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휴즈 형제가 <프롬 헬>을 상영하기까지, 6년간의 제작 `전투`
2002-03-15

“런던이 이렇게 추웠으면 잭 더 리퍼도 집에만 있었을 텐데”

<프롬 헬>의 프로듀서 돈 머피는 영화제작 여부를 가르는 제작사와의 첫미팅 때 휴즈 형제가 얼마나 당돌했는지 기억하고 있다. 20세기 폭스 부사장이 왜 그들에게 영화를 맡길 수 없는지 설명하려하자 앨버트가 거칠게 말을 막고 나섰다. “결국 우리가 흑인이라서 문제가 되는 것 아닌가.” 당황한 그 중역은 말을 더듬기 시작했지만, 디즈니와 뉴라인에게 퇴짜맞고 폭스까지 굴러온 <프롬 헬>은 마침내 촬영에 들어갈 자금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휴즈 형제가 흑인이라는 사실은 영화를 찍는 내내 그리고 영화를 완성한 뒤에도 <프롬 헬>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왜 백인영화를 만드는지 물었다. 그들은 흑인문화가 백인문화 주변에서 함께 자라난다는 사실을 자주 잊곤 한다”고 말하는 휴즈 형제는, 우습게도 반은 아르메니아 혈통이 섞인 ‘하얀 흑인’에 속한다.

사람들이 <프롬 헬>을 걱정한 까닭은 감독이 흑인일 뿐만 아니라 유독 폭력적인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란성 쌍둥이인 휴즈 형제는 스물한살 되던 1993년 <사회에의 위협>으로 데뷔했고 곧 <데드 프레지던트>를 내놓았다. 두편 모두 전쟁터같은 도시 뒷골목을 피범벅으로 만들어 보여주는 영화였다. 그들은 마약장사에 나서는 대신 어머니가 준 비디오 카메라를 가지고 놀았지만, 그들이 목격한 도시 밑바닥의 삶은 구태여 과장하지 않아도 충분히 폭력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알란 무어와 에디 캠벨의 만화 <프롬 헬>에 걸려든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어려서 본 TV물에 매혹돼 잭 더 리퍼에 관심을 갖게 된 형제는 <프롬 헬>이 살인을 철저하게 해부할 뿐 아니라 하류층의 현실도 직시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미국 대도시의 흑인빈민가와 19세기 런던 이스트 엔드는 마약과 알코올, 범죄를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 프로젝트를 제안한 디즈니는 아차, 싶었다. 디즈니는 <데드 프레지던트>를 배급한 인연으로 휴즈 형제를 미워하게 됐고, 재빨리 <프롬 헬>에서 손을 뗐다. 폭스를 잡아 영화를 완성하기까지는 약 6년이 걸렸다.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뒤에도 촬영은 쉽지 않았다. 폭스는 잭 더 리퍼에 관한 책을 스무권 넘게 읽었고 휴즈 형제가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수많은 감정이 스쳐간다”고 믿는 조니 뎁을 싫어했다. 너무 어두워 보인다는 이유였다. 휴즈 형제가 지나치게 많은 피를 쓰지 않을까 노심초사한 것은 물론이었다. 형제가 잔인한 장면을 찍는 것처럼 보일 때마다 폭스는 “이렇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나”라고 제동을 걸었다. 하늘도 이 형제를 도와주지 않는 것 같았다. 지금 산책 코스로도 개발돼 있는 잭 더 리퍼의 활동 무대는 옛모습을 완전히 잃어 버렸다. 곧 신생 금융가가 들어설 예정이어서 대부분 지역이 공사중이었다. 대안으로 선택된 도시는 프라하. 프로덕션 디자이너 마틴 칠드는 보통 두달 넘게 걸리는 세트를 일주일 만에 완성하기 위해 170명의 목수와 페인트공, 기술자를 동원해 일주일 내내 일을 했다. 막상 촬영에 들어가자 139년 만에 가장 높은 기온으로 치솟았던 프라하의 여름 날씨가 갑자기 겨울처럼 추워졌다. 밤촬영이 많았던 <프롬 헬> 제작진은 “런던 날씨가 이랬다면 잭 더 리퍼도 집에만 있었을 텐데”라고 농담을 주고받았다. 건물 전면을 담았다가는 런던이 아니라는 사실이 들통나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촬영을 한 결과 의외로 미로처럼 어둡고 혼란스러운 느낌을 얻어내는 행운도 있었지만, <프롬 헬>은 전반적으로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 태어난 영화였다.

영화가 완성된 뒤 휴즈 형제는 다시 한번 실망과 우려에 부딪쳤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휴즈 형제가 최대한 감추고 두번 정도만 직접적으로 묘사한 살인장면도 지나치게 잔인하다고 평가했고, 진보적인 사람들은 그들의 전작과 원작만화가 보여준 반항의 기운이 거세됐다고 실망했다. 그러나 휴즈 형제와 조니 뎁은 모두 잭 더 리퍼에 매혹된 사람들이었다. 좋아서 만든 영화, 그리고 재미있는 영화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김현정 parady@hani.co.kr▶ 스크린 연쇄살인마의 원형 잭 더 리퍼 이야기

▶ <프롬 헬> 영화 vs 현실

▶ 휴즈 형제가 <프롬 헬>을 상영하기까지, 6년간의 제작 `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