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생각도감
김형태의 오! 컬트 <파이널 환타지> <툼 레이더>
2002-03-06

내 마음의 수취인을 찾아서

바야흐로 디지털 세상이다. 사람들은 점차로 어떤 의심도 없이 디지털 방식이 인류에게 멋진 신세계를 펼쳐보일 것이라 믿고 있다. 도서관의 모든 장서들과 전화번호부와 그림과 노래와 주소록과 편지들을 0과 1의 전기신호로 변환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와 기업과 온 국민이 다 함께 힘을 모으고 있다. 가능하다면 사찰도, 묘지도, 동창회도, 쇼핑도, 무엇이든 디지털-사이버 세계화하면서 우리의 삶이 점차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행복을 누리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아끼고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그러한 믿음 하나만 믿고 어마어마한 제작비와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만든 영화가 <파이널 환타지>와 <툼레이더>가 아닐까. 사이버 세계를 영화의 소재로 하고 막대한 제작비를 투자하는 데에는 모종의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컴퓨터 게임이 생활화되면서 사이버 세계와 현실세계를 구분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 그리하여 게임 속 캐릭터를 현실의 인물이 연기해주면 마치 꿈이 현실로 이루어진 듯한 감동을 받을 것이란 믿음(<툼레이더>). 나아가 더욱 정교한 가상현실로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세계를 제공해주면 그 완벽한 가상현실에서 새로운 감동에 빠져들 것이라는 믿음(<파이널 환타지>).

그러나 두 영화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그 노력이 무색하게 대부분 “기대보다 재미없다”라는 게 일반적이었다. <파이널 환타지>의 3D는 정말 환상적이었고 대원들의 죽음은 스토리상으로 볼 때 정말 가슴뭉클한 상황이었다. <툼레이더>의 안젤리나 졸리의 몸매와 액션은 실제 게임 주인공 라라 크로프트의 엉성한 3D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감동하기를 거부했다. 그 어떤 황당한 영화를 볼 때보다 냉정했다. 왜일까?

아담, 류시아, 사이다, 리밋, 유키 테라이, 교코 다테, 디키…. 이들이 누구였는지 기억하는지. 한때 주목받았고 사랑받기를 원했지만 깨끗이 버림받은 이들의 이름이다. 이른바 사이버 가수, 사이버 스타들의 이름이다. 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 누구도 궁금해 하지 않을, 단지 0과 1의 수치의 조합일 뿐인 이(것)들에게 ‘어디서 무엇을 할까’라는 말조차 어색하다. 이들은 스타가 되어서 온갖 팬시상품에 부착되고 CF모델로 활동하고 소년소녀들의 친구가 되고자 했지만 그 꿈은 그저 몇몇 벤쳐회사들의 난센스 사업실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사이버 세계에 대한 시기상조적인 과잉 믿음과 상술이 낳은 디지털 사생아들이다. 그러나 사이버 스타의 망각이 우리에게 슬픈 일로 남아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아직까지는 인간들에게 가장 중요한 교감의 조건은 그 대상이 ‘누구’냐는 것이다. 좋은 노래, 좋은 그림을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묻게 되는 것. 그 ‘누구’라는 특정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현실세계든 사이버 세계든 당신의 마음은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생각해 보자.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받았는데 그 발신이 이메일 서비스 회사의 자동메일 발신 프로그램에 의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면 당신은 행복할 것인가 분노할 것인가.

경이로운 판타지를 보여주는 <파이널 환타지>를 보면서도 결국 감동이 없는 이유는 그 주인공들이 아무도 아니기 때문이다. 안젤리나 졸리가 열연하는 라라 크로프트가 아무도 아니기 때문이다. 아담과 교코 다테의 근황을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 것은 그(것)들이 아무도 아니기 때문이다.

역시 우리에게 아직까지는 경이로운 판타지보다는 마음을 줄 그 누군가가 절실한가 보다. 김형태/ 황신혜밴드 리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