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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소비의 최고 게이트 <드래곤 퀘스트>
2002-03-07

게이머가 게임을 만들고 싶어질 때는?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생산은 자기 완결적 순환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생산자는 생산하고 소비자는 소비한다. 순환의 핵심은 물론 돈이다. 돈의 순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생산이, 이어서 소비가 중단된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게 소비자의 일부가 끊임없이 생산자에 합류하는 과정이다. 돈뿐 아니라 사람도 원활하게 순환해야 시스템이 계속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특히 게임을 생산하는 사람들은 대개 소비자 출신이다. 습관처럼 게임을 하다가 어느 순간 나도 게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떠올린다. 노트를 끄집어내 거창하게 끼적거리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꿈에 부푼다. 10년 뒤, 아니, 5년 뒤 시드 마이어나 피터 몰리뉴와 악수를 하는 자기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도대체 어떤 게임이, 게임의 어떤 부분이 이런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게이머의 창조적인 본성을 자극해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파격적인 전환을 하겠다는 결심을 가져오는 것은 무엇일까?

쉽게 떠오르는 건, 방금 끝낸 게임이 너무 좋은 나머지 그 게임의 후일담 혹은 팬으로서 나름의 해석을 하는 게임을 만들고 싶어지는 경우다. 이른바 ‘팬픽’의 게임 버전인 셈이다. 게임이 끝난 게 아쉽고 주인공들이 그뒤에 어떻게 될 것인지 너무나 궁금해서 후속편이 나오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직접 팔을 걷고 나선다. 그 게임이 꼭 명작이고 대작일 필요는 없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별거 아니라도 내 안의 특정한 코드를 건드리기만 했으면 족하다. 개인적으로 <폴리크롬>이란 게임에 빠져든 나머지 같이 플레이한 동료와 함께 <폴리크롬2>의 시나리오를 쓰고 기획을 한다고 부산하게 굴었던 경험이 있다.

어떤 게임을 하다 보면, 이 정도면 나도 충분히 만들겠다는 생각이 모락모락 떠오르기도 한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롤플레잉 게임 <드래곤 퀘스트>를 해보면 유명세에 비해 의외로 단순하다. 사실은 간단한 시스템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보이는 건 교과서 같은 게임이기 때문이다. 게임의 구성 요소들이 별다른 변헝없이 정석처럼 하나하나 짜여져 있다. 대단한 복선이나 드라마틱한 연출없이, 그저 적과 싸우고 퀘스트를 해결하고 주인공을 성장시킨다는 롤플레잉 게임의 정석을 담담하게 진행한다. 이 게임을 하는 건 교과서를 읽는 것과 비슷하다. 정석이란 어떤 건지 자연스럽게 깨우치고, 나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되는 경험 중 가장 근사한 것은, 자신도 모르던 창조적인 본성이 잠을 깨는 경우다. 오래된 어드벤처 게임 <룸>을 플레이하면서 처음으로 게임을 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글을 어딘가에서 보았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봤는데, 잘은 모르겠지만 <룸>의 놀라운 상상력이 아름다운 음악과 그래픽과 어우러져,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창조적인 본능을 일깨우는 게 아닌가 싶다.

실제 게임을 만들건 아니건 간에 이런 경험은 살면서 쉽게 만나기 어려운 귀중한 축복이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던 그 경험은 지칠 때면 떠올릴 수 있는 아름다운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반대로 최악의 경험은 게임을 하다가 이따위 게임은 나라도 당장 만들겠다며 마우스를 내던지는 순간이다. 운나쁘게 그런 게임이 몇개 겹치기라도 하면 게임 같은 건 다시는 하지 않겠다며 마음의 문을 닫을 수 있다. 그래서 세기의 게임 제작자 후보를 놓치고, 그가 만들 게임에 감동받을 수많은 사람들의 즐거움을 빼앗고, 나아가 게임 생산의 순환 시스템을 결정적으로 어긋나게 만들지 도대체 누가 알겠는가? 박상우/ 게임평론가 www.MadorDea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