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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낯선 소설의 집 <이인성 홈페이지 글모음 001>
2002-03-07

김정환의 컬렉터 파일

나는 책에 관한 한 ‘내용은 머리 속에 진열은 모양 예쁜 걸로만’ 주의자다. 한 10년 전에는 수천권이 넘는 인문학 관련서들을 보다가 갑자기, 저걸 뭐 빤다고 이사 다닐 때마다 등짐 지고 다니냐, 뭐 그런 생각이 들면서 벌써 본 책은 다시 볼 것 같지 않고 아직 안 본 책은 앞으로도 안 볼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싸그리 후배들이 있는 <문학연구소>에 기증을 해버린 적이 있다. 그리고 한 5년 동안, 그 벽을 클래식 CD로 채웠으니 안 쫓겨나고 사는 것만 해도 감사할 일이다. 어쨌거나 외국 음반사 CD의 재킷 도안은 책 도안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고급스럽고 예쁘다. 단행본의 1/8만한 부피를 2배 값으로 팔아야 하니 얼굴 화장에 신경을 안 쓸 수 없지 않은가.

하여, 내 장정 취미는 갈수록 편집광으로 발전, 내 책 중 잘 나가더라도 장정이 맘에 안 드는 책은 버리고 못 나가더라도 장정이 예쁜 책은 곁에 꼽아두고 가끔씩 쓰다듬어 보고 그런다. 하긴 나도 독자 복이 없다고는 못하겠으나 그것보다는 편집장-디자이너 복이 훨씬 더 큰 사람이다. 십억대 수주액의 디자이너 박혜준이 만들어준 책들은 여러 번 디자인상을 받았다. <이론과 실천> 편집장 시절 황경희가 ‘만들어준’ <음악이 있는 풍경>은 지금도 내 자랑거리고, 청년사 이경희 편집부장이 만들어준 <내 영혼의 음악>은 최근 내 곁에서 애첩 노릇을 착실히 하고 있다.

소설가 이인성은 내 오랜 친구다. 이걸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 게 사실 나는 이상한데, 행동반경과 방식은 달라도 문학은 (물로 내가 질이 떨어지지만) 별반 다를 게 없어보이는 까닭이다. 그와 나의 유구한 차이는 딱 하나. 나는 그에게 늘 부탁이고 그는 늘 들어준다는 것. 그런데 재작년 말인가 사소한 역전이 있었다. 야, 부탁인데, 고료 받지 말고 시 한편 써주라. 내 홈페이지(www.leeinseong.pe.kr)에 싣게…. 그 부탁을 나는 물론 들어주었고, 괜히 나 혼자 싱글벙글했다.

위 책은 그 답례로 받은 것이다. 나처럼 ‘청탁’을 받은 시인-소설가-평론가들의 글을 모았다. 정말 정겨운 문학의 집이라 할 만한데, 나는 이 책을 받아들고 횡재를 한 기분이면서도 “아뿔사!”했다. 회색 망(網) 대비와 검정색만을 쓴 손바닥만한 이 책은 장정과 내부 편집이 정말 앙증맞다. 그리고 상장(喪檣) 처리된 하시라(柱) 글씨가 깨알 같으면서 독일-고전풍이다. 디자이너 조혁준이라. 하, 이런 놈을 감춰두고 있었나. 으시댈 거리 하나 없어졌다. 어쩌나…. 나는 누가 이 책 집어갈까봐 전전긍긍한다. 비매품. 300부 한정판이다. 김정환/ 시인·소설가 maydapoe@thrun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