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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 용서하지 않는 죄, <유로파>
2002-03-06

<유로파>를 본 것이 언제였더라. 92년 가을쯤이었던 거 같다. 인터넷에서 영화개봉 일자를 조사해보면 확실한 연도와 날짜가 나오겠지만, 찾아보지는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내인생의 영화’란 영화에 대한 세간의 평가나 정보와는 무관하게 개인의 경험과 상황에 기초하여 그렇게 기억되면 그만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내 기억에 의지하자면 <유로파>는 92년 가을에 강남의 뤼미에르극장에서 개봉했다. 뤼미에르극장이 아직도 있는지 모르겠다. 최근엔 거의 가보지 않았다. 아마 없어진 것이 아닐까 짐작한다(뤼미에르극장 아직 있나요? 있는데 없어졌다고 하면 극장주께선 섭섭하실라나…).

비가 자주 내리던 늦여름 혹은 초가을쯤이었다. 늦은 태풍이 몰려오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그때 나는 반바지에 소매 긴 셔츠를 입고 조그마한 배낭이 터져라 책을 가득 넣고는 운동화를 질질 끌면서 도서관에 다니고 있었다. 그때 내가 처한 상황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무엇 하나 선택할 수 없었고 선택할 용기도 없었다. 도서관은 어쩌면 내가 갈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 같은 곳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조금 외로웠고 그리고 조금 비겁했다.

그날은 도서관 창가에 앉아 비오는 풍경을 바라보다 이유없이 우울증에 빠져버렸거나 혹은 같이 있던 지인의 가벼운 농담에 상처를 입었거나 하는 기억하기도 사소한 일로 무척 불안정해져 있었다. 나는 과감히 가방을 쌌고 도서관을 빠져나와 폭우가 쏟아져 텅 빈 광장을 가로질러 학교를 탈출했다.

아무 버스나 잡아타고 간 것이 강남행이었다. 멍하니 비가 내리는 차창 밖을 바라보다가 눈에 극장이 하나 들어왔다. 무작정 내렸고 무작정 가장 이른 시간대의 영화표를 하나 샀다. 그게 <유로파>였다.

표를 사고 나서야 대체 이거 무슨 영화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포스터엔 붉고 커다랗게 EUROPA라고 쓰인 글자 아래 한 남자가 어딘가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서 있었다. 어… 전쟁영화인가? 포스터에 코를 갖다대고 하단에 쓰인 스탭들 이름을 찬찬히 보았다. 감독 라스 폰 트리에. 거의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었다. 지금은 라스 폰 트리에라는 이름이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당시만 해도 북유럽 덴마크 감독님의 이름은 발음하기도 힘들게 낯설었다(나만 그랬는지 모른다.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이름이었는지도…).

아무튼 영화는 시작되었다. 관객은 나를 포함해서 4명뿐이었다(너무 적어서 기억한다). 어둡고 어두운 화면 속으로 비 내리는 철길이 보이고 나지막한 남자의 목소리(나중에 알고보니 막스 폰 시도의 목소리였다)가 내게 최면을 걸어왔다. 영화 속엔 내내 비나 눈이 내리고 있었고 단 한 장면도 낮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처음 영화의 낯섦에 당황하던 나는 어느 틈엔가 그만 최면에 걸려들고 말았다. 흑백에서 중요한 부분만 가끔 컬러로 변하는 화면에서 감독이 원하는 대로 컬러로 등장하는 인물에 감정이입하고 그 상황에 몰두하였다. 나는 1945년 전후 독일로 간 레오폴드 케슬러가 되어버렸고 그가 겪는 일에 함께 분노하고 함께 괴로워했다. 그리고 그가 익사하는 장면에선 내가 물에 빠져 죽어가는 것처럼 생각될 지경에 이르렀다.

영화가 끝나고 터덜거리며 바깥에 나왔을 때 여전히 비는 쏟아지듯 내리고 있었지만 세상은 좀 다르게 보였다. 영화 속에서 두번 반복되어 나오던 대사가 귀에 맴돌았다. 아무 편도 선택하지 않는 것이 바로 죄라는. 신도 그것만은 용서하지 않는다는…. 그래서 케슬러는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우산을 펴고 거리로 나서면서 나는 내가 해야 할 새로운 선택을 곰곰이 생각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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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정미/ 시나리오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