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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기행@우리학교] 홍상수가 사랑한 건대

캠퍼스에 대한 낭만적 상상과 기대는 조상님으로부터 물려받거나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간접 매체, 그중에서도 영화를 통해 보통의 건물과 공간이 꽃피는 춘삼월의 꽃동산으로 승격하는 경우가 대다수일 것이다.

일명 ‘홍상수 스타일’을 구축하며 두터운 마니아층을 둔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즐겨본다면, 그의 영화에 유독 자주 등장하는 장소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그가 재직하고 있는 건국대학교다. 서울특별시 광진구에 소재하는 이 학교는 서울 내에 몇 안 되는 평지 대학교 중 하나이며, 교내에 일감호라는 호수가 있어 데이트 명소로도 유명한 곳이다. 이곳에서 4명의 스탭과 2천만원이라는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옥희의 영화>와 제66회 르카르노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감독상을 수상한 <우리 선희>의 장면 다수를 촬영했으며, 제33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배우 정은채에게 신인여우상을 안겨주었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산을 줄이기 위해 재직 중인 학교에서 촬영을 했다던 감독의 솔직한 인터뷰에 비해 영화 속 학교는 각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도 잘 어우러져 최선의 선택과 결과를 이루어냈다.

죽어가는 자의 고독 상허기념도서관 정문에 들어서면 저 멀리 우뚝 서 있는 건물이 보인다. 건국대학교 중앙도서관인 상허기념 도서관이다. 120만권이 넘는 단행본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크기도 큰 데다 학교의 초입에 자리하고 있어 조경도 좋다. 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에서 해원이 잠을 자는 영문서적 열람실은 도서관 5층에 있으며, 해원이 과 친구를 만나 성준의 소식을 듣는 곳도 바로 도서관 앞이다. 돌에 새겨진‘상허기념도서관’ 이라는 글자가 영화에서도 크고 또렷하게 드러나 있어 찾기도 쉽다. 도서관 책상위에 올려져 있던 책의 제목처럼, 해원의 고독이 여실히 드러나는 장면을 품은 공간이다.

우리 선희가 일으키는 바람 예문대 앞 건국대 학생들에게 일명 ‘중문’으로 통하는 예술문화대학 앞은 <우리 선희> 오프닝에서 선희가 걸어가던 장소이며, 홍상수 감독이 실제로 근무하고 있는 곳이다. 선희가 걸어가는 산책로나 최 교수를 만나는 잔디밭 역시 모두 캠퍼스내에 위치하고 있다. 선희는 캠퍼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여러 남자들의 마음에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은 선희가 학교에 오면서부터 시작된다.

건국대에 다니는 옥희의 영화 홍예교 앞 첫 번째 에피소드인 <주문을 외울 날>에서, 독립영화감독이자 생계형 시간강사인 주인공 진구가 송 교수와 이야기를 마치고 걸어가다 갈데가 없어 이발소에 들르는 장면이 있다. 학생회관 옆쪽에 위치한 홍예교이다. 일감호가 늪을 메워 만들어진 인공호로, 독립운동가이던 상허 유석창 박사가 통일된 조국의 모습을 그리며 한반도 모양으로 호수를 만들었다는 것은 재학생들도 잘 모르는 사실이다. 그중에서도 당시 지역감정이 심했던 전라도쪽에 홍예교를 만들어 두 지역간의 화합을 상징하도록 했다.

산책로 두 번째 에피소드 <키스왕>에서 벤치에 앉아 고민에 빠져 있던 진구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수상 축하한다는 말을 듣는다. 진구가 앉아 있는 벤치는 교내의 산책로다. 산책하기에도 좋고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아 걸으며 조용히 얘기를 하기에도 좋은 장소다. 언뜻 보이는 알록달록한 유리창이 있는 건물이 바로 앞에 등장했던 예술문화대학 건물이다. 이곳에서 진구는 사람들이 전해주는 소식에 기대감에 부풀고, 왠지 모를 자신감에 옥희에게 전화를 건다. 어쩐지 지질하면서도 귀여운 진구의 모습때문일까. 지나가다 앉아서 통화하고 있는 잠바차림의 남자만 봐도 괜스레 웃음이 새어나온다.

일감호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건국대의 명물 중 하나인 일감호의 전면 등장이다. 진구가 다른 교수님을 만나 송 교수에 대한 비화를 듣는 장소이다. 영화 속 진구는 담배를 피우며 호수를 바라보지만, 실제로 그곳에서 담배를 피운다면 오가는 학생들의 눈총을 한몸에 받을 정도의 좁은 장소다. 또 다른 건국대의 명물인 건국 오리들이 모여 식당에서 남겨주는 밥을 먹는 장소이기도 하다.

온실 진구가 술을 먹고 옥희에게 고백한 뒤 키스하는 장소다. 건국대 학생들에게 이 온실은 ‘길을 잃으면 나오는 장소’로 통한다. 그만큼 깊숙이 위치해 있는 데다 실제로 이따금 호기심에 찬 신입생들이 이리저리 캠퍼스를 돌아다니다 발견하는 곳이기도 하다. 풀과 흙 내음이 감도는 온실에서 또라이 진구의 지질한 고백을 들은 옥희는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상으로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등장한 건국대학교의 이곳저곳을 소개해보았다. 핑크빛은 아니더라도 이야기가 흘렀던 장소를 돌아보며 영화를 다시금 떠올려보는 것은 어떨까. 캠퍼스의 낭만이 가져다주는 또 하나의 묘미가 될 것이다. 어쩌면 홍상수의 영화처럼 생생한 인물들이 또 다른 남녀 관계의 시작을 품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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