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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바이블, 나의 치료제, <인디아나 존스2 - 마궁의 사원>
2002-03-20

‘내 인생의 영화’라는 이 코너의 제목은 ‘영화를 낭만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전제로 하는 것 같다. ‘내 인생의 소설’, ‘내 인생의 음악’이라는 표현은 왠지 어색하게 느껴지지만, 많은 사람들은 ‘내 인생의 영화’라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사용한다. 아마도, 영화라는 매체가 지금 현재, 가장 ‘진행중’인 예술이자, ‘영향력’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한 50년 뒤쯤에는 ‘내 인생의 게임’이라는 표현이 더 익숙해질지도 모르지만, 여하튼 영화는 우리 시대의 강력한 ‘환타지’이자, ‘꿈(dream)’, ‘대리만족’의 수단임에 분명하다. 꿈꿀 수 있는 자가 낭만스러울 수 있는 거 아닌가 싶다. 어느 순간엔가 ‘영화판’이라는 늪에 발을 담그고 있는 나에겐 ‘낭만적’으로 영화를 보았던 경험이 상당히 가물거리는 기억이 돼버렸다. 업으로 삼고 있는 대상에 대해 꿈을 간직한다는 것은 쉽고 간단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특히나 빵문제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열정’ 하나로만 버틴다는 건 더더욱 그럴 것이고.

여기까지 쓰고나니 내가 참 입에 풀칠도 제대로 못하는 염세주의자로 보일까 염려되는데, 그런 건 절대 아니고, 다만 누구나 그렇듯이 가끔씩 ‘현실’을 느끼며 우울해할 때가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꿀꿀할 때 꼭 찾게 되는 영화가 <인디아나 존스2: 마궁의 사원>이다.

<인디아나 존스2>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고모님의 손을 잡고 사촌들과 함께 본 영화였다. 종로의 어느 극장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밥도 굶으면서 앉은 자리에서 연달아 두번을 보았다. 그때처럼 신나고, 행복하게 영화를 본 일은 그 이후로,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인디아나 존스2>는 나에게 있어 영화 이상의, 말 그대로 바이블이자, 치료제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부푼 가슴을 안고 입학한 연영과 1학년 때, 첫번째 시나리오를 선배에게 보여줬다가 개박살이 나며 엄청난 좌절감을 느끼던 순간에도, 단편영화를 준비하다가 때려치우고 싶던 순간에도, 과연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지 갈팡질팡하는 순간에도, 항상 난 <인디아나 존스2>를 보곤 했다. 물론, 인디아나 존스가 해답을 주진 않는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 어느새, 낭만적인 옛 기억이 떠오르면서 미소짓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나선, 다시 한번 부딪혀보자는 객기가 발동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영화를 한편 정도 갖고 있는 건 참 다행스런 일이라 하겠다.

(이상은 ‘내 인생의 영화’라는 코너 포맷에 맞춰서 써본 글이고, 사실 솔직하게 털어놓자면 <인디아나 존스2>보다 더 중요한 영화가 있다. 바로 라는 영화다. 많은 분들이 그런 영화가 있었나 싶겠지만, 그도 당연한 게, 바로 내가 작년에 완성한 단편영화이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예상 밖의 좋은 반응을 얻었고, 그로 인해 나는 다음 영화를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얻게 되었다.

내 인생에 내 영화만큼 중요한 영화는 없다. 존경해 마지않는 큐브릭 선생이 무덤에서 걸어나와 컴백작을 찍는다 한들 말이다. ‘현실’이 이만치 다가온 순간, ‘낭만’은 간다. 하하하! 영원하라, 나의 뻔뻔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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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유선동 (단편영화 <샌드위치> 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