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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웅의 일상어 사전] 꿈이냐 생시냐
권혁웅(시인) 2014-07-25

[ 꾸미냐: 생시냐: ]

겉뜻 너무 행복해서 내뱉는 감탄 속뜻 자신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

주석 로또에 당첨되거나 짝사랑하던 그이가 프러포즈를 받아들일 때, 이런 말이 입 밖에 나온다. 꿈이냐 생시냐. 때론 확인한답시고 자기 볼을 꼬집어보기도 하지. 방정맞은 짓이다. 안 아파서 슬픈, 드문 경험이다. 그런데 질문이 조금 이상하다.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냐, 아니면 살아 있는 것이냐? 꿈을 꾼다고 죽은 건 아닌데 말이지. ‘생시’에 ‘자지 않고 깨어 있을 때’란 뜻이 원래부터 있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이건 “꿈이냐 생시냐”를 하도 여러 번 반복해서 생긴 관용적인 의미일 뿐이다.

생시가 살아 있을 때라면 꿈은 죽었을 때란 뜻이겠다. 이상해 보이지만, 저승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아이들이다. 죽어서 가는 세상이 저승인데, 이 세상에 도착하기 전에 있던 세상도 똑같이 저승이다. 아이들은 이 세상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우리는 언어를 배우면서 인간이 된다. 인간이란 자신의 생각과 신체와 행동을 전부 언어화한 동물이다. 아이들은 제 뜻과 몸과 동작을 전부 언어에 내주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아이들은 온전히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

동화에 그토록 많은 저승 얘기가 포함되어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백설공주가 일곱 난쟁이를 만난 것도 무덤 속이며(난쟁이는 본래 땅속에 산다), 신데렐라의 원래 뜻이 재투성이 소녀인 것도 저승에서 왔기 때문이고(우리 식으로 말하면 신데렐라는 조왕신이다), 라푼젤의 머리가 그토록 긴 것도 그녀가 이승에 있지 않아서다(영원한 시간만이 머리카락을 그렇게 길게 기를 수 있다). 동화는 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난다. 오래오래. 시간이 없는 곳에서. 아이들은 그걸 본능적으로 안다. 아이들의 꿈은 영원을 향해 있다.

어른들의 꿈은 저승과 관련되어 있으면서도 시한부다. 대리기사가 운전하기 힘들까봐 대리운전을 대리운전하고, 고추와 잔디의 이종교배를 실험하고, 제자로 빙의해서 자기 논문을 쓰는 일이란 차마 살아 있는 자가 할 짓이 못 된다. 심지어 그런 꿈을 꾸는 어른들은 자신들이 죽어 있다는 사실도 모른다. 그래서 좀비 총리란 별명도 생긴 것일까? 이런 이들이 자신이 왜 지명받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할 때, 아이 좋아라, 이게 꿈이냐 생시냐고 되뇔 때, 우리는 그들을 살려내야 한다. 그건 꿈이라고. 얼른 깨어나라고.

용례 <인셉션>에서 주인공 돔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조그만 팽이를 통해서 지금이 꿈속인지 생시인지를 판단한다. 팽이가 혼자서 돌고 있다면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거다. 어린 시절을 상징하는 저 작은 조각은 생시에선 모습을 감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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