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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건] 마음 가는 대로
정지혜 사진 손홍주 2014-06-02

<우는 남자> 장동건

엄마가 사막 한가운데에 자식을 버렸다. 아이는 들개처럼 세상을 떠돈다. 벌을 받아 마땅한 엄마가 눈앞에 없었으므로 아이는 대신 세상을 벌하기로 한다. <우는 남자>의 곤은 그렇게 냉혹한 킬러가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버림받은 그 순간부터 곤은 성장을 멈췄다. 그의 육신은 지금을 살아도 그의 정신은 사막에 묻혔다. 그런 곤이 되어 돌아온 남자가 있다. 반박을 할 수 없는 완벽한 외모 때문인지 누구에게도 버림받아본 적 없을 것 같은 배우 장동건이다. <우는 남자>의 이정범 감독은 “누가 조금만 건드려도 바로 깨져버릴 것 같은” 그의 얼굴이 주는 인상이 캐스팅의 주요 이유는 아니었다고 전한다. 그보다도 감독은 22년간 배우 생활을 해오며 장동건이라는 사람이 촘촘히 쌓아올린 시간과 경험을 탐했다. “<아저씨> 이후 나와 함께하고 싶다는 젊고 근사한 배우들은 많았지만 그건 내면의 아픔이 중요한 곤이라는 캐릭터와는 맞지 않아 보였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있는 장동건의 연륜 정도는 돼야 곤이 누군가에게 사죄를 하려고 했을 때, 그게 가능할 것 같았다. 최고의 자리에 있는 장동건이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게 내게는 중요했다.”

스스로도 아버지가 된 뒤 부모와 자식간을 바라보는 정서가 예전과는 사뭇 달라졌다는 장동건은 킬러가 아닌 곤이라는 한 인간을 파고드는 데서부터 영화에 접근해 들어갔다. 해외 입양자들의 수기를 읽으며 곤의 마음을 헤아려보던 그는 감독으로부터 ‘기이한’ 제안을 받기도 했다. “직접 돼지를 잡아보면 어떻겠느냐고 하더라. 수락은 했다. 근데 막상 당일 현장에 가서 살아 있는 돼지를 보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 제안은 고사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게 도움이 됐다. ‘내가 정말 생명을 죽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무언가를 죽인다는 상상을 아주 구체적으로 해보게 된 거다.” 사람을 죽이고야 말겠다, 가 아니라 죽일 수 있을까에서부터 시작되는 그의 이 질문이야말로 <우는 남자>의 곤이 가진 정서의 가장 낮은 자리다.

곤이 되기 위해 필요한 훈련도 그를 기다렸다. “<태극기 휘날리며> <마이 웨이> 등 전쟁물은 많이 했지만 전문적인 킬러 역은 그도 처음이다. 그래서 기술적인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다”는 허명행 무술감독은 하루 5시간씩 4개월간 복싱, 발차기, 격투기 훈련을 장동건에게 제안했다. 그리고 장동건은 이 고된 과정을 자신의 개인적인 삶 속으로 기꺼이 끌어안았다. “4년 가까이 특별히 몸 관리를 하지 않아서 준비하는 첫달은 상당히 힘들더라. 예전보다 확실히 빨리 지치기도 하고. 점차 몸이 만들어지는데 되게 기분이 좋더라. 영화를 위한 작업이기도 했지만 그냥 인생을 살아가는 40대 한 중년 남자에게도 도움이 많이 됐다. 내가 야구를 오랫동안 해서 어깨가 많이 안 좋은데 2주 전에 올해 첫 리그에 나가서 공을 던졌을 때 어깨가 괜찮더라. 동료들도 1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고 하고. (웃음) 본의 아니게 재활이 됐다.” 몸을 만든 뒤 총기 액션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샷건, 자동소총 등의 실탄 사격 트레이닝도 경험했다. 하지만 정작 그와 감독이 합의한 건, 액션을 대하는 자세였다. “감독님이 모형 총을 선물로 줬다. 침대맡에 두고 수시로 총을 잡아 몸에 익혔다. 또 내가 최근 골프에 재미를 붙인 걸 알게 된 감독님이 ‘영화 끝날 때까지 골프 안 치면 안 돼?’라고 하더라. 자기는 골프 치는 킬러가 상상이 안 된다고. 흔쾌히 받아들였다. 감독님이 영화를 대할 때 어느 정도까지 생각하는지 알겠더라. 굉장히 진지하게 작업하는 사람이다.”

스스로가 연출가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는 배우라고 말하는 장동건이 홍콩 누아르를 즐겨 보며 비슷한 유년기를 보낸 동년배의 이정범 감독과 나눈 이야기는 단지 <우는 남자> 한편에 한정되지는 않았다. “감독님을 이번에 영화로 처음 만났지만, 그전에 ‘죽을 때까지 누아르만 하겠다’고 말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때 감독님에게 굉장히 관심이 가더라. <아저씨>와 <우는 남자>가 비슷한 거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데 나는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는 아예 다른 이야기이지만 같은 감독의 같은 장르라면 당연히 비슷해 보일 수밖에 없다. 감독님에게 얘기했다. 마음의 변화가 생겨서 다른 걸 해보고 싶다면 모를까 자기복제가 아니냐는 외부의 시선 때문에 굳이 다른 걸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이정범 당신이 한국의 기타노 다케시 감독이 될 수 있을 것 같고 꼭 그랬으면 좋겠다고.” 장동건이 감독에게 했다는 이 말은 사실 그가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평가한 뒤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한때 모든 사람이 나만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작품 선택을 할 때도 하고 싶지만 이런저런 이유들 때문에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런 점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진 것 같다. 아직 완전히 벗어났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다. 그건 인기가 있고 없고의 차원이 아니다. 정확한 원인 없이 캐릭터가 와닿지 않는다거나, 연기를 하는 순간의 느낌이 예전 같지 않다거나 하는 게 있다. 그 상태를 벗어나려면 내가 지금 그렇다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첫째다. 현실 인식 없이는 개선이나 발전이라는 단어는 있을 수 없지 않나. 다행인 건 내가 그 점을 자각하고 있다는 거다.”

자신의 내면을 정확히 들여다보면서, 경험이 더해지면서 장동건은 되레 여유와 자유를 허락받은 것 같다. “이제부터는 끌리면 그냥 하자고 마음먹었다. 본질에 충실해야 하는 시기 같다.” 그렇게 장동건의 시간은 조금 더 근사하게 무르익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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