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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승, 변요한] 검증된 것 이상의 가능성
이화정 사진 오계옥 2015-03-16

<소셜포비아> 이주승, 변요한

<소셜포비아>를 연출한 홍석재 감독은 변요한이주승을 ‘양’과 ‘음’으로 표현했다. 뜨겁고 생동감 넘치는 변요한이 관객에게 ‘다가가는’ 성격이라면, 날카로움과 연약함이 공존하는 이주승은 관객을 ‘다가오게’ 하는 성격의 배우다. 쉽게 말해 변요한이 다음 세대의 ‘하정우’ 같은 스타성을 가진 배우라면, 이주승은 <살인의 추억>(2003)의 박해일을 맞닥뜨렸을 때의 서늘한 비밀을 간직한 배우에 비교될 수 있다. SNS로 인해 시작된 파국을 그린 <소셜포비아>는 이렇게 상반된 두 배우의 이미지가 어우러져 만들어낸 현실적인 스릴러다. tvN 드라마 <미생>과 SBS의 <피노키오>로 대중의 시선을 받기 이전, 감식안이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그들이 앞으로 두각을 나타내리라 점쳤던 두 배우. 한 작품 안에서 팽팽한 대립각으로 줄타기를 하는 그들의 연기를 보는 건 <소셜포비아>를 주목하게 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등에서 뜨거운 호응을 얻은 <소셜포비아> 속, 검증된 것보다 더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한 두 배우를 만났다.

사건의 시작은 박 병장의 탈영과 자살 소식에, 트위터리안 레나가 ‘잘 죽었다’는 트윗을 올리면서 시작된다. 레나의 행동에 대한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현피(웹상에서 벌어지는 일이 실제로 살인, 싸움으로 이어지는 것을 나타내는 신조어) 원정대가 조직된다. 잘못한 자를 응징한다는 사명감으로 뭉친 8명의 원정대에는 경찰지망생인 지웅(변요한)과 용민(이주승)도 포함되어 있다. 진짜 사건은 레나의 집에 쳐들어간 현피 원정대가 목을 매달아 자살한 레나를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이쯤되면 눈치챘겠지만, 온라인상에서 레나에게 저주를 퍼붓던 그들의 신상이 털리고 그들은 이제 레나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회적 살인범으로 몰리는 처지가 된 것이다.

지웅과 용민의 역할 분담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돌이켜보면 용민은 친한 친구인 지웅에게 처음부터 악성댓글을 달도록 종용해왔다. “니 아이디로 써”라는 부추김에 지웅은 순간 “미친 개또라이년. 내가 경찰되면 너부터 잡는다”라는 댓글을 남기고, 이는 훗날 용민이 사람들로부터 지탄받는 결정적 빌미로 작용한다. 원정대로 뭉쳐서 함께 행동하고 있는 것 같지만 용민의 과거, 어두운 마음속은 알 길이 없다. 두 배우는 이 아슬아슬한 고도의 심리전을 첫 장면부터 실행해나간다.

이주승_영화의 사건, 이런 인물이 실제로 존재했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결승에서 패배한 선수의 미니홈피에 악플을 남긴 한 여성의 신상정보가 털렸고, 이후 분노한 남성들이 그 여성의 집에 찾아가기 위해 근처 PC방에 모인 일이 있었다. <소셜포비아>는 이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그 인물을 한번 알고 싶더라. 용민이 처한 복합적인 상황과 복잡다단한 캐릭터에 끌렸다.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하겠다고 했다.

