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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웅의 일상어 사전] 또 콸라된 겨?
권혁웅(시인) 2014-08-08

[ 또 꽐라됭 겨ː ]

겉뜻 또 술 먹었느냐는 비난 속뜻 전생을 기억하고 있느냐는 찬탄

주석 광동 헛개차 광고에 출연한 코알라를 보고 땅을 쳤다. 흥, 이거 내가 먼저 떠올렸던 건데, 이걸로 시를 한편 쓰기도 했는데, 저 동네에서 선수를 쳤네? 광고는 이렇다. 주차장에서 유령을 닮은 큰 자루 하나가 발견된다. 자루를 벗겼더니 볼이 벌건 코알라가 졸고 있다. 그걸 보고 경비원이 한탄한다. “아유, 또 코알라된 겨?” 공포물과 변신담과 코미디를 이어붙인 이 광고의 핵심은 당연히 ‘코알라=꽐라’라는 말놀이에 있다. 실제로도 코알라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언어로 ‘물을 먹지 않는다’는 뜻을 지닌 굴라(gula)에서 온 말이니 꽐라와도 닮았다. 물 한컵 먹는 건 힘들어도 생맥주 1000cc는 한번에 털어넣는 재주를 가진 이들이 꽐라다.

사실 코알라와 꽐라 사이에는 훨씬 더 많은 공통점이 있다. 첫째, 겉모습. 둘 다 자다 깨다를 반복한 것처럼 보이는 풀어진 눈과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있다. 둘째, 느릿느릿한 동작. 코알라가 먹는 유칼립투스 잎에는 소화하기 어려운 섬유소와 목질소가 많아서 영양 효율이 좋지 않다. 음식에 영양분이 별로 없고 대사율도 낮아서 코알라는 하루 스무 시간을 자고 남은 시간을 먹거나 쉬면서 보낸다. 자고 마시고를 반복하는 느릿느릿한 꽐라다. 셋째, 독이 든 먹거리. 유칼립투스 잎에는 여러 독성물질이 있다. 그로 인한 손상을 줄이기 위해 코알라는 수종을 바꿔가며 먹는다. 꽐라도 술이 몸에 좋아서 먹는 것은 아니며, 일차 이차 삼차를 옮겨다니며 주종을 바꿔가며 먹는다. 넷째, 흘리기 쉬운 주머니. 유대류인 코알라는 특이하게도 육아낭이 아래로 나 있다. 캥거루의 육아낭은 위로 나 있어서 새끼를 담고 달릴 수 있지만, 코알라는 그럴 수가 없다. 꽐라의 주머니도 그렇게 자주 털린다. 그는 흔히 지갑과 안경을 이차나 삼차 자리에, 버스나 택시 뒷좌석에 두고 내린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둘 사이의 가장 큰 공통점은 귀소본능에 있다. 코알라는 자신이 나고 자란 숲을 기억한다.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벌목된 숲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코알라 사진을 흔히 볼 수 있다. 인부들이 코알라를 다른 서식지로 보내고 숲을 밀어버렸는데, 자기 집을 잊지 못한 코알라가 찾아와서는 폐허 위에 망연자실 앉아 있는 사진이다. 깔끔하게 필름이 끊겼는데도 깨어나서 보면 내 방 침대였던 기억, 있으신가? 그렇다면 우리는 전생에 오스트레일리아 남동부 숲을 천천히 어슬렁거렸는지도 모른다. 와, 저 코알라, 너무 귀여워. 그렇게 말하며 우리는 우리 자신의 뒤통수를 쓰다듬고 있는 것인지도.

용례 어쩌면 ‘헛개차’ 광고에는 또 다른 말놀이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코알라로 변신했다가 금세 김준현으로 돌아왔으니 둘 중 하나는 ‘허깨비’라는 암시. 나아가 그렇게 마시다간 ‘개차반’이 될 수 있다는 경고. 그러고 보니 “마셔야 사람 된다”라는 김준현의 외침에는 필사적인 무엇이 있었던 듯도 하다. 그 혀 차는 ‘똑’ 소리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