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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치란 무엇인가’를 묻고 싶었다”

김성제 감독 인터뷰

<소수의견>은 김성제 감독의 연출 데뷔작이다. 2013년 6월에 촬영을 마쳤으니 개봉(6월24일)까지는 꼬박 2년이 걸렸다. 그간 영화를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들이 떠돌았다. 그중 가장 크게 회자된 건 대략 이렇다. 영화 속 철거민 투쟁이 마치 2009년 용산참사를 떠올리게 하고 이에 부담을 느낀 당시의 배급사가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개봉을 차일피일 미루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다. 영화의 운명은 알 길 없고, 풍문만 무성했던 <소수의견>은 얼마 전 시네마서비스로 배급사를 옮기며 개봉까지 급물살을 탔다. 개봉 전부터 혹독한 감독 데뷔전을 치르며 속이 새까맣게 탔을 김성제 감독을 만났다. 그의 말을 통해 <소수의견>이 어떤 영화인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개봉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축하한다.

=도시 재개발을 다룬 이 영화가 꼭 재개발의 기나긴 투쟁사를 닮은 것 같다고 농담처럼 말한다. (웃음) 무엇보다도 관객이 재밌게 봐주면 좋겠다.

-촬영을 끝내고도 개봉을 못하는 영화가 아주 없지는 않다. 하지만 제작사(하리마오픽쳐스)도 확실했고 당시의 배급사도 CJ E&M이었다. 돈 안 되는 장사에 투자했을 리 없었을 텐데. 개봉을 안 하거나 못하는 정확한 이유를 들은 적이 있나.

=얘기가 오간 후에 일이 안 되는 경우는 없는 것 같다. 어영부영 밀리는 거지. 순제작비 18억원의 영화다. 빅 시즌용이 아니라는 건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해 추석과 연말 사이를 개봉 시기로 생각했다. 2013년 여름에 블라인드 시사를 했다. 투자사가 편집 방향에 의견을 제안하려고 하는 시사잖나. 근데 시사가 끝나고도 이렇다 할 수정 요청도, 개봉 얘기도 없더라. 투자사 내부 논의 안건에조차 못 낀 것 같았다. 한번도 개봉이 안 되는 이유에 대해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실무자 차원의 ‘미안하다’는 말만 있었다.

-그사이 영화계에서는 여러 가능한 추측들이 오갔다. 그중 하나가 배급사가 영화의 내용을 두고 정권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냐는 것이었는데.

=이 영화가 엄청난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저 ‘높은 곳’에서 누군가가 ‘어떻게 해라’라고 말하지는 않았을 거다. 세상에는 수많은 마름들이 있고 그들 중 누군가가 오버한 거라는 정도의 생각이 든다. 그게 누군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개봉을 하는 지금 누군인지를 밝히는 게 의미가 있을까. 가장 중요한 건 이 영화의 개봉이다. 관객에게 물어보고 싶다. 이 영화가 그렇게까지 이 사회에 위험한 영향을 주는 영화인지, 배급사의 연간 라인업에 2년간 못 들어갈 정도로 문제가 많은 건지. 나는 그저 박력 있는 법정 드라마, 말이 되는 사건을 만들고자 했다.

-시네마서비스로 배급사를 옮기자마자 곧바로 개봉 소식이 전해졌다. 언제, 어떻게 이야기를 나누게 된 건가.

=시네마서비스에서 영화를 배급하겠다는 얘기가 나왔고 강우석 감독님이 보자고 하신 게 5월 초쯤이었다. 강 감독님이 보자마자, “이거 용산 영화 아니잖아”라고 하시더라. 이어서 “영화를 왜 이렇게 작게 만들었냐, 그리고 호흡은 왜 이렇게 긴 거냐. 나는 영화 끝난 줄 알았는데 또 하고 또 하고 그러더라”라며 핀잔을 주시더라. (웃음)

-사회생활하며 만난 첫 번째 사장님이 강우석 감독이라고 들었다.