변요한_지웅은 용민의 행동에 따라 움직이는 ‘카메라 같은’ 역할을 한다. 지웅의 행동에 따라 관객은 영화의 사건을 바라보게 된다. 용민과 직접적으로 일대일의 갈등구조가 불거지는 후반부에 가면 결국 지웅은 빠지게 되고, 관객이 용민과 부딪히게 된다. 용민은 사건이 꺼지려고 하면 다시 스파크를 일으키는 역할이다. 사건을 만들어내는 역할이다보니 주승이 해야 할 몫도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독립영화가 그렇듯이 <소셜포비아>의 촬영 현장 역시 녹록지 않았다. 그런데도 두 배우는 현장의 분위기가 그 어떤 작품보다도 즐거웠다고 말한다. 또래 배우들로 구성된 현피 원정대를 현장에서 만나 함께 연기하는 건 이들에게 무거운 짐이 아닌 즐거운 회합이었다. 현장에서 배우들의 지휘를 자처한 건 변요한이었다. 홍석재 감독은 “누군가 현장을 통솔해줘야 했는데, (변)요한씨에게 남자 고등학생들이 모이면 발휘되는 골목대장 기질이 있더라. 친화력이 정말 좋은 배우였다”고 기억한다.

이주승_정말 추웠다. 촬영 분량도 50회차를 넘겼다. 경험상으로 보면 이 정도 기간이면 끝나겠지 생각했는데, 안 끝났다. (웃음) 그사이에 스케줄이 생기면서 불만 있는 배우도 생길 텐데 이번엔 그런 불협화음이 전혀 없었다.

변요한_이렇게 부담감 없이 즐기면서 찍은 건 처음이다. 보통 일대일로 붙어서 연기를 하다보면 돋보이려는 욕심도 생기는데, 다 같이 어울리는 게 중요하다보니 그런 부담이 없었던 것 같다.

이주승_신선했다. 이렇게 많은 인물들이 나와서 섞이는 현장을 경험해본 것도 처음이었고, 그래서 궁금하더라, 어떤 영화가 나올지.

변요한_부산국제영화제에서 먼저 영화를 본 주승이가 전화를 했더라. 그때 첫마디를 잊을 수가 없다. “이번에 대박났다”고. 그만큼 영화가 잘 나왔다는 소리였다.

변요한과 이주승이 대중의 관심망에 올랐을 때, 그들에 대한 평가는 ‘당연한 결과’라는 것이었다. 두 배우는 이미 독립영화에서 잔뼈가 굵은 배우였고, 그들을 수식하는 공통언어는 ‘연기 잘하는 배우’였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출신의 변요한은 2011년 독립단편 <토요근무>로 데뷔한 뒤 <목격자의 밤>(2012), <까마귀 소년>(2012) 등에서 다양한 연기를 선보였으며, 지난해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작품인 김정훈 감독의 <들개>에서 사제폭탄을 제조하는 20대 ‘정구’를 연기하면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07년 독립영화 <청계천의 개>로 데뷔한 이주승 역시 <원 나잇 스탠드>(2010), <평범한 나날들>(2010), <누나>(2012) 등에 출연하며 차곡차곡 개성 있는 필모그래피를 쌓아 왔다. 특히 군 제대 뒤 작품인 <셔틀콕>(2014)에서 부모의 죽음 후 방황하는 열여덟살 ‘민재’로, <방황하는 칼날>(2014)에서는 소녀의 살해범인 ‘조두식’으로 나와 서늘한 매력을 발산해왔다.

변요한_우리는 현장에서 배운 게 너무 많다. 현장에 가면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이 현장이 어떻게 돌아갈 건지. 만약 메이저 현장에서부터 출발했다면, 풍요로운 조건에서만 생활했다면 이런 것들을 못 보지 않았을까. 버티는 법을 몰랐을 것 같다. 하나하나 세세하게 현장을 살펴볼 수 있고 그 상황에 대처하는 눈치가 있다. 그런 경험이 쌓여 우리를 단단하게 만든 거 같다. 주승이나 나나 이런 부분에서는 똑같을 것 같다.

