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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의 오! 컬트 <잉글리쉬맨>
2002-03-20

나는 올 여름 홍수가 날 것을 알고 있다

중국 속담 중에 우인동산(愚人動山)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사람이 산을 옮긴다라는 뜻인데, 이야기의 기원은 이렇다. 옛날 중국 어느 지방에 한 노인네가 살고 있었는데 그 양반이 살고 있는 마을엔 커다란 산이 하나 있어서 다른 마을로 가려면 늘 먼길을 돌아서 가야만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노인네가 손수레를 끌고 나오더니 산모퉁이 한쪽 끄트머리에서부터 흙을 퍼 나르더란다. 동네사람들이 “뭐하시는 겁니까”라고 묻자 노인네는 “산을 옮기려고 그러네”라고 말했단다. 마을사람들은 황당해하며 “노인네가 어느 세월에 이 산을 다 퍼 옮기겠다는 것이냐”며 정신나간 사람 취급을 했을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그 노인네 왈, “내가 다 못하면 내 아들이 할 것이고 내 아들이 다 못하면 내 손자가 할 것이고, 결국엔 이 산이 다 옮겨질 걸세”라고 했다고 한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실제로 그런 어리석은 일들을 오래 전부터 실천하고 있었다. 잘 알려진 대로 네덜란드는 땅이 좁고 해수면보다 낮아서 늘 간척사업을 하면서 국토를 관리하고 확장해나가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바닷물에 젖은 땅을 간척사업으로 농사지을 수 있는 소금기 없는 땅으로 만드는 데에는 대략 100년의 기간이 소모된다고 한다. 바닷물을 막고 풍차로 물을 퍼내고 다시 빗물을 받아서 소금기를 희석시켜 다시 퍼올려서 버리고 다시 또 빗물을 받아서 다시 씻어내는 일을 약 100년간 반복해야 온전한 ‘국토’가 된다는 것이다. 우인동산이란 말이 중국에서는 속담으로 존재할지 모르겠지만 네덜란드에서는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으로 실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200살 정도 되는 것도 아닐진대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연구대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나에게 그 무엇보다도 연구대상인 나라는 다름 아닌 바로 이 땅. 대한민국이다. 산을 퍼 옮겼거나 바다를 육지로 바꾸거나 몇 백년 걸릴 사업을 서슴지 않고 시작할 줄 알기 때문이 아니라, 자칭 5천년 역사를 지나오면서도 정말 지지리도 변하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국토는 바람처럼 왔다가고 해류처럼 흘러가는 게 아니다. 이 땅 위에서 5천년을 넘게 살아온 것처럼 앞으로도 한민족이 멸종할 때까지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아갈 것이다. 그렇다면 살아가면서 집안을 고치고 마을길도 넓히듯이, 땅덩이도 불편하면 고쳐나가고 모자라면 채워넣고 보기흉한 것은 가꿔나가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게으르고 이기적인 자아도취자들은 노래만 부르고 있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고, “금수강산 옥토낙원”이라고, 사계절이 뚜렷하고 가을하늘은 세계제일이라고, 정말 그런가?

한반도 연간 기온차 40도. 이런 기후는 생명체는 물론이고 자동차, 건축물에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제공한다. 자동차나 건축물의 수명이 다른 나라보다 짧은 이유가 꼭 날림공사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의 늙으신 부모님들은 신경통부터 류머티즘, 골다공증, 오십견통, 중풍 등등 온갖 노환을 앓고 계신다. 왜냐하면 1년에 환절기를 네번이나 겪어야 하는 기후 속에서 평생을 살아오셨으니까 골병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현실적으로는 금수강산 옥토낙원이라고 노래할 처지가 아니란 말이다. 나는 예언가가 아니지만 여름이 오면 올해도 어김없이 장마가 닥칠 것이란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올해도 사람들이 실종될 것이고 도시와 마을이 물에 잠길 것이고 도로가 붕괴되는 재난이 닥칠 것이다. 몇달 뒤에 일어날 재앙을 우리는 뻔히 알고 있다.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5천번이 반복되도록 대책이 없다면, 이 민족은 과연 연구대상이 아닐 수 없다.

영화 <잉글리쉬맨>은 <언덕에 올라갔으나 산에서 내려온 어떤 영국인>이라는 기이한 이름(영화의 원제이기도 하다)을 가진 사람과 마을사람들이 그 지방의 언덕을 산으로 바꾸는 일화를 다루고 있다. 단지 자부심이란 것 때문에 평지의 흙을 퍼다가 산을 쌓는다니, 내 밥그릇 챙기는 일 외에는 고개도 안 돌리는 한반도민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과연 우인동산이라는 말이 제격인 듯싶다. 그럼 우리는 너무 똑똑해서 탈인가? 김형태/ 황신혜밴드 리더 http://www.hshband.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