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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하의 즐거운 만화가게>
2002-02-28

웃음도, 눈물도 여기 있었지

10여년 전만 해도 만화를 보려면 ‘만화가게’에 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고우영이나 강철수의 만화를 사러 서점에 가기도 했지만, <공포의 외인구단>이나 <카멜레온의 시>를 보기 위해서는 당연히 만화가게로 가야 했다. 이미 나무의자는 푹신한 소파로 바뀌기 시작했고, 커피에 라면도 끓여주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명칭은 ‘만화가게’였다.

<박인하의 즐거운 만화가게>의 표지에 그려진 박재동 화백의 그림은, 20여년 전의 만화가게 풍경이다. 교복을 입고 하교길에 들르던, 딱딱한 나무의자와 신간 만화를 창가에 고정하던 고무줄이 있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만화가게. 만화를 보다보면, 누군가의 엄마가 들어와 자식의 귀를 잡아채 나가고, 때로는 만화 대신 TV나 비디오를 보기도 하던 곳. ‘만화가게’라는 명칭에는, 만화와 지나가버린 과거를 그리워하는 추억이 서려 있다. 요즘에도 대학가나 유흥가에는 만화‘카페’가 꽤 있지만, 동네에서 만화가게를 찾기는 힘들다. 그 대신 들어선 대여점은 만화시장 침체의 주역이라는 비난을 듣고 있다.

2000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은 처음으로 문예연감에 만화 부문을 포함시키며 ‘뒷골목 문화라는 오명을 접고 새롭게 대중문화로, 특히 문화산업의 주요 분야로 떠올랐다’고 평가했다. 그 말을 달리 해석하면, 이전까지 만화는 ‘문예’에 포함되지 못하는 존재였다. 그저 싸구려 오락으로 치부되었을 뿐이다, 안타깝게도. 한국 만화시장이 획기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들어서다.

한때 단행본 판매고가 수십만부를 기록하고, 만화가가 유망 직종으로 인정받는 등 호황을 누렸다. 문화산업이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주목하면서, 만화는 캐릭터 산업의 주역이며 다른 매체로의 접근이 용이한 콘텐츠의 보고로 주목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몇년 뒤인 현재 만화잡지의 폐간, 단행본 판매부수 감소, 만화 온라인 매체의 연이은 몰락, 인기작의 부재 등으로 총체적 난국을 겪고 있다. 과거의 열기와 ‘수익’은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대여점 탓? 출판사 탓? 사람들의 인식? 혹은 만화 사랑의 부족?

나 역시 만화 애호가의 입장에서, 박인하의 한국만화 사랑은 경탄스럽고, 또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해왔다. 몇 안 되는 ‘만화평론가’ 중에서도, 한국만화에 대한 그의 애정은 유별나다. <박인하의 즐거운 만화가게>를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책의 1부에서는 박수동의 <번데기 야구단>과 이정문의 <철인 캉타우> 등 박인하의 개인적인 추억에 담긴 한국만화의 과거가 실려 있다. 그것들을 읽고 있으면, 한국만화의 지나간 풍경이 새록새록 밀려온다. 일본만화처럼 거대하거나 한 시대를 장악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언제나 우리 곁에서 웃음과 눈물을 주었던 좋은 친구들.

2부는 ‘금지된 것들과의 만남’이란 주제로 귀신과 공포, 폭력 등 만화 속의 금기를 뛰어넘는 판타지를 찾아보고 3부에서는 ‘만화란 무엇인가’란 주제로 백일몽, 일상의 아름다움, 장르만화의 법칙들, 감동의 장치 등을 분석한다. 마지막에는 일본 다카라즈카의 데즈카 오사무 박물관, 교토의 세이카대학 만화학과, 도쿄 토이쇼와 프랑스의 앙굴렘만화페스티벌 등 해외의 만화현장 탐방기가 있다. 사진이 컬러였으면 더욱 좋았을 듯.

한국만화는 요즘 침체기다. 아니 총체적 난국인가? 박인하처럼 한국만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상황이 좋아질까? 그건 우선적인 과제지만 한국만화의 동력은 역시 만화를 만드는 사람들(출판사를 포함하여)에게 있는 것 같다. 건투를 빈다. 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