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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 앤 잡] 우리말 공부가 먼저예요

어린이책 번역 작가, 김선희

번역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일본이 개항하면서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바로 번역 작업이다. 먼저 상대를 알아야 올바른 대처가 가능하니까. 그에 비하면 우리는 번역에 대해 소홀한 점이 많았다. 지금도 외국의 중요한 고전들 중에 제대로 번역되지 않은 것이 많다. 반면 외국어 공부에 대한 맹목적 추종이나 열의는 비정상적으로 높다. 사실 잘 번역된 책이 있다면, 굳이 외국 원서를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외국어에 투자하는 시간을 더 유익한 곳에 쓸 수도 있고 말이다. 외국어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번역 분야는 거칠게 구분하면 출판과 영상으로 나뉜다. 책 번역도 성인 단행본 외에 어린이책 번역, 청소년책 번역, 그림책 번역 등 세분화된 전문 분야가 있다. 김선희는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어린이책 번역 작가 과정’ 강의를 하고 있고 <홈으로 슬라이딩>, <선생님, 우리 얘기 들리세요> 등 지금까지 100여 권의 책을 번역한 어린이책 전문 번역 작가다. 텍스트 양이 적은 어린이책이라고 해서 번역하기 쉬운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책을 읽는 어린이들을 생각하면 오히려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도 더욱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봄이 성큼 다가선 날 오후, 김선희 작가와의 만남은 어린이책 번역에 대한 그녀의 노력과 열정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번역을 시작하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나요. =원래는 작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번역가는 그 중간역 정도라 생각했는데, 종착역이 되었네요. (웃음) 한 가지 동기를 더 들자면, 집 근처에 마침 한겨레교육문화센터가 있었던 것인데 그냥 글 공부를 하고 싶어 들락거리다가‘어린이책 번역 작가 과정’을 듣게 되었고, 그 매력에 빠져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죠.

-‘어린이책 번역 작가 과정’ 강의를 하면서 느끼는 보람이 있다면요. =제 수업을 듣고 졸업한 수료생들이 수줍은 듯 첫 번역 책과 자그마한 선물을 함께 들고 찾아와주었을 때…. “축하해” 하며 애써 담담한 척 책을 받곤 하지만, 집에 와서는 가족들에게 내가 가르친 제자가 번역한 책이라고 한껏 자랑합니다.(웃음)

-강의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있었나요. =번역가 강주헌 선생님의 추천으로 2009년 1월부터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부족한 점이 너무 많아 몇번 고사를 했습니다.그러다 공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부딪혀보기로 했습니다. 최소한 선생님께 누나 끼치지 말자는 마음으로 이어왔는데, 그사이 벌써 올해 6년 차에 접어들었네요.

-어린이책과 성인 단행본 번역의 차이점이 있다면요. =어린이책을 그림책이나 동화책 정도라고만 생각하시는 분들을 만날 때면 조금 안타깝습니다. 어린이 출판물은 통계적으로도 전체 출판물의 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번역물은 성인 출판물과 성격이 다릅니다. 어떻게 다른지는 제 수업을 직접 들으셔야 알게 됩니다. (웃음) 직접 번역을 해봐야 알 수 있을 겁니다.

-강의 중 특히 강조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저는 “잘 모르기 때문에 어렵게 이야기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믿는 사람이에요. 쉽게 말할 수 없는 사람은 어린이책을 번역하기 힘들어요. 현학적인 문체, 한자 투는 식자들의 언어입니다. 번역체를 문학적이라고 믿는 분들의 고정관념이 깨졌으면 합니다.번역이론 중 ‘스코포스 이론’이 있습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소비자인 어린이, 청소년의 습성과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수료생들 중 실제 번역가로 활동하는 분들이 많은가요. =셀 수 없이 많을 거예요. ‘어린이책 번역 작가과정’은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10년 이상 장수한 강좌인데, 저는 그중에서 6년을 진행해왔으니까요. 제 수업을 듣고 번역가로 데뷔한 분도 30명이 넘습니다. 아직도 세미나를 통해 정기적으로 만나며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번역 작가의 자질은 무엇인가요. =무엇보다 책을 좋아하고, 독자의 성향을 잘 파악하고 독자를 이해시킬 수 있는 사람. 그리고 한국어에 대한 이해가 풍부한 사람. 외국어를 잘한다고 번역을 잘하는 게 아니에요. 물론 기본적으로 외국어 능력이 필수인 것은 사실이지만….

-잘된 번역과 잘못된 번역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질문에 답하기가 어렵네요. (웃음) 번역자나 편집자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사실 독자를 100%를 만족시키는 번역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저는 편안하게 읽히고 우리말 정서법과 맞춤법에 맞는 번역을 좋아합니다. 저자의 문체, 의도에 대해서는 결국 번역자의 해석과 분석을 독자가 믿고 따라갈 수밖에 없으니까요.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고 하는데요. =당연하죠. 그러니 번역 ‘작가’라고 하잖아요. 원저자만큼 번역자의 이해와 해석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자에게는 문학적 표현을 위한 문법의 파괴도 허락해주면서, 번역가에게는 표현을 옭아매는 단호한 잣대를 들이대는 보수번역 이론가들이 이 점을 좀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번역 작가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무엇보다 우리말 공부를 하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아무리 외국어 실력이 좋아도 번역에서 그것을 표현하는 수단은 결국 우리말입니다. 우리말에 대한 표현 미숙은 독자에게 오독과 오해만을 전해줄 테니까요. 꿈은 그냥 꾸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루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용기 있게 도전한다면 결코 이루지 못할 꿈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