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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 마르소] <어떤 만남>

소피 마르소

<어떤 만남>

<어떤 만남>의 엘자(소피 마르소)는 인정받은 소설가로서, 세 아이의 양육뿐 아니라 무능한 전남편의 경제생활까지 책임져온 그야말로 ‘센’ 여성이다. 동시에, 그녀는 지긋지긋한 이혼 절차를 밟는 와중에도 사랑의 ‘씁쓸한 오렌지향’을 잊지 못하는 로맨틱한 인물이다. 1980년 <라붐>의 빅으로 데뷔해 30여년간 꾸준히 40여편에 달하는 영화에 출연했고, 자신의 이름으로 두편의 장편영화를 연출하고 한편의 소설을 출간한 소피 마르소는, 어찌 보면 엘자와 많은 부분 닮아 있다. 아역배우로 시작해 30여년간 굳건히 자리를 지켜온 ‘독한’ 그녀.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그녀는 여전히 사랑과 일탈을 꿈꾸는 사춘기 소녀 빅의 감수성을 간직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왜 엘자를 선택했나. =리사 아주엘로스 감독의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그녀가 첫눈에 반하는 감정이 무엇인지, 플라토닉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영화 언어를 통해 멋지게 표현해낼 수 있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만남>은 처음부터 끝까지 현실과 판타지를 촘촘히 섞어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데, 나는 이 방법이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면서 느끼는 설렘, 욕망, 바람 그리고 기다림을 효과적으로 표현해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사랑을 하면 그렇지 않나? 어느 순간 그 사람이 바로 내 옆에 있다고 믿지만, 이내 사라져버리고 또다시 기다리고, 상상하고, 욕망하고….

-판타지가 섞인 이야기가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사실, <어떤 만남>의 이야기는 또 다른 버전의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나는 엘자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인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피에르의 환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거다. 사랑스러운 아이들, 안정적인 결혼생활… 피에르는 이러한 현실에 만족하지만, 동시에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여기에서 가끔씩 도망칠 수 있는 환상이 필요하다. 결국은 ‘아니야, 어찌됐건 내가 사랑하는 건 내 부인이야’라고 스스로 다짐할 수 있도록 말이다. 나는 살아가는 데 있어서 판타지가 아주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일탈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게 하고,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고 믿는다. 엘자는 이런 역할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라고 생각했고, 아주엘로스 감독은 이를 가벼운 톤으로 재미있게 잘 창조해냈다고 생각한다.

-재미있는 건 극중 엘자를 판타지적 인물로만 받아들이기에는 현실적인 장면들이 눈에 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그녀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장면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엄마의 모습이지 환상 속 여인의 모습이 아니다. =모든 캐릭터들이 기본적으로 아주 현실적이기 때문에 관객이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주엘로스 감독은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장면을 촬영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자연스러운 현실의 모습을 ‘훔치는’ 것도 아주 좋아한다. 엘자의 매력은 바로, 환상과 현실 어딘가를 자유롭게 왔다갔다하는 존재라는 거다.

