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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은의 TVIEW] 이것이 진짜 의리다

MBC <별바라기>, 팬의 마음을 헤아려 주목받다

스물두살 때 떠밀리듯 어학연수를 떠났다. 복에 겨운 소리지만, 영어 공부에는 요만큼도 관심이 없었기에 친구 하나 없는 낯선 나라에서의 생활은 춥고 우울했다. 물도 음식도 전기도 지독하게 아끼며 눈치를 주는 홈스테이 주인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지만 갈 데가 없었다. 매일 울면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 친구 집에 숨어 살까 고민하던 그 시절, 내 유일한 낙은 한 축구 선수에 대한 ‘팬질’이었다. 한국과 달리 느려 터진 인터넷으로 기사를 검색하며 단신 하나에 울고 웃었고, 용돈을 아껴 산 선물을 항공우편으로 부치는 순간의 뿌듯함으로 며칠을 견뎠다. 어떻게 나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타인에게 그렇게까지 몰두할 수 있었을까.

MBC <별바라기>에는 나처럼 누군가를 간절히 좋아했을 뿐 아니라, 이듬해 한국으로 돌아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관심을 다른 데로 돌려버린 나와 달리 오랫동안 ‘의리’를 지키고 있는 팬들이 스타와 함께 출연한다. 이휘재가 1996년 발표한 <세이 굿바이>를 아직도 앉은 자리에서 부를 수 있는 팬들은 불혹을 지나 두 아이의 아빠가 된 그가 여전히 ‘무결점 꽃미남’이라고 굳게 믿는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은지원을 보기 위해 부모에게 “전교 1등을 하면 한달 동안 서울에 보내달라”고 제안해 딜을 성사시켰던 팬은 ‘오빠’를 자주 보기 위한 방도를 궁리하다 서울 소재 대학에 진학해 방송사가 있는 여의도에 직장을 구했다. 1989년 미스코리아 오현경을 좋아하는 95년생 여대생은 몇년 전 ‘언니’가 짜장면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팬 사인회에 짜장라면 다섯 봉지를 사들고 갔다.

누군가에겐 그저 유난으로만 보일 수도 있는 에피소드겠지만, 스타가 가장 화려하게 빛나는 순간이 지나간 후에도 지속되는 애정은 신뢰를 쌓고 신비감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가 남는다. 은지원이 팬 카페가 아닌 KBS <해피 선데이-1박2일>에서 결혼을 발표했을 때 서운했다고 털어놓고는 “그렇게 가셨으면 잘 살기라도 하지…”라고 안쓰러워하는 팬의 복잡한 마음에 응축된 17년 세월을 느낄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였던 우지원이 은퇴를 앞두고 벤치를 지키는 신세가 되었어도 빠짐없이 경기장을 찾은 팬과, 아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하기 위해 경기마다 따라 다녀준 남편, 컨디션이 최악인 날에도 그런 팬의 정성에 보답하기 위해 인사를 하러 나간 선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서로가 위로받을 수 있는 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니 괴로울 때나 즐거울 때나 스타가 잘할 때나 못할 때나 그에게 꾸준한 애정을 보내는 것이야말로 철없는 게 아니라 진짜 어른스러운 태도인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짝사랑

인피니트 덕분에 산후 우울증을 극복했다는 두 아이의 엄마. 그의 남편은 능력 있는 아내가 직장도 그만두고 혼자 힘들어하는 게 걱정이었다며 “다행히 저분들이 나타나서 아내에게 열정이 생겼다”면서 고마워했다. 그러나 질투나지 않느냐는 질문에 “솔직히 (아내) 혼자 좋아하는 거잖아요. 존재를 모르시잖아요”라며 해맑게 돌직구를 던졌으니, 이런 게 가진 자의 여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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