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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웅의 일상어 사전] 빵꾸똥꾸
권혁웅(시인) 2014-08-01

[ 빵꾸똥꾸 ]

겉뜻 알 수 없음 속뜻 양생법에서 인간론에 이르는 여러 학설을 집약한 말

주석 이 경이롭도록 창조적인 욕설이 어떻게 출현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지붕 뚫고 하이킥!>의 해리(진지희)가 수시로 내뱉는 이 욕설 앞에서는 누구든 백기를 든다(딱 한 사람만 빼고). 이 네 글자, 탱크 두대를 나란히 붙여놓은 것 같다. 모든 말들을 깔아뭉개는 위엄이 있다. ‘Pank Tonk Tank’로 맞춘 운이다. 빵크 똥크. 북치기 박치기다.

이 말은 어디서 나왔을까? 가능한 어원은 세 가지다. 첫째, ‘빵’과 ‘똥’에서 나왔다는 설. 빵이란 음식 일반을 뜻하는 말이요, 똥이란 배설물이니 ‘빵꾸똥꾸’란 먹고 싸는 일 전반을 아우르는 명명이다. 저 말이 그토록 자주 (그리고 어떤 문맥에서나) 쓰인다는 것은 잘 먹고 잘 싸는 삶, 요컨대 양생법(養生法)을 실천하는 삶이 제일이라는 뜻이다. 이 빵꾸똥꾸야. 이 빵하고 똥하고! 잘하지 못할까? 이렇게 본다면 이 말은 우리에게 전하는 축복이다.

둘째, ‘펑크’(punk)와 ‘똥꼬’에서 나왔다는 설. 펑크란 구멍이니 ‘빵꾸똥꾸’란 입에서 항문까지 길게 이어진 구멍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몸이 뼈와 살로 이루어져 있다고 상상한다. 이것은 실체 위주의 사고다. 뼈는 단단한 실체요, 살은 부드러운 실체라는 거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우리 몸은 입에서 항문까지, 눈코입귀에서 배꼽과 성기까지 죄다 구멍들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 몸은 그런 구멍들이 서로 통하게 되어 있는 길고 짧은 관(管)이다. 이것은 공(空) 위주의 사고다. 뼈와 살은 이 허공을 품기 위한 그릇에 지나지 않는다. 이 빵꾸똥꾸야. 이 입에서 항문까지 길게 이어진 구멍아. 이렇게 본다면 이 말은 안과 밖을 뒤집어 보여주는 심오한 사색의 산물이다.

셋째, ‘방귀’를 ‘똥꼬’와 운 맞춰 적었다는 설. 이 설을 따르면 이 말은 순망치한(脣亡齒寒)과 같이 서로 밀접한 관계를 다르게 부르거나, ‘방귀 잦으면 똥 싼다’는 속담을 변형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 말은 화장실 유머의 결정판이다. 그러니 이 말에 저항하기란 쉽지 않다. 해리의 공격에 모든 이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단 한 사람, 자옥(김자옥)만 빼고. 해리가 “이 빵꾸똥꾸야!”라고 공격하자 자옥은 이렇게 역공을 편다. “그럼 너는 빵꾸빵꾸똥꾸똥꾸야!” 저 말이 해리를 울려버린다. 그럴 수밖에. 탱크 두대에 탱크 네대로 반격했으니까. 밥과 똥을 이인분씩 제공했으니까. 두배로 길고 넓은 구멍을 제시했으니까. 마지막으로 작은 똥에 큰 똥으로 대항했으니까. 해리는 늘 변비로 고생하지만 (이 시트콤의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 가운데 하나가 보여주듯) 자옥의 똥은 변기 구멍을 막아버린다.

용례 <지붕 뚫고 하이킥!>은 시트콤계의 최고 걸작이지만, 수많은 이별과 죽음을 품은 최고의 비극이기도 했다. 특히 고통스러웠던 것은 결말이었다. 그때는 의아했지만 지금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이해한다. 인물들은 그렇게 제 자신을 지움으로써 스스로 빵꾸똥꾸들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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