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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주의 TVIEW] 승소를 향해서라면 윤리는 필요 없지?

MBC 드라마 <개과천선>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업의 매각과 인수합병, 손해배상소송 기사를 읽다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에서 멈칫하거나 기업쪽 논리에 부아가 치밀 때가 있다. 뭐라도 더 알고 싶어서 그들의 법률대리인을 검색해보면 신뢰감 넘치는 표정으로 승소한 사건의 소회를 이야기하는 근사한 전문직의 인터뷰가 눈에 띈다. 주로 경제지다. 법 이전의 윤리는 없는가? 의문을 품어봤자 법률서비스 제공자의 산뜻한 미소는 선도 악도 아닌, 수임료를 지불할 능력과 의사가 있는 이들을 향해 있다.

<개과천선>이 다루는 법무법인 차영우 소속 변호사들 역시 정의감에 불타거나 유별나게 사악한 집단의 모습이 아니다. 80년대 경제개방 이후, 수요에 부응하고 이익을 추구하는 인재들의 모습을 스케치하는 대표변호사 차영우(김상중)의 인터뷰 장면. 그리고 파트너 변호사 김석주(김명민)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일본기업쪽 대리인을 맡아 법리를 펴는 장면의 교차편집은 거대 로펌을 바라보는 당혹감을 압축한다. 불쾌하긴 한데, 석주의 고모가 중얼거리던 타박 외의 신통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사건 골라 맡는다면서? 이런 사건을 대체 왜 맡는 거야. 그 좋은 머리들로.”

그리고 <개과천선>은 이들의 일과 윤리의 경계를 복기하기 위해 교통사고로 인한 기억상실이라는 장치를 마련한다. 법률적 지식만을 기억하는 석주는 ‘변호사였다니 누군가에겐 도움되는 일도 하면서 살았을 것’이라 낙관했었다. 그러나 그는 재벌아들의 여배우 강간치상 건에서 증인매수와 피해자 사생활 공격으로 합의를 끌어냈었고, 태안 기름유출 피해어민들을 심리적으로 지치게 하는 시간끌기로 배상금액을 낮추는 변호사였다. 사건 수임 자체에 근본적인 문제는 없다. 그러나 이를 복기하는 석주를 통해 우리는 시작과 결과 사이, 교묘한 법리와 이론을 세우고 활용하는 세부과정의 어느 지점에서 윤리를 물어야 하는지 들여다볼 수 있다.

이쯤에서 석주의 교통사고를 되짚어보자. 그것은 여느 드라마처럼 질주하는 차에 치이는 한순간이 아니었다. 오토바이를 피하려다 균형을 잃고 공사장 자재 더미로 쓰러진 그는 각목을 건드렸고, 각목이 넘어지며 선반의 폐자재 포대가 그를 덮쳤다. 이는 그가 만든 법리와 변론의 파장과도 닮아 있다. 감옥에 가지 않은 재벌아들은 이후 살해당했고, 원한관계가 남은 여배우는 유력한 살인 용의자가 되었으며, 기름유출 피해어민은 시위 중 건물에서 투신했다. 오토바이가 물리적으로 그를 해친 게 아니듯, 그 역시 연달아 곪아터지는 일들의 직접 가해자가 아니다. 하지만 과정의 인과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석주의 ‘개과천선’ 또한 사람 하나 착해진다고 끝나는 것이 아님을, 이 드라마는 잊지 않는다.

+ α

김명민에 김상중이라니!

바늘 하나 들어갈 틈 없이 매섭게 쏘아붙이는 언변을 뽐내던 김석주는 기억을 잃은 뒤, 반쯤 누운 자세로 다리를 긁적거리며 옆 병상 환자의 카시트 손해배상을 자문해주는 (무)명남이가 되었다. 이전의 석주와 명남이 사이에 걸쳐진 김명민의 연기는, 로펌의 가장 큰 자산인 석주의 상태를 살피느라 초조한 기색을 은테 안경 안쪽으로 감추는 대표변호사 차영우 역의 김상중과 만나면 곱절의 시너지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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