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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 × cross] 탐정명 나그네의 분노와 농담
정지혜 사진 최성열 2015-01-19

14년 만에 정규앨범 발표한 어어부 프로젝트

장영규(왼쪽), 백현진(오른쪽)

어어부 프로젝트(이하 어어부)는 무엇이다, 라고 규정하려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좀처럼 들어본 적 없는 음색의 보컬, 기이한 사운드, 그보다 더 파격적인 앨범 구성은 어어부를 규정 불가한, 아니 규정을 허하지 않는 밴드로 만들어버린다. 어어부의 보컬이자 작사를 담당하는 백현진과 작곡과 편곡을 책임지는 장영규 두 기인이 오랜만에 정규앨범 ≪탐정명 나그네의 기록≫을 발매(2014년 12월18일)했다. 앨범 제목부터 궁금증을 자아내더니, 앨범의 구성을 들여다보면 더욱 기묘해 도통 빠져나올 수가 없다. 대강의 내용은 이러하다. 한 남자가 있다. 그는 남한에 거주하는 40대 이혼남. 그의 직업은 탐정이며 탐정명은 나그네다. 그가 쓴 1년간의 일기 혹은 일지 뭉치를 누군가가 주워든다. 그리고 일기는 뒤죽박죽 뒤섞인다. 그러니까, 이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모두 그 남자의 어떤 하루들이 무작위로 섞인 모음이다. 어어부는 어째서 나그네를 앞세우고 나타난 걸까. 음악뿐 아니라 영화와도 범상치 않은 인연을 맺고 사는 두 남자를 만났다.

-≪21C 뉴 헤어≫(2000) 이후 14년 만에 정규앨범을 발매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린 건가.

=백현진_≪21C 뉴 헤어≫ 낼 때만 해도 형(장영규)이랑 다음 앨범은 금방 내자고 얘기했는데 금세 시간이 흘러버렸다. 이번 앨범의 곡들 대부분이 2010년에 나왔다. 그 후 마무리까지 뭔가 일들이 많았다. 그렇게밖에 얘기를 못하겠다.

-애초에는 2010년 10월에 했던 공연 직후 앨범이 발매될 예정이었던 걸로 안다.

=백현진_최근 보도된 기사들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 이번 앨범이 마치 당시에 했던 음악극의 사운드트랙처럼 소개되고 있더라. 아니다. 공연이 먼저가 아니고 처음부터 앨범을 생각하고 진행한 공연이었다. 예전부터 어어부가 음악극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왔고 이 물건(앨범)이면 가능할 것 같아서 앨범 발매 전 쇼케이스를 네번 진행했다. 그중 두번이 음악극이었다.

장영규_단지 음반이 늦게 나온 것뿐이다.

-앨범 구성이 재밌다. 아니, 기이하다고 해야 더 맞겠다. 첫곡인 <시작>, 앨범에 대한 소개글에 해당하는 <탐정명 나그네의 기록에 부쳐>, 마지막곡 <맺음>을 제외하면 모두 탐정명 ‘나그네’의 일기를 무작위로 뽑아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앨범을 듣고 있으면 일기 뒤에 숨어 있을 암호나 비밀을 찾아보게 된다.

=백현진_이런 장치를 만들어두면 듣는 사람들이 이런저런 생각을 해볼 수 있지 않겠나. 앨범 속에 비밀은 당연히 있다. 퀴즈의 정답을 맞혀보라는 식의 비밀은 절대 아니다. 말 그대로 비밀(밝혀지지 않았거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다.

-뒤섞인 일기 때문일까. 뒤섞인 편지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홍상수 감독의 <자유의 언덕>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백현진_안 그래도 사람들이 그 얘기를 할 것 같았다. 2010년에 앨범 작업물이 나왔고 <자유의 언덕>은 그 뒤다. 거기까지만 얘기하련다. (웃음)

-그런데 어째서 탐정과 나그네란 말인가.

=백현진_작업을 하려고 형이랑 옌볜의 로동촌이라는 작은 마을에 가 있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나그네라는 단어가 들려왔다. 알고 보니 옌볜에서는 남편을 나그네라고 부르더라. 재밌었다. 그래서 형이랑 낄낄거리며 그 3음절을 계속해서 소리내봤다. 나그네라는 소리 자체가 계속 우리 주변에 맴돌기 시작한 거다. 나그네를 (앨범 속) 주인공의 별명이나 아이디로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탐정은, 초등학생만 돼도 탐정이라는 말은 다 안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는 탐정이라는 직업이 없다. 모두가 아는 것 같긴 한데 실체는 없는. 그게 되게 묘한 기분이더라. 계속해서 무언가를 추적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밖에서 보는 한국사’처럼 탐정이라는 역할이 우리가 하고자 하는 얘기를 한 발짝 떨어져서 해볼 수 있게 할 것 같았다.

-옌볜에 머물렀을 때의 얘기를 좀더 들려달라.

