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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스코프] 직관도 노력에서 나오는 거라 생각한다
정지혜 사진 오계옥 2014-04-11

<산다>의 박정범 감독 인터뷰

“영화를 찍는 과정은 포기를 배우는 과정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박정범 감독은 두 번째 장편영화 <산다>를 찍으며 무려 11kg이나 빠졌다. 4월15일 크랭크업을 목표로 전 스탭이 뒤돌아볼 새 없이 전진 중이다. <산다>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장편영화 제작지원작으로 선정된 만큼 영화제 상영에 맞추려면 이 시간도 빠듯해 보인다. 전작들에 비해 등장인물도 많아졌고 저마다의 사연도 얽히고설킬 예정이라 인물간의 밸런스를 맞추는 일도 박 감독에게는 큰 숙제다. 그럼에도 제목만큼이나 강렬한 이야기가 꿈틀대고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든다. 죽기보다는 기어코 살아내는 사람들의 몸짓. 이것이 곧 <산다>이다.

-전주국제영화제 ‘숏숏숏’의 <일주일>, 인권위 단편 <어떤 시선-두한에게>도 찍었지만 장편은 <무산일기> 이후 5년 만이다. =부담도 많이 됐고 시나리오 쓰면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그간 준비한 시간을 생각하면 이젠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서른아홉인 지금의 박정범을 스스로 확인해야 했다. 더 나이 들어 새로운 세계관이나 안목이 생기면 또 모를까. 하지만 그런 건 몇년 사이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일단 찍자는 생각이었다.

-2011년 겨울부터 작품을 준비한 걸로 안다. 시나리오의 변화도 많았다고 들었다. =이창동 감독님의 <> 조감독을 하던 시절이었고 <무산일기> 촬영을 끝내고 편집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구상은 그때 처음했다. 이후에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펀드 공모에 트리트먼트가 당선됐는데 그때만 해도 형제 이야기였다. 강원도에서 상경한 동생이 서울 사는 형을 살린다는. 그다음엔 서울 사는 누나와 동생의 이야기로 바뀌었다. 한 50가지 버전까지 썼다. 전주국제영화제 제작지원을 받으면서 최종적으로 누나와 남동생이 등장하는 지금의 이야기가 됐다.

-전작들에 비해 주요 등장인물들이 많아졌다. =많은 인물들이 각자의 캐릭터를 갖고 움직이는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내가 볼 땐 결과는 실패로 보인다. 이번에 찍으면서 캐릭터로 오만을 부려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한 사람의 인생도 알 수 없는데 여러 명은 무슨…. 반성, 많이 하고 있다. 이것도 다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지만 시간, 노력, 비용이 막대하게 들어가서 안타깝기도 하다.

-직접 연기하는 수연의 남동생인 정철은 어떤 인물인가. =한마디로 미친 개다. 강원도를 돌아다니면서 계속 화만 낸다. 정신병을 앓고 있는 도망간 누나 수연도 찾으러 가야지, 조카 하나도 돌봐야지, 여자친구도 신경 써야지. 전에 일한 건설공장에 받지 못한 임금을 받으러 갔다가 린치를 당하기도 하고. 어쨌거나 핵심은 정철 같은 이도 인간이다, 라는 것이다.

-오늘 굉장히 많은 테이크가 진행됐다. 다들 많이 지쳐 보이더라. =다른 영화에서는 잘 표현하는 배우가 나랑 만났을 때 헤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건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 그게 반복되면 ‘나는 왜 소통을 못할까’라는 생각이 들고 ‘시간이 더 있었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걸 좀더 보여주고 소통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오늘과 같은 과정은 내 영화에선 늘 있는 일이다. (웃음) 모든 배우가 그렇게 간다. 모두가 힘들어 하는데도 시치미 뚝 떼고 계속 요구한다. 나도 답답하고. 하지만 난 무식하게 작업하는 스타일이다. 그러다 보면 뭔가 이상한 게 나올 거라 믿는 편이다. 직관을 믿는다. 그것도 노력에서 나오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서로 부대끼는 부분도 생긴다. 이게 최선인지 지금은 모르겠지만 영화 다 찍고 편집하며 현장을 복기하다보면 내가 정말 최선을 다했는지,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딴 데 에너지를 쓴 건 아닌지를 알게 될 거다.

-특히 수연에 대한 요구가 많았는데 뭐가 부족해 보인 건가. =수연은 아픔에 상대적으로 민감한 사람이다. 늘 그로기 상태로 지내다 보니 정말 중요한 걸 놓치는 사람. 아무 사람과 관계를 맺는 엄마를 더이상 견딜 수가 없어 하나가 죽자고 하는 상황이다. 그 순간 엄마의 모습을 드러낸다는 게 오히려 가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인간이라는 동물이 죽어가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좀더 직관적으로 보이길 원한 것 같다.

-<산다>의 메시지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겨울의 강원도는 한명의 힘으로 땅바닥에 붙어 있는 돌 하나도 옮길 수 없어”라는 극중 대사가 있다. 강원도의 겨울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는, 인력의 하찮음을 느끼게 한다. 마치 이 세계와 같다. 변하지 않는, 이미 굳어버린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메타적으로 드러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걸 깨려고 노력하는 인간의 모습이 중요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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