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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보고] 역사보다 강인했던 한 인간에 관하여

안젤리나 졸리가 감독한 <언브로큰>, 감독과 배우 인터뷰

<언브로큰>

안젤리나 졸리는 지금 현재 할리우드에서 모두가 원하는 배우다. 그녀가 “할리우드 영화 관계자들의 눈에 들기 위해 3개월간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피칭’을 하고, 한밤중에 불현듯 깨어나 아이디어를 보드에 붙이는 과정을 되풀이”했다고 말한다. 졸리의 두 번째 장편 극영화 연출작 <언브로큰>은 그만큼 그녀에게 절실하게 다가온 프로젝트였다. 실존인물이었던 루이 잠페리니의 한 많은 삶을 통해 그녀가 보여주려 했던 건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끝내 꺾이지 않았던 한 인간의 강인한 정신이다. 12월2일 뉴욕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서 진행된 감독 안젤리나 졸리와 주연배우 잭 오코넬의 만남을 전한다.

감독이라는 직업을 사랑한다

안젤리나 졸리 인터뷰

-공교롭게도 브래드 피트와 당신 모두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다.

=글쎄, 영화제작을 시작한 건 내가 먼저다. <언브로큰>의 모티브가 된 실존인물인 루이(잠페리니)를 만났으니까. 그리고 아직도 나는 이 작품을 전쟁영화라고 생각지 않는다. 나는 <언브로큰>이 인간의 정신(human spirit)에 대한 영화라고 본다. 한 남자의 인생을 그린 대서사시라고나 할까.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브래드가 <퓨리>를 하게 된 거다.

-<언브로큰>은 ‘용기’에 대한 작품이기도 하다.

=로라 힐렌브랜드의 원작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각자 감흥을 받는 부분이 다를 것이다. 현대사회에서는 잔인하고 엄청난 일들이 수시로 벌어지지 않나. 뉴스만 보더라도 고통받는 사람들과 그들의 분노, 증오를 느낄 수 있다. 어떤 때는 스스로 이런 감정에 휩싸여 주체를 하지 못할 때도 있다. 로라의 책을 읽었을 때 이 같은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인간 각자의 강인함에 대한 새로운 영감을 받을 수 있었다. 루이는 성자도 아니었고, 완벽한 사람도 아니었다. 단점이 많은 지극히 인간적인 보통 사람이었다. 이런 보통 사람이 매 순간 선택을 통해 고난과 직면하며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 인생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면서 ‘위대한 사람’이 되어가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루이 잠페리니는 지난 7월2일 97살로 사망했다. 그가 그립나.

=나의 루이?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한 졸리는 기자가 건네준 휴지로 눈물을 닦았다.) 감정적이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했는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없어졌다는 것이 가장 슬프다.

-코언 형제가 각본을 담당했는데, 그들은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코언 형제는 이미 원작을 바탕으로 각본을 쓴 경험이 있어서 그들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이 많았다. 원작에서 어떤 장면을 편집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두려워할 때면 차분한 목소리로 “책의 모든 것을 영상으로 담을 순 없다. 그러면 재미없는 영화가 될 테니까”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책을 읽고 난 후에 받은 감흥을 관객이 느낄 수 있도록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중 우선순위를 매기고, 이 선택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좋은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줬다. 전체적인 구조를 결정짓고 유머를 가미해준 것이 가장 큰 도움이었다.

-앞으로 연출을 더 많이 할 것 같은가? 아니면 연기를 더 할 것 같은가.

=연출을 하고 싶다. 감독이라는 직업을 사랑한다. (웃음) 늘 이야기를 들려주고, 관객과 소통하는 것을 좋아했고, 배우로서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도 감사했지만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좋아한 적은 없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느낀 건데, 내가 배우가 된 데에는 어머니가 배우가 되고 싶어 하셨기 때문이더라. 어머니는 내가 배우로 활동하는 것을 무척 좋아하셨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니 배우로 활동하면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아직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서 행복하다. 물론 방법은 바뀌었지만. 재능 있는 배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카메라로 지켜볼 때 무척 행복하다.

캐릭터와 스토리가 가장 중요하다

잭 오코넬 인터뷰

-처음 안젤리나 졸리를 봤을 때 긴장하지 않았나.

=왜 아니었겠나? 숨쉬기도 힘들었지. 하지만 나를 비롯해 모든 배우와 스탭이 금방 적응할 수 있었던 건 안젤리나가 모두를 동등하게 대해줬기 때문이다. 물론 안젤리나가 할리우드 톱스타라는 것은 사실이고, 거기까지 도달하게 된 것도 정말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데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래서 모두가 안젤리나를 믿고 작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안젤리나도 날 처음 만날 때 많이 긴장했다고 하더라. 안젤리나는 모두에게 안젤리나 졸리라는 ‘브랜드’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해줬다.