=장영규_열흘 정도 머물렀는데 정확하게 기억나는 건, 도착한 첫날이다. (현지에서 머물 공간을 내주신 아는) 선생님과 선생님 제자들이 술을 잔뜩 사가지고 오셨다. 그분들이 마당에 꽃을 심는다고 했던 것 같긴 한데…. 그러다가 눈을 떠보니 마당에 둘(장영규, 백현진)만 자고 있더라. 밥은 어떻게 해먹어야 하는지와 같은 정보 하나 안 주시고 모두 가버리셨다. (웃음)

백현진_이 앨범이 어떻게 가야 한다는 방향과 구조는 거짓말처럼 그곳에 머물렀던 며칠 안에 후루룩 다 나왔다.

-두 번째 트랙 <탐정명 나그네의 기록에 부쳐>는 배우 문성근이 내레이션을 했다. 2010년 백현진의 부엌에서 고량주를 마시며 곧바로 녹음한 걸로 안다.

=백현진_형이 ‘문성근 선배 어떨까?’ 해서 바로 좋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문성근 선배 모습이 클리셰처럼 들어간 곡이다. 2010년 선배가 한창 바쁠 때였는데 선뜻 해주셔서 더 고맙다.

-특별히 애착이 가거나 유독 힘들게 녹음한 곡이 있다면.

=장영규_그런 건 없다. 앨범 전체가 하나라고 생각하지 각각의 곡이 따로 무엇이다, 라고는….

백현진_힘들었던 곡 있지 않나. <0815 실시간>. 내가 리듬을 못 타는 바람에 노래를 못 불러냈다. 이 노래를 빼야 하나 싶을 정도로 녹음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럴 때 편곡자인 장영규는 어떤 디렉션을 주나.

=장영규_할 때까지 해야지. 다른 방법이 없다. (웃음)

백현진_아, 이 자리를 빌려 3호선 버터플라이의 서현정씨에게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가끔 나에게 비트 수업을 해주는데 이 곡을 부를 때도 도움을 많이 줬다.

-백현진이 작사를, 장영규가 작곡과 편곡을 주로 담당한다. 작업은 대체로 어떤 순서로 이루어지나.

=백현진_초기의 어어부는 글이 먼저 나오거나 곡과 글이 동시에 나왔다. 지금은 곡이 먼저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로 오래 같이 일을 해본 사람들에게 작업 순서는 큰 문제가 안 된다. 이미 훈련이 돼 있다. 문제라면 가사 외우는 것? 나이를 먹으니 안 외워진다. (웃음) 공연에서 가사 틀릴 때가 많은데 뭐 큰 상관은 없다.

-‘앨범을 만든 이들이 생물학적으로 이전보다 늙었다’는 게 이번 앨범을 작업하며 겪은 가장 큰 변화라고 들었다.

=백현진_나이 먹으면 소리는 어떻게 바뀌지? (웃음)

장영규_컴퓨터가 점점 좋아져서…. (웃음) 근데 나이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근래 다시 ≪개, 럭키스타≫(1998)를 들어봤는데 내가 그때 어려서 그런 음악을 만든 건 아니니까.

백현진_20대에는 정말 화가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분노(의 대상)가 훨씬 더 명확해지고 정리가 되더라. 이제는 그 분노를 다른 식으로 번역하게 된다. 너무 몰라서 미쳐죽겠을 (젊었을) 때보다는 지금이 낫긴 나은 건데… 모르겠다.

-장영규는 영화음악감독이고 백현진은 영화에 출연하거나 때론 직접 연출도 한다. 각자 올해 영화계에서의 활동 계획은 뭔가.

=장영규_이거 다 말하면 감독들이 싫어할 텐데. (웃음) <암살> <곡성> <서울역> <코인로커걸>의 음악 작업을 한다. 그리고 9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진행하는 영화감독들의 무대 작업에 들어갈 음악 작업을 진행한다.

백현진_주변에서는 <경주> 이후로 섭외가 많이 들어오지 않느냐고 하는데, 아무것도 안 들어온다. (좌중 웃음) 조만간 장률 감독님의 단편영화를 찍기로 했다. 감독님이 내게 여성스러운 면이 많다고 하셨는데 그래서인가, 이번에 간호사 역할을 하게 됐다. 서울노인영화제 출품 예정작이고 35mm 필름으로 찍는다. 35mm 필름도 다 없어지고 있고 시간이 가면 노인들도 점점 사라지고.

-오랜만에 낸 앨범인 만큼 올해 어어부 공연도 많이 볼 수 있을까.

=백현진_≪탐정명 나그네의 기록≫이 곧 음악극은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말하겠다. 이번 앨범은 음악극으로 풀 때가 있고 라이브 콘서트를 할 때가 있을 거다. 어어부가 공연을 많이 하는 팀은 아니지만.

장영규_일단 2월 중에 공연을 할 계획이다.

-그런데 말이다, 팀명 ‘어어부’는 무슨 뜻인가.

=백현진_(웃으며) 진짜 오랜만에 받아보는 질문이다. (종이에 직접 ‘漁魚父’라고 쓰며) 이 어부(漁父)는 물고기 잡는 사람, 이 어부(魚父)는 물고기의 아버지. 말장난이긴 한데 희한하지 않나. 한쪽에서는 물고기를 보호하려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물고기를 잡으려고 하니. 그놈이 그놈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