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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차라리 고양이를 찾겠다

<탐정: 더 비기닝>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 등으로 본 탐정의 도(道)

<탐정: 더 비기닝>

탐정이 없는 땅에서 태어났기에 탐정은 될 수 없었지만 그의 꿈은 범인을 잡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신문기자가 되었다(경찰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기자가 탐문도 하고 추리도 하고 범인도 잡고 부업으로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 노릇도 하며 악당을 물리치는 할리우드영화들을 보고 자란 탓이었다(기자가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연애를 하다가 연애도 하고 연애만 하는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자랐다면 뭐가 되었을지 궁금하다).

하지만 범인 한번 잡지 못한 채 경찰서 문고리만 잡고서 애타게 기사를 구걸하던 몇년, 그에게도 마침내 기회가 왔다. 살인사건 용의자 집 앞에서 혼자 잠복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언더커버, 누가 봐도 기자 티가 나는 트렌치코트를 차려입고 잠복하던 그는 저 멀리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어린 시절 꿈을 떠올렸다. 그래, 내가 범인을 잡는 거야.

그는 빈집에 들어가 증거를 찾겠다면서 한밤중에도 눈에 확 들어오는 연한 베이지색 트렌치코트 자락을 펄럭이며 담을 넘기 시작했다. 함께 있던 회사 운전기사가 이러다가 잡혀간다면서 붙잡았지만 나의 직감에 따르면 이 사람이 범인이라며 정의감에 불타는 탐정 지망생을 말릴 수는 없었고… 말릴 필요도 없었다. 그는 담벼락 위에서 발을 헛디뎌 머리부터 떨어졌고(그래서 그는 경찰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키만 컸지 운동엔 백치) 시멘트 바닥에 부딪쳐 잠깐 기절했다. 정신을 차린 그가 가장 먼저 한 말은 이런 것이었다고 한다, 형, 이거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요.

그렇게 명탐정은 사라져갔다, 태어나보지도 못하고. 그는 쓸쓸하게 사회부에서 문화부로 자리를 옮겼다.

형사 성동일이 기동성이라고는 없이 시선만 끄는 트렌치코트를 입고 돌아다니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선 강력계 형사들이 범인 잡으러 가기 전에 신발끈부터 묶던데) <탐정: 더 비기닝>을 보고 있자니 먼 옛날, 탐정을 꿈꾸었던 그가 아스라이 떠올랐다. 기자가 범인 찾는다고 설치다가 <특종: 량첸살인기>의 허무혁(조정석)처럼 헛다리나 짚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할까. 그래도 그가 탐정이 허용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아무 나라에서나 태어났더라면(한국은 OECD에서 탐정이 없는 유일한 국가라고 한다), 그랬더라면… 운동신경이 없어서 탐정 세계의 낙오자가 되었겠구나. 선배, 그냥 기자 하길 잘했어.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

험한 일은 너나 하라고 미루는 사장 없이 혼자 일하는 자영업자라고는 해도 탐정이 머리만 쓰는 건 아니다. 그 옛날 조선 땅에도 탐정이라는 것이 존재했다면서 찾을 탐(探), 바를 정(正), 곧 올바름을 밝혀내라는 의미였다고 사기를 치는(원래는 찾을 탐(探), 염탐할 정(偵), 그냥 찾고 뒤진다는 뜻이다)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의 김민(김명민)도 조선시대 선비답게 난생처음 만난 연장자 서필(오달수)을 마구 부려먹지만, 그 연장자가 부실하니 자기 몸은 자기가 챙길 수밖에. 하나 역시 조선시대 선비답게 이론엔 밝으나 실전 경험이 전무하여 폼만 잡다가 두드려 맞지.

몸을 쓴다고 하여 기운만 좋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전세계 탐정 지망생 어린이들의 워너비 셜록 홈스는 키도 크고 체격도 좋고 기운도 세고 싸움도 잘하지만 그것 말고도 신기에 가까운 능력이 있으니,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분장술과 그것을 떠받치는 다양한 사투리 구사력이다. 신장 190㎝ 가까운 남자가 키를 40㎝나 줄여 작고 가냘픈 할머니가 되고(이 정도면 홈스의 신기가 아니라 그냥 작가의 사기), 전형적인 영국 백인 남성이 갈색 피부의 집시 여자가 되기도 한다.

김민도 분장을 하고 범죄 조직에 잠입, 올바름을 밝혀내려고 하지만, 이건 누가 봐도 눈썹만 두꺼운 김민, 만화방에서 애 보다가 나온 <탐정: 더 비기닝>의 아마추어 대만(권상우)만도 못한 연기력과 분장술을 선보인다. 그래도 여자 만나서 멜로드라마풍으로 목소리를 낮게 깔 때면 홈스 부럽지 않은 연기력이 분출한다.

