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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파리 영화관 산책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포럼 데 이마주, 룩소극장, 르 발자크 극장에서 만난 영화의 어제와 오늘

포럼 데 이마주.

파리를 다녀왔다. 지난, 10월 말의 일이니 파리가 테러로 얼룩지기 직전이다. 한국영화 컨퍼런스에서 짧은 발표를 끝내고 서둘러 파리 영화관들을 방문했다. 마지막 파리를 방문한 것이 8년 전이니 그간의 변화들과 현황이 궁금했다. 먼저 확인하고 싶었던 곳은 세곳이다. 일단 마틴 스코시즈 전시가 열리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방점은 스코시즈가 아니라 ‘전시’에 있다. 둘, 2008년에 새로 개장한 포럼 데 이마주를 둘러봐야 한다. 전보다 네배나 더 큰 규모로 개장했다니 달라진 모습이 궁금했다. 셋, 2013년에 개장한 룩소극장은 필수 코스다. 서울시에 시네마테크 지원을 요청하며 룩소극장을 사례로 제시한 바 있지만, 정작 들른 적은 없다. 근 30년간 방치된 폐관 극장을 파리시가 2500만유로에 사들여 3년간의 개장공사를 마치고 2년 전에 문을 열었다. 파리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여전히 살아 있는 생미셸쪽의 예술 영화관들을 추억의 경로를 따라 찾아가는 것은 그다음의 일이다.

마틴 스코시즈의 전시회를 가다

10월24일 토요일 오후. 베르시에 있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방문했을 때 거의 100m 넘게 너른공원쪽으로 길게 줄 선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10월14일부터 시작한 스코시즈 전시를 보기 위한 행렬이다. 중•장년층은 물론이고, 젊은이들이 족히 한 시간 넘게 기다려 전시를 구경하고 있었다. 거대 규모의 전시도 아니고, 사사로운 물건들이 주를 이루는(가령, 영화소품으로 활용된 스코시즈 집에 있던 가족용 원형탁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전시였지만, 관람자들은 스코시즈의 작업 비밀을 깨달을지도 모른다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전시장 복도 한구석에 서서 스코시즈 영화의 발췌된 장면들을 보거나 콘티북에 적힌 깨알 같은 스코시즈의 메모를 흥미롭게 읽는 젊은이들의 진지한 모습이 전시보다 더 흥미로웠다. 전시를 둘러보고 나오면 상영관에서는 마틴 스코시즈 전작이 상영되고 있다. 사실 더 구미를 당겼던 것은 그다음 주에 열리는 미클로시 얀초 회고전이다. 디지털로 새로 복원된 영화들을 포함한 18편의 극영화와 보기 힘든 그의 다큐멘터리들이 상영목록에 올라 있다. 12월에는 임권택 감독 전작전이 열릴 계획이다.

서울과의 시(격)차에 작은 현기증을 느끼며 이제 파리 예술 영화관들을 둘러보러 나섰다. 파리 시내에는 80여개의 예술 영화관들이 성업 중이니 방문에는 우선순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미리 생각해둔 몇 가지 분류에 따라 대표적인 극장들, 기억에 남았던 곳들을 시간되는 대로 찾기로 했다. 몇몇 극장들은 유럽영화 상영 시에 극장을 지원하는 유로파 시네마의 장 밥티스트 셀리에즈가 직접 연락을 해주기도 했고, 생소한 극장은 함께 방문도 했다. 원래 서울아트시네마도 유로파 시네마의 회원으로 지원을 받아볼 요량이었지만 전반적인 문화예산지원 삭감으로 유럽 이외의 극장들은 더이상 지원대상이 아니라는 서운한 통보만 들었다.

