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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너머] 회사가면 죽는다

미국에서 함께 MBA과정을 마친 친구를 만났다. 능력이 출중했던 그 친구는 졸업 뒤 야후에서 일했고,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하더니 지금은 구글에 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일자리를 쇼핑하듯 돌아다닌다.

그가 실리콘밸리의 한 식당에서 털어놨다. 회사가 재미없어 못 다니겠다고. 세상에, 세계 청년들의 꿈이라는 회사, 창의와 자율이 넘치고 사원복지가 젖과 꿀처럼 흐르는 회사라는 구글에 다니면서 그런 소리를 해? 친구가 대는 이유가 압권이었다. “회사라는 존재는 원래 악한 것(evil) 같아. 인간과는 맞지 않는 제도인 거지.” 회사가면 죽는다는 이야기다. 일이 고되어서가 아니다. 본질적으로 자기 일이 아니라 남의 일을 하는 곳이어서다.

만화 <미생>의 회사원들은 늘 일에 쫓긴다. 낮에는 프리젠테이션에, 밤에는 술자리에, 일주일은 어떻게 흘렀는지 모른다. 힘겹게 눈을 떠보면 벌써 주말 오후. 다시 눈을 떠보면 이미 대리이고 과장이고 40대가 코앞이다. 그렇게 달려가는 회사원들의 결승선에 서 있는 이들은 임원. 하지만 그들이라고 영광의 나날만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적이 한 번 휘청거리면, 부하직원이 한번 실수하면 바로 툭툭 털고 사무실을 걸어나가야 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다.그리고 이 모든 이들은,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앞으로 달리는 페달을 점점 더 세게 밟는다.

어른을 위한 동화 <꽃들에게 희망을>에 나오는 애벌레들은 위로만 오른다. 다른 애벌레를 밟기도 하고 밀치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고 상처 입기도 하면서. 이유는 그저 하나, 다들 위로 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꼭대기에 도착해 보면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거기엔 아무것도 없다. 지방 중소기업부터 구글까지, 회사는 애벌레로 가득 차 있다.

어쩌면 그래서, 그저 회사에 들어가려는 취‘사’(社)준비는 유쾌할 리 없다. 애벌레가 기둥을 찾는 일이 뭐 그리 유쾌할까. 그것도 최고의 기둥이라는 구글조차 직장상사 때문에 힘든 회사일 뿐이라는데 말이다.하지만 취‘업’(業)준비는 다르다. 문자 그대로 ‘업’(業)을 갖는 준비라면, 평생 몰두할 ‘일’을 갖기 위한 준비라면, 얼마나 유쾌하고 가슴 뛰는 일인가.

제대로 된 취업을 하자. 일자리를 갖는 게 아니라 일을 갖는 게 먼저다. 밤새워 일하고 나서도 충만함을 주는, 그런 일이 내게 있는가. 무엇이든 좋다. 가슴을 끓게 만들 수 있는 내 일을 찾자. 그리고 나서 그 업을 구현하기에 가장 좋을 만한 회사를 찾자. 그게 지속가능한 일자리다.

나의 ‘업’을 찾는 것뿐 아니라,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도 함께해야 할 ‘일’이다. 국가를 ‘국민의 집’이라 부르는 스웨덴은 보편적 복지로 국민을 가족처럼 보호해준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이런 곳이라면 취‘업’을 하기가 훨씬 쉽다. 제대로 된 복지제도와 노동정책이 없다면, 여간 자신감이 있지 않고서는 취‘사’만 반복하기가 쉽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미생>의 모델이 있다. 주인공 장그래에게는 바둑이 업이었다. 그의 짧고도 긴 회사생활은 누가 뭐래도 한판의 대국이었다. 장그래는 어느 회사에 가서도 자신의 대국을 이어갈 것이다. 당신은 그런 업을 가졌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