테러리스트가 된다거나 주인공도 악한 사람으로 만들거나. 그런데 노동문제에서는 어쨌든 자본주의가 생긴 뒤로 반복되어왔던 해결 방식이 있다. 법 밖으로 나가는 경우도 많지만 체계가 잡혀 있다. 그럼에도 그걸 따라가기가 얼마나 힘드는지를 보여줄 생각이다.

-<송곳>을 보면서 1980년대 노동소설도 떠올랐다. 스스로를 노골리스트라고 불렀는데 리얼리스트는 아닌가. =리얼리즘을 뭐라고 정의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어릴 때부터 작품할 때 왜곡하지 않고 전달하고 싶다는 욕심은 컸다. 캐릭터의 생김새만으로도 왜곡이 일어난다는 생각을 했다. 가령 <슬램덩크> 강백호가 다른 캐릭터와 싸우다 그 캐릭터를 집어던지면 장난스러운 그림체로 변한다. 거기서 현실의 왜곡이 일어난다. 강백호 같은 캐릭터가 실제로 있다면 아마 학교 내에서 공포의 대상일 거다. 엄청 사실적인 그림을 그린다고 가능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는 어떤 정수, 이미지 이런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걸 찾으려다보니 개성이 없는 그림체가 만들어졌다. 이게 리얼리즘이라면 리얼리스트일 수도.

-트위터를 봤는데 손배가압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손잡고’ 운동에 참여했더라. =손배가압류 문제는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다. 엄청 중요한 얘기인데 10년 넘게 사회적으로 이슈가 안 된 상태로 지금까지 왔다. 이것 때문에 죽은 사람도 많은데 말이다. 어쨌든 반가운 일이다. 이효리씨도 동참했고. 아직 발표는 안 됐는데 이번에 만화가들이 많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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