참고로 말하자면, 파리 예술 영화관은 어떤 영화들을 상영하는지에 따라 다르게 분류된다. 세 부류의 영화들이 있다. 첫째, ‘연구와 발견’(예술 및 실험영화들), 둘째, ‘젊은 관객’(어린이 등의 청소년 관객을 위한 영화들), 셋째, ‘유산과 레퍼토리’(고전영화들) 영화들이다. 예술 영화관들은 최소한 이 가운데 하나의 영화를 상영해야 한다. 이에 따라 프랑스 영화진흥위원회에 해당하는 CNC의 지원규모가 달라진다. 두 번째 분류법은 극장 규모에 따라서다. 1920~30년대에 시작한, 그리고 전후 예술영화의 전성기에 개장한 예술 영화관들은 주로 단관형(1개관)이거나 예전의 단관을 쪼개서 나눈 소규모 분할형(2~3개관)들이다. 파리 5, 6구의 카르티에 라탱 지구에 집중되어 있는 극장들이 그러하다. 10개관이 넘는 대형 멀티플렉스와 차별적인 3~4개관의 복합형 극장들도 있다. 대도시에 새로 개장한 극장들이나 파리 교외에 있는 곳들이다. 멀티플렉스 체인인 MK2의 예술관들도 있는데, 한국과 달리 멀티플렉스의 한관이 아니라 별도의 극장이다. 마지막은 편의적으로 공적지원의 규모에 따른 분류다. 특별히 파리시가 예산의 상당수를 지원하는 공공 영화관들이 있다. 파리시는 ‘미션 시네마’라는 영화정책으로 공적인 성격의 영화관을 지원하는데, 레알역 지하에 있는 시네마테크에 가까운 ‘포럼 데 이마주’와 예술 전용관 룩소극장이 대표적이다. 파리시는 이 외에 민간 독립 예술 영화관들도 지원한다. 극장의 현대화, 디지털화 지원이 포함되어 있다. 말 그대로 영화 천국이다.

포럼 데 이마주.

영화의 거리에 있는 포럼 데 이마주

미셸 공드리의 <무드 인디고>(2013)에서 연인들이 첫 데이트를 하는 곳이 지금 백화점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포럼 데 알’이라는 곳인데, 이곳 지하에 파리시가 지원하는 ‘포럼 데 이마주’가 있다. 한•불 수교 130주년을 맞아 ‘최면에 빠진 서울’이라는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80여편의 서울이 담긴 영화를 상영하는 행사로, 프랑스 평론가들이 참여해 홍상수, 임상수, 봉준호 영화에 대한 강연을, 이송희일 감독, 배우 예지원 등이 방문해 관객과 대화를 하기도 했다.

5개 상영관을 구비한 ‘포럼 데 이마주’는 연간 30만명이 찾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 이어 파리를 대표하는 극장이다. 1998년에 ‘비디오테크 드 파리’라는 이름으로 개장했지만, 2005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2008년에 새로 개장했다. 제너럴 디렉터인 사빈 페로댕에 따르면 원래 소방 문제 때문에 공사가 시작됐지만, 디지털 환경 변화에 발맞춰 새로 공간을 확장하면서 전보다 네배 정도 더 큰 규모의 극장이 됐다고 한다. 포럼 데 이마주에는 7500편의 영화들이 보관되어 있는데, 주로 파리에 대한 기억들을 담은 영화들, 고전영화, 단편영화, 애니메이션, 아이들을 위한 영화들이다. 상영관이 있는 2층은 네온 조명에 스탠리 큐브릭 영화의 모던한 인테리어를 떠올리게 하는 소파와 의자들이 가지런히 배치되어 있다. 디지털화된 영화를 편하게 감상할 수 있는 열린 공간에 2인에서 8인까지 영화를 볼 수 있는 부스,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아틀리에도 있다. 여기에 ‘영화의 거리’ 조성과 더불어 영화 전문 도서관 ‘프랑수아 트뤼포 도서관’이 극장 옆에 새롭게 들어섰다. 37편의 서로 다른 영화를 상영하는 대형 멀티플렉스 UGC 시네시티로 가는 길 바로 입구에 있다. 1200㎡에 1만7천권의 장서, 7500편의 DVD를 수장하고 있고, 회원가입에 따라 모두 무료로 활용할 수 있다. 파리 7구 앙드레 말로 도서관에 있던 영화 관련 자료들을 ‘영화의 거리’ 조성에 따라 이곳으로 이전했다고 한다. 영화 관련 신간 도서를 알기 쉽게 소개하고 있고, 영화 관련 정보들을 제공한다.

포럼 데 이마주는 매년 2천편의 영화를 상영하고 15개의 영화제가 열리고, 30만의 관객이 찾는 곳이다. 상영의 60%가 여전히 35mm 필름이다. 유산적 가치의 영화를 상영하고 보존하기 때문이다. 한해 800만 유로의 예산 중에서 70%를 파리시가 지원하고, 나머지 30%는 CNC, 파리 지역 지원금, 기업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관객 수입은 3만유로 정도로 적은데, 티켓 값이 저렴하고 다양한 할인제도가 있어서다.

