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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망한다, 대륙의 비상을!
2001-03-16

지아장커가 보내온 세편의 중국권 영화 감상기

■<하나 그리고 둘> <화양연화> <와호장룡>

<소무> <플랫폼>의 지아장커가 2000년 세계인을 매혹시킨 중국권영화 세편을 만났다. 정작 대륙에선 정체와 퇴행을 거듭하고 있는 동안

변방의 중국이 길어올린 빛나는 미학적 성과를 중국영화의 희망으로 공인받은 지아장커는 경탄과 회한이 교차하는 수려한 필치로 서술하고 있다.

주간신문인 <南方周末(South Weekend)> 2001년 2월 15일자에 실린 지아장커의 기고문을 본인의 동의 아래 번역 게재한다.

-편집자

지난해 베니스영화제가 끝난 뒤, 나는 <플랫폼>의 여주인공 자오타오와 함께 여기저기 떠돌다 프랑스를 거쳐, 홍보차 캐나다 토론토영화제에

갈 참이었다. 파리에 머무는 동안 일간지 <리베라시옹>에서 에드워드 양의 새 영화 <하나 그리고 둘>의 포스터를 보았다. 아이가 한층 한층

빨간색의 높다란 층계를 기어오르고 있었다. 포스터만 봐서는 양 감독이 이전 영화의 실수를 다시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나는 그의

이전 작품을 그다지 치켜세우고 싶지는 않다. 설사 가장 뛰어나다는 <고령가소년살인사건>조차도 의기는 넘치지만 절제력은 부족했다. 에드워드

양은 이념을 앞세워 이야기를 작위적으로 꾸미는 성향이 있는데, 나는 그 점을 좋아하지 않았다. 자오타오는 <하나 그리고 둘>이 화어영화(중국어영화)라는

말을 듣고는 보러가고 싶다고 했다. 그녀를 데리고 전철을 타고 밀치락달치락하며 퐁피두아트센터 부근에 있는 극장에 가서 표를 샀다. 극장

앞에 길게 늘어진 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가랑비 속에서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무척이나 차분했다. 나는 이런

영화관람 분위기에 감동해 잠시 영화가 성스럽고 순결한 것이 아닌가 느꼈다. 오 헨리 소설 속의 유랑인이 교회당을 지나며 오르간 소리를 듣는

그런 느낌의 경지처럼.

<하나 그리고 둘>, 2000년 가장 아름다운 영화

나는 내심 웃고 있었다. 일전에 자오타오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라이온 킹>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장장 2시간40분이나 되는

이 ‘철학영화’를 절대 견뎌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양 감독 팬도 아닌데 중간에 극장을 나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겠지 하고. 그러나

영화가 시작한 뒤, 나는 에드워드 양이 섬세하게 처리하고 있는 일상생활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한 가정에 관한, 한 중년에 관한, 인간상황에

관한 영화였다. 이야기는 우니엔전이 연기하는 중산층 가정에서 점차 번져나가, 한 행복한 중국인의 보통 가정 배후에 있는 진짜 모습을 펼쳐보였다.

지금 이 영화의 스토리를 하나하나 다 말할 수 없는 것은 영화 전체에 깔려 있는 행복의 모습이 실상 너무도 힘겹고 부서져 깨질 듯이 아프기

때문이다. 끝부분에 “저는 겨우 일곱살이지만, 전 제가 늙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하는 아이의 이 한마디에 가슴이 차고 숨이 멈추었다. 에드워드

양이 이 걸작에서 소박하게 써내려가는 삶의 무게에, 나는 심지어 가쁜숨조차 느꼈다. 내가 <하나 그리고 둘>을 그의 이전 영화와 서로 연관지어

볼 수가 없었던 것은 에드워드 양이 자신을 훌쩍 초월했기 때문이다. 그의 고귀한 생명경험은 끝까지 관념에 의해 중단되지 않았고, 느리고

슬프게 껍질을 벗기듯 지천명 나이의 진실한 인간미를 드러내었다. 그렇게 나는 파리의 그 비떨어지는 오후에 2000년 가장 아름다운 영화를

보았다.

영화관 안에 조명이 켜진 뒤에서야 나는 자오타오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는 것을 알았다. 그녀같이 애니메이션영화를 좋아하는 소녀가 이렇게 긴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었다는 것에 놀랐고, 극장을 가득 메운 프랑스 관객이 거의 한 사람도 퇴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다. 모두들 박수를 쳤다. 스크린을 향해서, 막 사라져가는 이미지를 향해서.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무용교사를 하는 자오타오는 왜

우리 대륙에서는 이런 영화를 볼 수 없느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우리의 영화는 진실한 모습을 찾지 않는다고, 행복하면

되지, 행복에 참모습이 없으니.

<화양연화>, 중국 고대시를 변주하다

눈깜박할 새 9월이 왔다. <플랫폼>이 부산영화제에서 아시아 지역 시사회를 하기로 되어 있어, 나와 촬영기사 위리웨이는 부산에 갔다. <화양연화>는

이번 영화제 폐막작이고 위리웨이가 그 영화의 촬영세컨드였지만 아직 완성작을 보지 못해 폐막식에 슬쩍 보리라고. 술집에서 왕가위와 만났다.