=중앙대 심리학과(89학번)를 졸업하고 시네마서비스의 구인광고를 보고 지원했다. <홀리데이 인 서울>(1997) 홍보 마케팅 업무부터 시작했다. 이후 이준익 대표님의 씨네월드에서 장진 감독의 <간첩 리철진>(1999)으로 프로듀서 데뷔를 했고 류승완 감독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 <피도 눈물도 없이>(2002), 김대승 감독 <혈의 누>(2005)를 기획했다.

-영화 시작과 함께 ‘이 영화는 실화가 아니며 인물은 실존하지 않는다’는 자막이 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소수의견>은 용산참사라는 실화를 영화화했다고 알려져 있다.

=정치권의 프레임 짜기와 비슷하다. 이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용산참사에 관한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기사가 났다. ‘그렇지 않다’고 초기 대응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 넘겼는데 그게 시작이었다. 내가 기계적으로 중립적 입장을 취하려는 게 아니라 용산 이야기가 아니니까 아니라고 말한다.

-영화 속 철거민 투쟁과 그에 얽힌 크고 작은 이권 다툼을 보고 있자면 현실에 대한 기시감이 드는 게 사실이다.

=픽션을 통해 용산,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철거민 이슈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이렇게 묻자. 2014년 4월 이후 한국에서 <타이타닉>(1998)과 같은 영화를 만든다면 그게 어떻게 세월호를 비껴갈 수 있을까. 2009년 이후 철거민 투쟁을 중심 소재로 다루는 영화를 보는데 어떻게 용산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을까. 영화 속 내용과 용산참사의 그것은 많이 다르다. 그럼에도 내가 이 영화 속 이야기를 통해 담고 싶었던 현실적인 공기, 그것만큼은 분명히 있었다.

-원작 소설의 상당히 많은 부분이 극으로 옮겨졌다. 그럼에도 영화만이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 장면, 감정 등이 있었을 것이다.

=소설에는 없는 철거 투쟁 현장을 영화에 넣고 싶었다. 원작은 한 소년이 의경 다섯명에게 집단 구타를 당해 소년이 죽고 의경 중 한명이 소년의 아버지에게 죽는다는 내용이다. 이런 설정이 이미 어느 정도 편을 가르고 있었다. 나는 이 사건이 일어날 수밖에 없게 한 베일 너머의 힘에 대해 묻고 싶었다. 우연히 한 공간에서 맞닥뜨리게 된 사람들이 우발적으로 상대방을 죽이게 되는 데서 비극성을 찾았다. 진압 현장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모두가 피해자인 거다.

-영화화를 준비하며 참고한 법정영화의 리스트가 궁금하다.

=일부러 레퍼런스가 될 만한 영화를 많이 안 봤다. 인물들이 앉아서 말만 하니까 되게 지루해질 수 있는 영화다. 그만큼 대사를 주고받으며 생기는 말의 긴장감, 말의 액션이 중요했다. 예전에 재밌게 본 올리버 스톤의 <JFK>(1992)를 다시 봤다. 근데 극중 케빈 코스트너가 최후 변론을 할 때 렌즈를 바라보며 웅변하는 듯한 모습이 이번에는 되게 거슬렸다. 관객에게 정면으로 물어보는 태도는 취하지 말자, 법정 전체를 관찰하는 느낌으로 가자고 가닥을 잡았다. <오래된 정원>(2007), <통증>(2011), <특수본>(2011)의 투쟁, 진압 장면을 유심히 보긴 했다.

-극의 전개상 중요한 장면 중 하나가 철거민과 경찰이 대립하는 첫 장면이다.

=오프닝 때 관객이 김희택에게 감정이입을 하길 바랐다. 농성자 박재호가 피해자로 보이는 건 이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그럴 것이고. 이 장면을 촬영 첫날부터 나흘간 찍었다. 제작진에 제일 분했던 순간이다. (웃음) 로케이션 장소가 원래는 수원의 한 철거촌이었는데 촬영이 어렵다는 통보를 받고 부랴부랴 한남대교 터널 위쪽을 섭외했다. 곧 철거된다고 해서 급하게 콘티도 새로 짜고. 풀숏도 있었는데 많이 걷어냈다. 그런데 이 현장 편집본을 보고는 그 뒤로 아무도 내게 뭐라고 안 하더라. 다들 연출이 처음인 내가 얼마나 불안했겠나. 일종의 감독으로서의 오디션을 본 건데 무사히 통과했나 보다.