탐정은 또한 이재(理財)에 밝아야 한다. 2014년 자영업자 평균 부채가 9천만원이었던 이 땅의 탐정, <영건 탐정사무소>의 영건(영건, 오타 아님, 외국인 아님)처럼 사무실 월세 50만원이 없어 사채 쓰는 살림살이에 사소한 보탬이라도 된다면 인상착의 불분명한 장수벌레 찾는 일도 마다해선 안 되고, <그림자살인>의 홍진호(황정민)처럼 착수금 10원에 성공 보수 10원, 1일 수고비 1원이라는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티끌 모은 돈이 무려 500원, 가난한 탐정이라도 샐러리맨이 출근하듯 착실하고 꾸준하게 바람난 여자 사진만 찍어도 부자가 될 수 있다.

이처럼 영화에나 탐정이 나올 수 있는 한국이지만, 진짜 탐정이 있긴 있다. 고양이 탐정, 고양이가 탐정 노릇을 하는 게 아니라(그럼 정말 귀엽겠지만) 사람이 고양이를 찾아서 고양이 탐정. 집 나간 고양이를 찾는 것이 업인데 잠복과 탐문도 할 수 있고, 증거와 흔적을 찾아 추리를 해야 하며, 트렌치코트를 입어도 비웃는 사람이 없는 데다(고양이 주인은 고양이 탐정에게 절대적인 을이기 때문에 칠칠치 못하게 고양이 잃어버렸다고 쌍욕을 얻어먹어도 무조건 빈다고 한다), 마주치는 폭력이라고 해봐야 고양이 발톱이 고작이니, 불타는 탐정의 혼을 쏟을 곳 없는 탐정 지망생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직업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세상에 악인(惡人)은 부족한 적이 없었고 선인(善人)은 넘친 적이 없었다. 범인을 잡으면 좋겠지만 범죄가 너무 거대하여 누구에게 죄를 물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 너무 많다. 그런 세상에서 홀로 탐정으로 뛰어야만 한다면 나는 차라리 고양이를 찾으러 나가겠다.

뻔뻔해야 사업을 하지

자영업자의 지옥에서 파산하지 않기 위해 탐정에게 필요한 두세 가지 것들

<영건 탐정사무소>

블루오션

<영건 탐정사무소>의 영건은 의뢰만 오면 뭐든 하다 보니 뜻하지 않게 다른 탐정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게 된다. 동물 탐정 에이스 벤츄라보다 한발 앞선 곤충 탐정 영건, 장수벌레를 찾는 탐정이다. 그렇게 초미세 의뢰를 받아 탐정 인생을 시작한 영건은 예쁜 의뢰인에게 넋이 나가 또 한번 경쟁자 없는 블루오션을 향해 나아가는데, 고미술학자가 개발했다는 타임머신을 찾는 일이다. 물리학자도 아니고, 발명가도 아니고, 고미술학자가 타임머신을 만들었다는데 일말의 의심도 품지 않고. 남들이 가지 않은 길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림자살인>

조수

일하는 건 많이 봤지만 월급 받는 건 본 적이 없는 직업, 탐정의 조수다. 심지어 <그림자살인>의 장광수(류덕환)는 돈 주고 의뢰한 것도 까먹었는지 탐정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온갖 허드렛일을 떠맡는 것도 모자라 순발력 떨어지는 탐정을 대신해 안 되는 사투리 써가면서 변장까지 한다. 제일 억울한 인물은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에서 신분만 양반이지 자기보다 돈도 없고 나이도 어린 김민에게 21세기 인턴급 부림을 당하는 서필(오달수). 왠지 모를 사명감을 빙자하여 열정페이로 때우는 무급 노동력을 착취하며, 탐정은 살아간다.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

후안무치

그렇게 무급 노동력을 바탕으로 살아가면서도 잘되면 자기 혼자 잘해서 잘됐다고 믿는 것이 사장의 특징이다. 아니, 무급 노동력을 써먹고 있다는 자체가 이미 후안무치를 전제한 행위. 자기는 편하게 내레이션 읊으면서 서필만 밖으로 내돌리는(미세 분말에 불을 붙이면 폭발력을 지니게 되는데 불씨가 없으니까 네가 관군이 포위하고 있는 사지로 나가서 불씨 하나만 구해오거라) 김민은 서필이 죽었다는 (오보지만) 소식을 듣고도 ‘뭐?’ 한마디를 던진 다음 계속 제 할 일을 한다. <그림자살인>의 장래 탐정 콤비도 아무리 나쁜 놈이라지만 노인네를 매달고 고문하는,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상에 걸맞은 후안무치를 선보인다. 뻔뻔하지 않으면 사업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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