선글라스 뒤로 만면에 묘한 웃음을 지으며, 베이징에 가서 함께 술 한잔하자고 했다. 이야기를 해가면서 비로소 굉장히 득의양양해하는 것을

알았다. <화양연화>는 대륙에서 이미 심사를 통과했는데, 그것이 그가 유쾌해하는 이유였다. 하지만 또 자기영화가 언제 상영될지는 미지수여서

다소 씁쓸한 내색도 보였다. 부산은 가는 곳마다 <화양연화>의 분위기로 가득해, 젊은 사람들이 손에 종이뭉치를 들고 있으면, 십중팔구는

<화양연화>의 팸플릿이었다. 나는 폐막식에 참가하지 않고 돌아왔다. 폐막식날 갑자기 기온이 떨어져 <화양연화>를 노천에서 상영하는 동안

몇 천명의 관중이 추운 바람 속에서도 유행을 즐겼다고 나중에 들었다.

유행의 힘은 무한한 것인지, 정오쯤 베이징에 도착해, 오후에 <화양연화>의 VCD를 샀다. 서사가 잠시 멈추고, 고속촬영과 음악이 이중

작용을 하는 가운데 장만옥과 양가위가 춤추듯이 걸어가는 장면을 보고, 갑자기 고대장편소설 속에서 상하편을 잇는 시를 생각했다. 알고보니

왕가위는 고대유행을 잘 꿰고 있어서 풀었다 당겼다 하며 우리 국학의 바탕무늬를 영화에 깔고 있었던 것이다. 치파오와 불륜의 이야기가 중년관객을

끌었는지는 모르지만, 왕가위는 그 숨결을 찍어내었고, 이 숨결이 중년관객으로 하여금 유행으로 받아들이게 한 것이다.

<와호장룡>,여전히 매혹적인 동양

다시 10월 말 파리에 돌아갔다. 파리의 전철역은 온통 <와호장룡>의 포스터로 바뀌어 있었다. 시청광장에는 대형TV화면이 서 있는데, TV

속 주윤발과 장쯔이가 대나무숲에서 날아다니는 모습에 행인들이 발길을 멈추고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 자신의 역학지식으로,

중국인들이 어떻게 중력을 벗어나는 법을 단련하고 있는가를 떠올리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프랑스의 영리한 영화마케팅은 영화이름을 “용과

호랑이”로 간략하게 바꾸어놓았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홍콩대만의 무협영화를 보기 시작해 무협영화의 경지는 호금전의 <공산령우>와

<협녀> 속에서 일찍이 식견을 닦았는데도 신비한 동양의 색채는 여전히 우리 관중을 매혹시켰다. 그때는 아직 미국에서는 상영이 되지 않았는지

뉴욕의 친구가 전화를 해 해적판을 한장 사서 보내달라고 했다. 그 며칠 뒤 런던에서 리안을 만났다. 전세계적인 성공이 그를 굉장히 피곤하게

한 기색이 역력했다. 앤디 워홀의 작품이 가득 걸려 있는 한 술집에서 모두들 잡담을 하는데, 에어컨바람이 그를 불어 쓰러뜨리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와호장룡>을 이야기하면서 그가 한마디했다. “관중이 보고 싶어하는 것을 생각하지 말고, 그들이 본 적이 없는 그 무엇을 생각하라.”

나는 이 말이 리안의 사업비결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속에 쑤셔넣었다.

에드워드 양, 왕가위, 리안의 영화는 바로 세 가지 제작방향을 대표하고 있다. 양은 생명경험을 그려내고, 왕가위는 유행모드를 만들어내고,

리안은 대중소비를 생산해내고 있다. 이 세 가지 서로 다른 제작방향이 화어영화가 각각 다른 생산시스템 속에서 거대한 창작능력을 잠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영화생태와 구조를 잘 드러내주고 있다. 오늘 이 세 영화가 얻은 성공을 더이상 기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프랑스에서만

<하나 그리고 둘>이 30만명을 넘었고, <화양연화>와 <와호장룡>이 각각 60만명과 180만명의 관객을 넘어섰다. 영화를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이것은 기적이다. 이런 기적은 다시 한번 사람들의 관심을 화어영화에 쏠리게 했다. 날이 갈수록 떨어지는 중국권영화의 명예가

그들로 하여 회복된 것이다. 나 자신도 그들 세 사람의 시장개척의 덕을 보았다. <플랫폼>이 괜찮게 팔린 것도 곧 관객경향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중국영화 부상, 그러나 대륙은 잠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 사람이 각각 대만과 홍콩에서 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문화로서의 영화는 광활한 대륙에서는 이미 침몰한 것 같다. 화어영화를

구제한 영웅은 모두 축축한 작은 섬에서 왔다. 90년대 중반부터 중국 국산영화는 창작의 활력과 국제시장의 신임을 잃어버렸다. 국제적인 대감독들은

몇년 전에 벌써 국제시장에서 판로가 거의 사라졌고, 매체에 의존해서 겨우 지지고 볶아 겉치장만 하고 있다. 자기에게 관중이 있다고 생각하는

감독도 베이징 말투로 아큐(阿Q)를 흉내낼 수 있을 뿐이다. 거대한 영상공백이 우리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데, 나는 보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볼 수 있는가? 에드워드 양, 왕가위, 리안 이 세 감독이 화어영화의 새로운 세기를 열어놓은 것을 보고서도, 그 속에 대륙감독이

빠진 것에 대해 같은 영화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의 이런 ‘여유’가 나로 하여금 새로운 시대가

반드시 곧바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을 확신하게 하고있다.

지아장커(賈樟柯) / 영화감독·<소무> <플랫폼>

번역 장병원 / 베이징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