-인물이 프레임 안에서 한쪽으로 밀려나 있거나 클로즈업을 여러 각도로 찍어서 붙였다. 극의 긴장감을 높이는 방법 중 하나였을 텐데.

=헤드룸(프레임 내 피사체의 머리 위 공간)이 꽤 넓고 인물이 어정쩡하게 놓여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런 불안정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클로즈업도 남발은 안 하되 필요할 땐 과감히 썼다. 영화 전체로 보면 이런 프레임이 이 영화의 규칙처럼 보이길 바라면서. 웬만한 건 다 A카메라 한대로 찍었다. 여러 소스를 가지고 있는 건 외부에서 편집에 개입할 여지가 있었다. 스스로 확신을 갖고 찍고 싶기도 했다.

-‘말의 액션’이 가장 크게 드러나야 하는 법정 신은 어떻게 준비했나.

=배우들에게는 배심원과 방청객 앞에서 변호를 해야 하니 마치 연극 무대에 오른 것처럼 가자고 말했다. 배우의 동선을 크게 보여주지는 않았다. 특별히 판사 역의 권해효 선배에게는 “판사가 인상적인 법정영화는 없었던 것 같다. 판사가 이 공간을 좌지우지하는 느낌을 주길 바란다”고 했다. 실제 법정에서 촬영하다보니 공간의 한계 때문에 광각을 많이 썼다. X, Y, Z축으로 다 움직이는 제트집(Z Jib) 카메라도 유용했다.

-극의 중심, 윤진원을 연기해야 하는 윤계상과는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 궁금하다.

=힘을 빼고 가되 열연이 필요한 순간에만 힘을 실어달라고 했다. 그중 하나가 박재호 사건을 재수임하기로 했을 때, 윤진원이 박재호에게 “난 끝까지 갔을 겁니다.… 누군가 박살날 때까지”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이 말을 들은 박재호의 리액션과 그 후 극이 전개되는 과정에 대해서 계상씨와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 장면을 7번 찍었는데, 마지막에 계상씨가 대본에도 없었는데 눈물을 주르륵 흘리더라. 영화를 찍는 맛이 이런 건가 싶었다.

-<남영동1985>(2012)의 고문관 이두한 역의 이경영을 철거민이자 아들을 잃은 아버지 박재호로, <26년>(2012)에서 그 사람 역으로 나온 장광을 김희택의 아버지로 출연시켰다.

=경영이 형이 <남영동1985>를 찍고 있을 때 제안이 들어갔다. “형은 너무 인텔리 같은 느낌이 있어”라고 했더니 해맑게 웃으시며 “내가 좀 인텔리지?” 하시더라. (웃음) 머리를 빡빡 밀고 안경까지 벗고 자신의 표정 하나하나를 설명하며 이 캐릭터에 애착을 보이셨다. 그때 장광 선배 생각이 났다. 큰 악역을 한 두 양반을 모시면 어떨까 싶더라.

-플래시백이나 몽타주숏이 많다. 인물의 대사로 한번씩 상황을 정리해주기도 하고. 영화의 특징이자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준비할 때부터 영화가 너무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법률 용어나 법적 공방이 일상적이지 않으니까. 어려운 내용을 그대로 두고 가기보다는 그걸 어떻게든 쉽게 풀고자 했다.

-관객이 <소수의견>의 어떤 면에 좀더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나.

=‘염치란 무엇인가’를 묻고 싶었다. 마지막까지 홍재덕이 보여주는 몰염치, 피해자이자 동시에 가해자가 된 박재호의 염치. 그리고 영화가 밝히지 않은 베일 뒤의 진범에 대해서도 관객이 질문을 던져보길 바란다.

-차기작은 보다 빠르게 극장에서 만나길 바란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어마어마하게 많다. 일단 가성비 좋은 감독이라고 소문내달라. 아, 타협할 줄도 안다고 덧붙이겠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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