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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책장을 덮고] 그 아픔을 이제야 조금 이해합니다
2014-04-27

<외딴 방>

글 : 추다솜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10학번 * <CAMPUS CINE21>은 책 읽는 대학생을 응원합니다. 이 글은 대학생 독서토론모임인 ‘리플’ (REAding peoPLE)에서 2월 첫주 소설부문 최우수작으로 선정된 서평입니다.

2009년 6월, 모의고사 언어영역 23번 문제를 맞닥뜨리는 순간 고등학교 3학년의 나는 멈칫했다. 불과 몇달 전에 읽었던 소설이시험지 속 지문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어떤 작품이든 감상보다는 분석의 대상으로 봤던 그때, 어떤 문제든 정답을 빨리 찾으려 분주히 눈을 굴리던 그때, 그 문제만큼은 조금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소설, <외딴 방>은 내가 참고서와 문제집 위에 자랑스레 올려놓았던 유일한 소설이었다. 주인공‘나’처럼 37개의 방 중 한곳에 살지는 않았지만 나는 왠지 그녀의 고독과 아픔이 낯설지 않았다. 고등학교 3학년의 나는 주인공처럼 나도 아프다는데만 초점을 맞췄다. 80년대 산업화 시대는 참 삭막했겠다는 얄팍한 안타까움에 그쳤다. 그렇게 읽었던 소설을 오랜만에 펼쳐 들었을 때, 첫 문장은“이 글은 사실도 픽션도 아닌 그 중간쯤의 글이 될것 같은 예감이다”였다. 작가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픽션보다는 사실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은 사실을 많이 담고 있다는 것. 그렇다면 ‘나’는 그 일들을 상당 부분 직접 겪었을 거라는 것.

그리고 가볍게 넘겼던 의문점에 대해 다시 고민해봤다. 작가는 왜 80년대는 현재형으로, 현재는 과거형으로 썼을까. 현재 자체보다 ‘나’를 사로잡고, 고통스럽게도 하는 것이 과거여서가 아닐까. 과거는 단지 ‘지나간 일’에 불과한 게 아니라, 현재의 근원이다. 마찬가지로 80년대는, 그때 살던 외딴 방은 ‘나’를 이루는 것이다. 그 시대를 이야기함으로써 자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래서 <외딴 방>은 자서전과도 같다. 그녀에겐 상처이고, 더이상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겠지만 어쩔 수 없다. 기억 속으로 돌진하지 않으면 천장에서 떨어지는 얼음물처럼, 죄책감은 계속 찾아올 것이기에. ‘열여덟의 나’를 다시 소환할 수밖에 없다.

‘나’는 자기 손으로 잠갔던 희재 언니의 방문을 열려고 한다. 낮에는 공장에 출근하고 밤에는 교복을 입고 공부하던 때로 돌아간다. 늘 희미한 이미지의 희재 언니와의 일을 선명히 떠올리려 한다. 그리고 소설가가 되겠다던 꿈과 마주한다. 큰오빠와 외사촌 모두 살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던 시절이었다. ‘나’ 역시 공장에 나가 나사를 조였던 것은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그 몸부림 속에서 글쓰기를 꿈꿨던 이유는 똑같이, 살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꿈이라도 있어야 언젠가는 그 외딴 방을 벗어난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게 아닌가. 살기 위해 품었던 꿈은 현실이 되었다. ‘열여덟의 나’가 지금의 나를 만든 셈이다.

고등학교 3학년의 나. 국어 시간을 제일 좋아하고 책상에 백석의 시구를 옮겨 적었다. 나의 정체성을 계량화된 성적으로 확인하고, 야자시간에 일렬로 나열된 책상 중 하나를 배정받아 공부해서였을까. 그때는 이 소설이 내게 일종의 탈출구였다. 고등학교 3학년의 나는 지금 대학생이 되었다. 소설가를 꿈꾸는 건 아니지만 여전히 비문학보다는 문학작품이 훨씬 많은 수를 차지하는 책장. 이제 분석이 아닌 감상을 위해 마음껏 소설책을 들 수 있는 나는 외딴 방에 살던 소녀의 아픔에 대해 조금 알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