-실제로 루이 잠페리니를 만날 기회가 있었나.

=다행스럽게도 루이를 직접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며 정말 엄청나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대공황과 세계대전을 모두 겪은 산증인이 아닌가. 그래서 안젤리나도 그의 이야기를 영화에 잘 담고 싶은 바람이 있었을 거다. 내 인생의 가장 큰 역할이기도 하고. 하지만 촬영하면서 혼자 내던져졌다는 생각보다는 팀의 구성원으로 함께 고생하면서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는 느낌이 든다.

-육상선수 역할은 물론 47일간 바다에서 표류하는 장면이나, 포로수용소 장면 등을 위해 육체적인 고통도 많이 따랐을 것 같은데.

=몸무게가 줄어드는 과정을 차례대로 우선 촬영한 후에 올림픽 육상경기 촬영을 마지막으로 했다. 때문에 체중감량을 계속하다가 9일 만에 올림픽 선수처럼 다시 근육을 만들어야 했다.

-지금까지 맡아온 역할과 달리 상당히 ‘긍정적’인 캐릭터를 맡았다.

=연기를 할 때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한다. 돈을 벌 수 있는 프로젝트도 있고, 열정 때문에 하는 프로젝트도 있지만, 지금은 열정을 많이 따라가고 있다. (웃음) 우선 작품을 선택할 때 원작과 시나리오를 보고 감독을 본다. 캐릭터와 스토리가 나에겐 가장 중요하다.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것을 접하면서 나의 한계점을 알아내고 싶다. 피하고 싶은 게 있다면 같은 유의 캐릭터에 갇혀서 늘 똑같은 것을 반복하는 것이다. 아마도 무척 지루해할 것 같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배운 것이 있다면.

=참을성과 관용, 새로운 한계점을 통해 자신을 강하게 만들었다는 점. 그리고 적정량의 수면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뼈저리게 느꼈다. 캐릭터와 스토리 때문에 수면량을 점점 줄여서 연기에는 큰 도움이 됐지만, 힘들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메이크업 등 필요한 준비를 한 뒤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촬영을 했으니까.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또 가능하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과연 제대로 연기를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나에게 던졌었다. 지금은 연기자로서 더 탄탄해진 느낌이다. 바람이 있다면 배우로서나 인간으로서 계속 발전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연기를 위해 극중 대립관계인 미야비와 일부러 가까이 하지 않았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맞다. 그런데 나중에서야 이 작품이 미야비의 데뷔작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너무 잔인했던 것 같다. (웃음) 안젤리나에게 사적인 감정은 없지만, 연기를 위해서 미야비와 거리를 두겠다고 말했었다. 그 얘기를 안젤리나가 미야비에게 전했다. 다행히 그가 이해해주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가 너무 고생했을 것 같아서 미안하다. 지금은 모두가 친구다.

-실제로 루이가 겪은 상황에 처했다면 당신은 어땠을 것 같나.

=아마도 ‘라디오 도쿄’ (극중 미군 포로를 이용한 허위 선전 방송)에 계속 있었을 것 같다. 솔직히 요즘에는 애국심을 느끼기 어렵거든.

-조금 전 애국심을 느끼기 어렵다고 했는데, 무슨 뜻인가.

=나는 아일랜드계 영국인이다. 아버지가 아일랜드 출신이고, 어머니는 영국인이다. 좀더 아버지쪽에 가깝다고 봐야겠지. 정부에 피해를 입은 시민들을 많이 봐서 그런지 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 전쟁에 나가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사람들이 2차 세계대전을 ‘아름다운 마지막 전쟁’(The Last Beautiful War)이라고 말하더라. 그 표현이 죽도록 싫지만,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이 작품 덕분에 더 많은 기회를 갖게 될 텐데, 꼭 함께 작업하고 싶은 감독이나 배우가 있다면.

=게리 올드먼! 당장이라도. (폭소) 내 생각에는 그가 새로운 길을 개척한 배우가 아닌가 싶다. 나를 비롯한 노동계급 출신의 배우들에게 말이다. 출신 배경에 구속받지 않고 연기할 수 있는 자신감을 보여줬다. 그 점에서 너무 감사하다. 게리 올드먼과 꼭 함께 작업을 못하더라도, 악수만 할 수 있어도 너무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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