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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판 `재활용 밴드` <브레멘 밴드>
2002-03-07

anivision

동화 <브레멘 음악대>는 한마디로 ‘재활용 밴드’ 이야기다. 인간에게 쓸모없어져 폐기처분당하게 된 당나귀와 사냥개, 고양이, 수탉이 뭉쳐 밴드를 결성, 보금자리를 찾는다는 그림 형제의 원작은 원래 독일에서 전해지던 설화. <브레멘 음악대>를 26부작 TV시리즈 애니메이션으로 재구성한 게 <브레멘 밴드>다. KBS에서 방영됐던 <삐까뽀 친구들> <환상마을 토포토포>를 제작한 3D 애니메이션 전문 제작사 에펙스디지탈이 기획중인 <브레멘 밴드>는 그러나 원작과 다른 세계관으로 전개된다.

먼저 실제 독일의 도시인 브레멘은 현실 세계와 다른 ‘브레멘 시티’로 설정됐다. 이곳은 동화에 나올 법한 고풍스런 건축물과 현대 문물이 공존하는 곳이다. 이야기는 청각장애인 소녀 티티가 벽을 통해 우연히 브레멘 시티로 들어오면서 시작된다. <이상한 나라의 폴>처럼 브레멘 시티에 오게 된 티티는 그곳에서 고양이로 변신하게 된다. 그런데 그녀가 도착한 곳은 하필 브레멘의 궁궐. 처마 끝에 매달린 그녀를 병사들로부터 구해준 것은 브레멘의 왕자 레지탕이었다. 자유와 낭만을 추구하는 몽상가인 레지탕은 그녀와 함께 궁궐을 탈출, 함께 여행을 시작한다. 이곳에서 비로소 소리와 음악의 세계를 경험하는 티티.

도중에 이들은 여러 동물을 만나게 되는데 티티는 싱어를, 레지탕은 원작에 없는 밴드 매니저를 맡는다. 차츰 가세하는 멤버들을 보자니, 과연 폐기처분 직전의 재주꾼들이다. 먹고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전직 경찰관 출신 피피독은 직무태만으로 직장에서 쫓겨났지만 새로운 직장을 얻고 가정에 복귀하는 게 꿈. ‘밑바닥 인생의 선배’로서 밴드에 합류, 드럼을 담당한다. 리드 기타를 맡은 코코닥은 음식배달부 출신. 명랑하고 유머러스하다. 소원은 아름다운 의상을 만드는 디자이너. 덜덜마는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섬세한 성격을 지녔다. 세상 사람들의 따돌림으로 괴로워하던 이 수리공은 멤버들에게 자신의 차를 내주며 함께 여행할 것을 제안한다. 베이스 기타 담당.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당나귀, 사냥개, 고양이, 수탉의 멤버는 원작 그대로 재현됐다.

브레멘 시티를 여행하는 밴드를 번번이 위험에서 구해주는 게 바로 티티의 조가비 목걸이다. 그녀를 브레멘으로 이끈 조가비 목걸이는 브레멘의 전설에 등장하는 보물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이 목걸이를 지닌 사람이 전설의 악보를 연주하면 모든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목걸이의 위력은 계속 지켜봐야 할 듯하다.

일행은 현수교, 코알라 마을, 바닷가, 눈 마을, 늘푸른 숲, 자동차 경주 마을 등 브레멘 시티 여기저기를 여행하며 세상의 아름다움을 배우게 된다. 주변 캐릭터도 다채롭다. 왕자의 가출로 고민중인, 현명하지만 판단력이 흐려진 왕을 비롯해 음모와 계략으로 가득 찬 내무대신 앵트, 레코드 가게를 운영중인 아가씨 코미, 책방을 운영중인 코지, 허영심 많은 코지의 약혼녀 등 주변 캐릭터가 이미 생생하게 숨쉬고 있다.

해외합작을 추진중이라는 <브레멘 밴드>는 3분가량의 데모 영상이 이미 나온 상태. 홈페이지(www.bremenband.com)에서 더빙과 음악 작업까지 마친 영상을 볼 수 있다. 작품 전개방향이 한눈에 보이는, 잘 만들어진 데모 영상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예쁘고 밝은 색감이다. 동화를 연상시키는 고풍스럽고 아기자기한 건축물도 한몫한다. 3D 영상에서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 아쉬움이 있지만, <삐까뽀 친구들> <환상마을 토포토포>의 다소 어색했던 움직임은 많이 나아졌다. 무엇보다 탄탄한 초기 설정이 든든하다.

판타지 세계라지만 여전히 계급이 존재하는 브레멘 시티에서 일행은, 순수한 마음으로 여행을 한다. 이곳에서 ‘밑바닥 인생’들이 어떻게 앞길을 헤쳐갈지, 아이 같은 마음으로 기다리게 된다. 김일림/ 월간 <뉴타입> 기자 illim@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