-감독은 현실이 아니면 허상이고, 사랑이 아니면 바람이라고 극단적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폭력성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그녀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현실과 판타지, 두 공간 사이에 존재하는 제3의 세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자신들의 자아와 행복을 찾으려고 한다. 피에르는 현실에서 바람을 피운 건가? 아니면 환상 속에서 사랑을 한 건가? 과연 이를 쉽게 단정지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30년 전 <라붐>에서 빅이라는 인물을 연기할 때와 달라진 점이 있나. =그 당시는 본능적으로 연기했다고 생각한다. 그땐 진짜로 영화를 하려고 뛰어든 게 아니었으니까. 내 인물의 감정 상태를 분석한다거나… 뭐 이런 개념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물론 지금은 내 직업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할 때 ‘즉흥성’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대로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내가 이 인물이 될 수 있겠다 없겠다 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순간적으로 느낀다. 무언가 재미있고, 흥분되고… 뭔가를 발견한다는 그런 느낌을 가진다. 이건 내가 <라붐>의 빅을 연기했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감정이다. 물론, 다음에는 감독과 시나리오작가의 의도를 똑바로 이해했는지 확인하고 조율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배우는 감독의 의지와 텍스트를 전달하기 위해 자신의 몸, 목소리, 감정을 빌려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은 <라붐>을 연기했을 때는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보통 어떤 기준으로 인물을 선택하나. 자신과 어딘가 닮은 인물을 선호하는 편인가. =사실 내가 연기하는 인물들과 내가 닮지 않았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나는 그 어떤 인물도 나를 닮아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언제나 내가 연기하는 인물들을 독립적으로 살아 있는 존재들로 받아들인다. 물론 굳이 찾아보자면 비슷한 상황들이 있는 건 사실이다. 예를 들어 (<어떤 만남> 속의 엘자와 같이) 나는 직업을 가진 독립적인 여성이고, 엄마이다. 하지만 이렇게 보자면, 여성으로서 일을 하고 있는 당신도 내가 연기한 인물들과 닮아 있다고 봐야 하지 않겠나? 그렇다고 물론 인물들을 연기하는 데 있어서 개인적인 터치가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찌됐건 나의 몸, 나의 목소리, 나의 감정을 통해서 인물을 표현해내니까 말이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했던 장면처럼, 현실에서 내가 아이들에게 전화를 할 때의 모습이 <어떤 만남> 속 엘자와 전혀 딴판이라고 할 수는 없다.

-프랑수아 클루제와의 작업은 어땠나. 같은 작품에 출연한 건 처음이라고 알고 있다. =신나는 경험이었다. 우리는 아주 오래전에 잠깐 만난 적이 있을 뿐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는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확실히 구별하고 이를 숨기지 않는 (아니면 숨길 줄 모르는) 아주 솔직 담백한 사람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두 사람은 서로 잘 맞았고, 자연스럽게 감정을 표현할 수 있었다. 정말 매력적인 배우이다.

-<어떤 만남>은 아주엘로스 감독과 함께한 전작 <비밀일기>와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는데. =사실 리사는 자주 나에게 시나리오를 보낸다. 그녀의 모든 제의에 긍정적인 대답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리사가 찾는 여배우의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독립적이고 센, 전형적인 프랑스 여인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그녀는 나에게 쉽게 감정이입을 하는 편이고, 감독들이 배우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촬영 중인 작품이 있나. =준비하고 있는 작품들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어떤 순서로 제작이 될지는 확실히 잘 모르겠다. 대규모 예산 영화보다는 저예산 독립영화들에 출연하고 있다. 경력상으로 보자면 위험을 감수한 선택이라고 볼 수도 있다. 지금까지는 도전해보지 않는 것들이라 매번 도전한다는 생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래서 신난다. 만약 배우라는 직업이 똑같은 역할의 끝없는 반복이라면, 아마도 세상에서 제일 따분한 직업일 것이다. (한국 감독들과 작업한다면 그것 또한) 너무 행복할 거다. 솔직히 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시나리오이고 감독과의 만남이기 때문에 상대가 한국 사람이건 이탈리아 사람이건 프랑스 사람이건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영화라는 건 원래 아주 인터내셔널한 게 아닌가.

<라붐>

magic hour

그녀는 거짓말쟁이

진실과 허구가 교묘하게 얽힌 소피 마르소의 자전적 소설 <거짓말쟁이>는 “더 많은 정보가 존재할수록 더 많은 의심이 생겨나는” 현대사회에 대한 은유다. “나는 내 삶을 대중에게 얘기하는 데 관심이 없다. 나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나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겐 쇼크가 될지도 모르겠다. 위키피디아만 봐도 내 삶에 대해선 쉽게 알 수 있다.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그들이 원하기만 하면 나에 대한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글쓰는 일에 재미를 느낀다. 나의 세계엔 파란 나비와 분홍색 달팽이가 산다. 무슨 얘기를 하고 있냐고? 그저 내가 보는 것들을 이야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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