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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FF 37.5] 언어 이상의 것까지 전달하는 메신저

부산국제영화제 중화권 전문 통역가 강세인

욘판, 차이밍량, 허우샤오시엔, 펑샤오강, 왕가위 감독 등 중화권의 유명 감독은 물론 유덕화, 탕웨이 등 스타들이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을 때마다 이들의 통역은 강세인 통역가의 몫이다. 영화제 소속은 아니지만 일이 생길 때마다 영화제는 그녀를 찾는다. 뿐만 아니라 강세인 통역가와 함께 일했던 감독들도 대부분 그녀를 칭찬한다. “솔직하고 쿨한 성격에 반한” 배우 탕웨이는 한국에 올 때마다 강세인씨가 거의 전담하다시피 통역을 담당할 정도로 친분을 쌓기도 했다. 대중이 보기에 항상 스타 곁에서 머무니 즐거운 일만 가득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영화제 통역 일이 워낙 바빠서 옷 갈아입을 여유조차 없고 돌발상황 역시 많아 때로는 매니저 이상의 역할까지도 해야 한다. 영화제 관객과의 대화 중에 “왜 영화를 이렇게 만들었느냐”며 다짜고짜 화를 내는 관객의 질문은 “상업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당신만의 선택을 한 이유는 무엇이냐”는 식으로 우회해서 전달하기도 한다. 때문에 그녀는 “통역을 맡은 감독들의 영화를 볼 때마다 기대가 아니라 긴장부터 된다”고. 한번은 강세인씨가 담당한 감독이 어떤 이유로 화가 나서 집으로 가버리겠다는 쪽지 한장을 남겨놓고 숙소에서 사라진 적도 있었다. “스탭들과 함께 백방으로 찾아 돌아다녔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직접 장문의 편지를 남겼는데 감독이 그것을 읽고 돌아온 적도 있었다.” 통역만 한다고 생각하면 이 일을 이렇게 오래할 수는 없을 거라는 그녀의 말이 이해된다.

영화제에 자주 다닌 관객이라면 무대에 올라 감독의 말을 받아 적지 않고 외워서 전달하는 강세인 통역가를 한번쯤 만났을 것이다. “질문을 받아 적다 보면 글자에 집중하게 되니까 전체 맥락을 놓칠 때가 있다. 그래서 웬만하면 외워서 통역하려고 한다.” 게다가 순차 번역보다는 들리는 대로 바로 말하는 동시통역이 수월할 때도 있다고 하니 그녀에게 통역은 천직이 아닐까.

2006년 대만 유학 시절에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를 처음 만나 연을 맺은 뒤, 한국으로 돌아온 그녀가 무작정 부산영화제를 찾아가 “아무 일이나 맡겨달라”고 하자 덜컥 맡긴 일이 유덕화 전담 통역. 강세인씨와 부산영화제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허름한 옷차림으로 스마트폰 하나 없이 다니는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소박한 모습이나 “선글라스 너머로 마음을 꿰뚫어보는 듯한” 왕가위 감독의 기이한 분위기를 기억 속에 오래 간직하고 있는 그녀가 최근 바라는 점이 있다면 “한•중 합작영화가 조금 더 성과를 내고, 홍콩 영화인들이 힘을 냈으면 좋겠다”는 것. 그녀는 천생 영화인이다.

스마트폰

“스마트폰이 생기고 난 후부터는 이 기기 안에 모든 걸 담아두었다. 지난 수년간 영화제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이 여기 다 들어 있다.” 신기하게도 방대한 데이터가 단 한번도 삭제된 적이 없다고. 심지어 떨어뜨린 적도 없다고 하니 영화의 신이 비호 중인 듯한, 그녀에게는 부적 같은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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