이주승_독립영화가 시장에서 부딪혀 대결할 수 있는 무기는 많지 않다. 배우로서는 결국 연기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기력은 공평하게 주어진 거다. 아무리 열악하더라도 그 선에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부담감이 크다. 이번에도 촬영하면서 많이 무너질 뻔했는데 요한 형을 보면서 배운 게 많았다. 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여유가 없는 편인데, 형은 시작할 때나 마칠 때나 한결같더라. 만나기 전에는 좀 차가운 배우라고 느꼈는데, 같이 작업해보니 친척 형 같은 느낌이 들었다. (웃음)

<소셜포비아>의 지웅과 용민은 SNS를 통해 악용된 관계망 속에서 길을 잃은 청춘이다. 최근 변요한은 드라마 <미생>으로, 이주승은 드라마 <피노키오>로 전에 없이 더 많은 대중과 만날 기회를 얻었다. 그들은 어느새 <소셜포비아>의 캐릭터가 겪은 상황을 어느 때보다 많이 생각해볼 수 있는 위치에 처한 ‘유명인’이 되었다.

이주승_배우는 많이 노출될 수밖에 없는 직업이다보니 이번 작품에 더 많이 공감됐다. 나는 뭐, 악플이라도 많이 달렸으면 좋겠다. (웃음) 배우에게 그만큼 관심이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변요한_최근 돌아보면 칭찬이 엄청 쏟아지면서 한동안 유지되다가 어느 순간 욕설이 달리더라.아, 활동이 많아질수록 대중은 손톱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보는구나, 싶었다. 때로 무섭고 공포감이 들 수밖에 없다. 나는 하던 대로, 살던 대로 사는 거지만 대중의 반응은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게 자연스러운 현상 같다. 욕먹지 않고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대중에게 노출된 만큼 일종의 ‘샌드백’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매의 눈처럼 지켜보는 시선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결국 배우의 본분인 연기를 잘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주승_드라마 효과 때문인지 요즘은 많이들 알아본다. 하지만 이 시기가 지나면 금방 사그라질 것 같다. 혹여 잘못 행동하는 건 없나 더 조심하게 된다.

변요한_드라마를 하면서 영화와 달리 반응이 참 빠르구나 하는 생각은 든다. 영화는 찍고 나면 1년 뒤에 개봉하는 것에 반해 드라마는 정말 실시간 반응이 체감된다.

두 배우를 지칭하는 ‘독립영화계가 배출한 스타배우’라는 말은 단순히 스타성에 기대지 않은 배우, 이미 많은 현장 경험을 통해 실력을 갈고닦은 배우, 곧 연기력이 검증된 배우라는 점을 담보하고 있다. 신인배우들이 신선함으로 포지셔닝하지만 연기력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채 ‘가능성’으로 평가되는 것과 달리, 이들은 좋은 기회에 자신에게 맞는 역할이 주어진다면 100% 혹은 그 이상의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준비된 배우라는 점에서 가장 큰 차별화를 보인다. 변요한은 곧 신수원 감독의 <마돈나>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드라마와 영화 출연을 검토 중이다. 이주승은 tvN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2>에서 속을 알 수 없는 캐릭터로 분해 곧 시청자와 만난다.

변요한_오래 연기하는 배우들 모두가 존경스럽다. 배우들은 늘 새로운 걸 창조해야 하고 그 부분에 대한 고민은 늘 새롭게 존재한다. 안 해본 게 많으니 해야 할 것도 많다. 계산을 하기보다 재미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 도망가기보다는 부딪히고 싶다. 본질적인 것을 아름답게 보여주는 이창동 감독님의 작품을 보면서 배우가 찾아야 하는 지점을 발견하고, 모든 걸 다 담고 있으면서도 무심할 수 있는 <아비정전>(1990)의 장국영의 눈을 보면서 거듭 감탄한다.

이주승_전작에서 관객이 만족했다고 다음 작품에서도 그런 반응을 기대하긴 어렵다. 매 작품이 새로운 도전이고 공부다. 최고가 되자, 를 목표로 삼지 않는 건 배우에게 최고는 없기 때문이다. 배우 각자가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영역이 있기 때문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오래하는 배우가 존경스럽고, 나도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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