사빈 페로댕은 극장 운영을 위한 후원자들을 찾는 일이 여전히 가장 큰 일이라 말한다. 전반적으로 문화가 어려운 상황이라 돈을 만드는 일에 시간을 많이 쏟게 된다고. 한국에서는 기업이 후원할 경우 세금 감면 혜택이 있냐는 질문부터 서울의 시네마테크에는 기업 파트너가 있는지를 물었다. 넌지시 LG가 지난 3년간 이 극장의 주요 파트너라고 알려준다. 포럼 데 이마주의 사이트에는 실제로 LG가 영화를 사랑한다며, 2011년부터 공식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는 홍보 글이 있다. 제7예술에의 관심 때문이란다. 스마트 텔레비전으로 이 극장의 드문 콘텐츠를 제공한다는 소개도 있다. 현대나 삼성 같은 곳이 시네마테크를 후원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그의 질문에 한국에서는 감독이나 배우, 관객이 대체로 돈을 낸다고 말했다. 내심 놀라는 눈치다. 프랑스는 감독들이나 영화인들이 문화적인 데에 돈을 내지 않는다고 했다. 국가나 기업이 지원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 아닌가, 라고 말하고 싶었다.

룩소극장.

되찾은 영화궁전 룩소극장

파리시의 진일보한 영화관 지원정책은 9구, 10구, 18구의 교차점에 있는 바르베역 근처의 룩소 극장의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파리시가 인수해 대대적인 내부공사를 거쳐 민간에게 위탁한 극장이다. 1920년대 무성영화를 틀던 시절의 사라진 모습- 이집트 양식의 벽들과 테라스- 을 그대로 복원한 상영관 내부가 아름답고 웅장하다. 상영관 무대 위에는 무성영화 상영 시 연주를 위한 피아노가 한대 놓여 있었다.

극장 대표 에마뉘엘 파피용에 따르면, 룩소극장은 개장 초기(1920~21)에는 이집트인 건축가 앙리 집시가 건설한 네오 이집트와 아르데코풍의 건축물이었다고 한다. 1991년에 외벽과 지붕이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지만, 이미 폐관한 이 극장은 이후로도 20년간 방치되어 있었다. 파시가 사들여 새로 개장하면서 건축가 필립 퓌맹이 개관 당시의 이집트 데코를 복원했다. 룩소의 대형관의 명칭이 이집트 감독인 ‘유세프 사인관’이라 불리는 이유다. 디지털 상영시설까지 갖추고 새로 2개관을 덧붙이면서 룩소극장은 대중예술로서의 영화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그 시절의 위용을 몽마르트르 언덕을 향해 다시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다.

지하철 바르베역 근처는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오르는 입구이자 아랍인, 흑인, 중국인, 인도인, 파키스탄인들이 섞여 있는 아직 덜 개발된 지구다. 에마뉘엘 파피용은 룩소극장의 재건에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룩소는 개관 초기에 1천석이 넘는 대형극장으로, 1950년대에는 하루 두번 상영으로도 한해 동안 70만명의 관객이 왔던, 한때 잘나가던 극장이었다. 2003년 파리시가 이 극장을 구매하기로 결정한 것은 더이상 폐관된 극장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지역사회의 요구와 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개발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영화관으로 유지할지, 아니면 다른 문화공간으로 바꿀지를 두고 여러 논의가 있었지만, 지역극장으로 개•보수를 거쳐 민간 사업자에게 운영을 위탁하는 것으로 결론이 모아졌다. 문화유산이라지만 이 극장은 일종의 동네 영화관이다. 요금도 저렴하다. 이 극장의 매력은 데코에 있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파리에서도 더이상 찾아보기 힘든 발코니 좌석이 아름답다. 옥상에 오르면 맥주나 와인, 커피 한잔을 할 수 있는 아름다운 뷰를 지닌 테라스에 작은 바가 있다. 바로 옆으로 고가철로 위를 지나가는 기차를 볼 수도 있다.

주로 예술영화들을 개봉하지만, 고전영화를 상영하는 시네클럽이나 매달 한번 영화 관계자가 아닌 유명인들을 초대해 그들이 선정한 영화를 상영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민대학’(Universite Populaire)이라는 행사도 열린다. 극장 운영은 주로 CNC, 파리시, 유로파 시네마 등의 지원금에, 관객입장료와 옥상의 바에서 나오는 수입들로 메우고 있다. 연 관객이 20만명이라지만 일년에 5만유로에 달하는 유지비가 가장 큰 걱정이라 한다. 사실 룩소극장의 성공은 꽤 독보적이다. 양질의 프로그램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 지구에 유일한 영화관이라는 장점도 있다. 근처 주민들이 예전에는 한달에 한번 영화관을 찾았다면 이제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로 동네 영화관으로서 룩소극장을 찾는다고 한다. 에마뉘엘 파피용은 여전히 극장의 미래를 밝게 보고 있다. VOD나 인터넷, 컴퓨터로 영화 보는 개인관람행위가 늘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다른 사람과 같이 있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열망이 여전하기에 영화관을 찾는 관객이 있을 거라 여긴다. 룩소극장은 과거의 영화를 추억하는 전설의 극장이 아니라 미래로 향한 새로운 극장이다.

