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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ash on] 실수와 우연이 만나 활력으로
윤혜지 2014-03-20

<씨, 베토벤> 공동연출한 민복기 대표와 박진순 감독

극단 차이무를 이끄는 민복기(오른쪽) 대표가 영화를 만든다? 혼자도 아니고 <마지막 늑대> <강적>에 배우로 출연하며 알게 된 박진순(왼쪽) 감독과의 공동연출이다. 당시 조감독이었던 박진순 감독은 그 뒤 자신의 영화에 꾸준히 민복기 대표를 단역으로 캐스팅했고, 두 사람은 돈독한 인연을 쌓았다. 민복기 대표가 연출한 동명의 연극이 원작인 <씨, 베토벤>은 여고 동창인 세 친구의 수다만으로 이뤄졌다. 영화는 카메라를 통해 배우들을 관찰하기만 한다. 편집도 최대한 줄이고 사고나 실수까지 끌어안고서 극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왔다. “의도하지 않은 의도들이 반가웠던” 영화인 <씨, 베토벤>은 사실 민복기 대표의 영화감독 도전기, 박진순 감독의 연출 데뷔 도전기다.

-공동연출을 하기로 마음먹기까지는. =박진순_처음 준비한 영화가 잘 안 됐을 때 선배님의 연극 <씨, 베토벤>을 보러 갔는데 세 여자의 수다를 한참 듣고 오니 마음이 편하고 기분이 좋더라. 바로 영화화를 제안했다.

민복기_작품과 가족처럼 오래 지내다보면 못 보고 지나치는 것들이 있다. 박 감독과 같이 하면서 내가 못 본 극의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박진순_직접 만든 극이고 배우들과 호흡도 미리 맞춰왔으니 선배님이 연기 연출이나 극의 상황을 통제했고, 난 후반작업 등 영화로 만드는 데 필요한 기술적 문제를 주로 맡았다.

-오랫동안 조감독이었던 걸 고려하면 연출 데뷔가 늦은 편이다. =박진순_일본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아르바이트로 한국에서 온 촬영팀의 통역을 해주게 됐다. 현장에 처음 가보고 충격을 받았다. 난 조형이나 그림밖에 몰랐는데 영화는 사람을 통해 메시지를 표현하는 일이더라. 졸업하고 귀국했는데 아르바이트하며 친해진 김현태 촬영감독님이 현장 놀러오라고 하셔서 얼떨결에 촬영팀 일을 돕게 됐다. 그분 소개로 봉만대 감독님도 만났고, 봉 감독님이 에로비디오 찍으실 때부터 조감독으로 일했다. 하던 영화들이 엎어져서 <씨, 베토벤>으로 데뷔하게 됐다.

-촬영을 여러 번 하지 않은 것 같다. =박진순_영화 만들듯이 만들면 연극의 맛이 죽을 것 같아 테이크 없이 배우들 연기를 바라보기만 하자고 합의를 봤다. DSLR로 찍었는데 10분마다 한번씩 끊어줘야 해서 한 테이크가 대개 10분으로 이뤄졌다. 촬영도 하루 만에 끝났다.

민복기_덕분에 스탭들을 엄청 다그쳤다. (웃음) 해지기 전에 카페를 나가는 장면을 찍어야 했다. 오래 같이 한 배우들이라 가능했던 것 같다.

-눈에 띄는 사고나 실수들까지 편집하지 않고 그냥 넣었더라. =민복기_그런 장면들이 나중에 보면 새로운 의미를 만들기도 한다. 중요한 소품인 담배를 안 챙겨왔었는데 그때 당황한 배우가 카메라쪽을 봤다. (웃음) 스탭에게 달라는 신호를 보낸 거다. 카페 주인이 음료를 주면서는 빨대를 같이 안 줬다. 나중에 그 장면을 보니 ‘주인이 빨대도 못 챙길 정도로 다른 생각에 빠져 있구나’ 하는 느낌이 풍겼다. 그런 실수와 우연들이 모여 영화에 활력이 생긴 것 같다.

박진순_창밖에서 모니터링을 하는 동안 배우들이 실수하면 둘이 어떻게 할지 눈으로 상의했다. (웃음) 영화에서 배우들이 웃을 때가 있는데 그게 다 자기들 실수가 민망하고 웃겨서 진짜로 웃는 거다.

-무대가 되는 카페도 인상적이다. =민복기_마침 업종 변경을 하려고 비워둔 상태라 촬영이 가능했다. 오래된 느낌이 좋더라. 큰 창문은 주인의 뷰파인더처럼 보이고, 대들보 나무는 경복궁 재건 때 쓰다버린 걸 주워왔다나. (웃음)

박진순_촬영여건을 생각할 땐 좋지 않았지만 좁고 긴 공간이라 깊이감이 있어 좋았다. 한쪽 면인 돌벽은 수로 옹벽에 지붕만 얹은 거고, 그 벽이 붉은 나무로 된 가구와 잘 어울렸다.

-각자의 차기작은. =민복기_생각해둔 게 있긴 하다. 카메라를 창틀에 한 시간 반 동안 걸어놓기만 하고 오랫동안 지나가는 많은 풍경들을 관찰한다. 마지막에 카메라가 빠지면 사실 우리가 본 것들은 누군가가 옮기고 있는 그림인 거다.

박진순_먼저 찍어둔 <선샤인> 개봉을 준비 중이다. 탈북자를 보는 한국 사회의 시선이 편향된 것 같다. 탈북한 뒤 팝아트를 접하게 된 소녀가 점점 자기 그림을 찾고 화가가 돼가는 이야기다. 실제로도 팝아트 작가들이 많이 참여했다. 아마도 한국영화 중에선 가장 그림이 많이 나오는 영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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