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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위험과 자유의 기회
2002-03-13

조선희의 이창

나는 소설가가 된 뒤 <씨네21> 필자가 되고 싶었다. ‘전 <씨네21> 편집장’이라는 크레딧으로 행세하기는 유오성처럼 ‘쪽팔려서’싫었다. <씨네21>에서 원고를 쓰라고 하면 ‘금의’(錦衣)를 못 구해서 ‘환향’(還鄕)을 못 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결국은 금의를 입기 전에 환향하고 말았다. ‘소설가’라는 크레딧을 구해오려면 시간이 좀더 필요한데… 한쪽 팔을 마저 짜야 가시풀 옷이 완성되는데….

하기야 사람의 일이 계획대로 되기만 한다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가령, 곰과 범에게 동굴 속에서 쑥과 마늘만 먹으면서 1백일을 버티라고 했을 때, 곰은 그렇게 해서 사람이 됐지만 범은 참지 못하고 뛰쳐나왔다. 반인반신(半人半神)의 단군왕검도 다 그런 태생의 비밀이 있는 것이다. 박지원 소설 속의 허생도 10년 공부 끝내야 세상에 나오겠다고 독을 품고 방구석에 틀어박혔지만 결국 7년 만에 뛰쳐나오고 말았다. 액면으로는 쌀 떨어졌다는 마누라 바가지에 못 이겨서라고 했지만, 사실상은 세상일에 참견하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도 2년 만에 다시 영화계 주변으로 복귀한 셈인데, 그 2년 사이에 영화계는 딴판이 되어있었다. 영화사 중에 모르는 이름이 절반이 넘고, 한국영화의 힘도 훨씬 세졌다.판이 이렇게 커졌으니 일찌기 영화계에 한발이라도 걸쳐놓았다면 운좋은 사람이다. 영화감독 지망생이라면 이 판에서 데뷔 못하면 바보될 수 있고, 안 풀렸던 중견감독은 지금 재기작을 찍지 않으면 기회가 없을 테고, 제작자는 여기서 한 밑천 못 건지면 두고두고 한이 될 것이다.

우리 가족 중의 한 사람은 올해 34세의 독신녀인데, 광고회사와 벤처회사를 다니다가 영화공부하러 유학을 가겠다고 해서 내가 말렸다. “기획·프로듀싱 공부를 하겠다면, 지금 충무로에서 배우는 게 답이다.”

요즘은 유난히 영화지망생도 많고 영화재수생도 많고 영화휴학생도 많다. 심산씨가 운영하는 한겨레문화센터 시나리오작가 과정에는 의사, 교사, 회사원 등 직능별 대표선수들이 다 모인다. 최근 어떤 영화잡지의 평론상에 응모한 영화평론가 지망생들을 10명쯤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이 가운데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대부분 재료공학과나 조선공학과를 다니면서 장래의 희망을 영화쪽에서 찾겠다거나, 대학에서 다른 공부를 하고는 영화과 대학원에 들어가려고 준비하거나 이미 들어갔거나, 였다. 70년대까지만 해도 개나 소나 다 법학이나 정치학을 하겠다고 했는데, 80년대엔 사회과학으로 몰리더니, 90년대 이후엔 확실히 영화나 컴퓨터쪽이 대유행이다.

이런 추세로 나아가면 조만간 국내시장에서 한국영화와 외화의 비율이 역전되고 마침내는 국산차들 틈에 외제차가 가물에 콩나듯 박혀있는 한국 자동차산업처럼 될지도 모른다. 그런 날이 오면 나도 배철수씨처럼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우리 음악의 90%를 가요가 점령하고 있어요. 애국심 차원에선 바람직할지 모르지만 음악의 균형적 발전이란 측면에선 좋은 현상은 아니죠.”

솔직히 말해서 나는 한국영화가 가요나 자동차처럼 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또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재미없고 답답할 것 같다. 그래서 말인데,요즘 영화쪽으로 사람들이 몰리는 게 좀 불안하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게 마련이다. 70, 80년대 사회과학을 공부하겠다고 유학 갔다가 돌아와서 박사 실업자가 되었거나 IT 산업 붐이 일었을 때 대기업을 빠져나갔다가 입장이 난처해진 사람들만 불러모아도 ‘사열종대 앉아 번호로 연병장 두 바퀴’다.

그래서 사실, 영화 유학을 떠나려던 동생에게 주었던 충고의 전체 맥락을 살리자면 이런 것이었다. “몇 년 동안 유학 갔다 돌아와서 어디 취직하려고 그래? 지금 영화판에 들어와있는 사람들도 떠나야할 때가 올지 모르는데. 기획·프로듀싱 공부를 하겠다면, 지금 충무로에서 배우는 게 답이다.” 재료공학과를 다니는 영화평론가 지망생들에게 평론상 심사를 함께 한 기성의 영화평론가와 내가 입을 모아 이렇게 충고했다. “전공을 살려서 취직하고 취미로 영화에 대한 글을 쓰면 안 될까?”

요즘이야말로 영화를 하고 싶은 사람은 자기 적성을 냉정하게 따져야 할 때인 것 같다. 영화를 잘할 수 있을지,영화로 먹고살 수 있을지,영화 안 하면 못살 거 같은지….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어디선가 “옳은 개소리 작작 해!” 하는 소리가 들린다. 딴은 그렇군. 옳은 소리이긴 하지만,실생활에 도움이 안 되는 개소리인 것이다. 저 하고 싶다는 걸 어떻게 말리나? 나중에 실업자가 되더라도, 낙동강 오리알이 되더라도, 하고 싶은 건 해야지. 나는 뭐 산업적으로 직업적으로 비전이 있어서 소설 쓰겠다고 나섰나?

카뮈는 작가수첩에 “인생은 위험과 자유의 기회”라고 썼다. 그래. 인생이 그런 게 아니었다면, 알제리에서 태어나 두살에 아버지를 잃고 폐결핵으로 학교 결석을 밥먹듯 했던 불우하고 병약한 아이가 어떻게 파리 문단의 중심에 뛰어들 수 있었겠으며 어떻게 프랑스 현대소설의 얼굴이 될 수 있었겠는가. 조선희/ 전 <씨네21>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