르 발자크 극장.

샹젤리제에서 여전히 전투 중이다 - 르 발자크 극장

샹젤리제 거리에서 유일하게 예술 영화관을 운영하고 있는 ‘르 발자크’의 극장주 장 자크 쉬폴리안스키와의 만남은 기대한 일이었다. 그는 이미 두 차례나 극장 문을 닫는 스트라이크를 했던 적이 있다. 샹젤리제 거리의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예술영화를 상영하기 시작하면서 정작 ‘르 발자크’에서 상영할 영화들이 없어졌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상징적인 파업이긴 했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여전히 이 극장은 살아남았다.

‘르 발자크’는 1935년 개관 초기에는 630석의 대형극장이었다. 샹젤리제 거리에 8번째로 만들어진 극장이라 한다. 전쟁 전에는 주로 셜리 템플, 존 포드 등의 미국영화를 상영했고, 전후에는 새로운 프랑스영화를 상영해 1950~60년대에 황금기를 구가했다. 3대를 이어 영화관을 운영하는 장 자크 쉬폴리안스키는 그 시절이 일년에 한개 관에서 40만명의 관객이 왔던 황금기라 추억한다. “좋은 시절은 지나가버렸다. 요즘은 세개 관에 한해 15만명의 관객이라도 온다면 샹젤리제 거리에 깃발을 꽂겠다”고 말한다. 지난 5월에 개관 80주년 행사를 마쳤지만, 여전히 호화로운 샹젤리제 대로변 골목길에서 예술 영화관이 살아남는 것은 그에게는 진행 중인 ‘전투’다. 예전, 극장 파업을 했던 상황에 대해 질문을 꺼내자 그는 극장 문을 닫는 파업을 벌이며 라디오와 방송에 출연해 상황을 알리고 문화성 장관과 만나 문제를 논의하던 당시 상황을 즐거운 기억처럼 늘어놓았다. 요즘은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예술영화 상영을 자제하는 분위기란다. 그는 이런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대중을 증인으로 끌어들이는 일이라 말한다. 영화 상영 전에 매번 관객에게 ‘르 발자크’의 역사에 대해 짧게 이야기를 하는 것도 그런 이유처럼 보였다.

80년의 오랜 역사를 지닌 극장이고, 이미 그 자신이 전설적 인물이 됐지만 최근 변모하는 영화 환경은 여전한 고민거리다. 그 하나는 젊은 관객을 극장에 끌어들이는 방안이다. 정확한 답은 없지만, 극장이 끊임없이 변모해야 하는 이유다. 변화의 시도는 지금까지 이 극장이 지속할 수 있었던 힘이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샹젤리제 거리가 주로 파리지앵이 아니라 관광객이 잠시 머무는 지역이라, 사람들이 이 극장에 잠깐이라도 머물 수 있도록 영화관을 유지하는 방안이다. 작긴 하지만 그는 앉아서 커피와 음료를 마실 수 있는 바를 운영하고 있다. 방문 시에 그는 직접 라반자 커피를 내려주다가 셔츠에 커피를 쏟기도 했다. 여전히 대중이 극장을 찾는 일에서 행복감을 느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연간 100회의 콘서트(주로 예술계 대학생들이 참여해 영화 상영 전에 작은 연주회를 연다), 극장을 자주 찾았던 유명 요리사와 함께하는 행사(이중에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호텔 발자크에 레스토랑을 갖고 있는 피에르 가니에르도 있다. 장 자크 쉬폴리안스키는 자랑스럽게 그가 ‘르 발자크’의 관람객 중 한명이라며, 그와 다른 요리사들이 관객에게 최고의 요리를 제공하는 특별 행사를 개최했던 행사 때 사진을 보여주었다)도 있다. 모두 ‘르 발자크’를 사랑하는 관객이 참여하는 행사다.

팔순의 나이지만 장 자크 쉬폴리안스키는 관객의 고령화를 걱정했다. 젊은이들이 조그만 휴대전화로 영화를 보면서 영화관의 스크린이 지닌 마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기도 했다. 그는 영화가 새로운 세계로의 모험이라는 것을 여전히 믿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극장을 나서면서 입구 왼쪽으로 나 있는 사무실 앞에서 사진 한장을 찍었다. 사무실은 얼핏 봐서도 배 모양을 닮았다. 그는 영화 관람이 항해와 같은 것이라며, 자신을 ‘캡틴’이라 소개했다. 발자크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