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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이 영화가 배우들의 ‘액팅 쇼케이스’가 됐으면”
이주현 사진 백종헌 2015-12-17

<인 허 플레이스> 앨버트 신 감독

<인 허 플레이스>를 만든 앨버트 신 감독은 캐나다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영화적 토대를 다져온 1984년생 젊은 감독이다. 토론토 요크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했고, 친구와 함께 타임랩스픽처스라는 영화사를 차려 제작과 연출을 겸하고 있다. <인 허 플레이스>는 <Point Traverse>에 이은 그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임신한 십대 소녀와 어머니가 아이를 원하는 젊은 부부에게 소녀의 아이를 ‘비밀 입양’시키는 과정을 그리는 이 영화는 극도로 섬세하게 모성을 관찰한다. 보편적인 주제를 특별하게 다룰 줄 아는 앨버트 신 감독의 영화적 재능이 이 한편의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여러 국제영화제에 초청돼 호평받은 것에 비하면 조금은 뒤늦은 한국 개봉. 앨버트 신 감독은 한국 관객의 반응이 가장 궁금했다며 개봉을 기다리고 있었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자랐고 그곳에서 영화를 만들어왔다. <인 허 플레이스>는 한국에서 한국 배우들과 찍은 첫 영화다.

=나는 캐나다에서 나고 자란 캐나다인이지만 부모님은 한국인이고 집안 분위기도 한국적이다. 그래서 캐나다에서만 영화를 만드는 게 꼭 나의 반만 사용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완전해지려면 한국에서도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화 촬영장소가 충청남도 합덕에 있는 작은엄마, 작은아빠의 농장인데, 예전부터 한국에 오면 그곳에 많이 갔었다. 지금은 버려진 농장이지만 그 농장이 기억에 남아 있었고 그 농장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다 몇년 전 한국의 어느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한 가족이 식사를 하면서 나누는 이야기를 엿듣게 됐다. 오랫동안 아이를 못 가졌던 한 여성이 임신을 했는데 그 임신이 진짜다, 아니다를 놓고 서로 논쟁을 하고 있었다. 캐나다에서도 비밀 입양(secret adoption)에 대한 루머를 들은 적이 있던 터라, 이 농장을 배경으로 비밀 입양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어떨까 싶었다.

-세 여성의 관점에서 모성을 이야기한다. 모성에 대한 접근 방식도 새로웠고 여성의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한 것도 놀라웠다.

=이건 남성의 판타지가 아니다.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다. 여자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게 중요했다. 모성을 제대로 그리지 못하면 영화의 나머지 다른 요소들이 잘 표현돼도 소용없을 거라 생각했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입양기관 사람들을 만나 리서치를 많이 했다. 나는 아이가 없어서, 임신의 과정이나 임신으로 인한 신체적, 정신적 변화에 대해서도 조사를 해야 했다. 조사를 해보니 입양 사실을 알리지 않고 몰래 아이를 입양해 키우는 경우가 의외로 많더라. 자신이 입양아인 것을 모른 채 살다가 부모님 사후에 서류를 정리하면서 비밀 입양 사실을 알게 된 친구를 만난 적도 있다.

-소녀(안지혜)와 어머니(길해연)가 사는 농장에 여자(윤다경)가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한정된 공간에서 세 인물의 감정을 집요하게 관찰한다. 폐쇄적인 공간과 구조가 인상적이었다.

=이야기보다 장소를 먼저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썼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나 고민하다가 한 장소에서 벌어지는 작은 이야기에 계속해서 집중하다 보면 결국 거대한 이야기를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엔 서울에서 온 여자의 시선, 나중엔 소녀의 시선, 마지막엔 엄마의 시선을 보여주는 식으로, 관점을 바꿔서 이야기를 보여주는 구성도 그런 고민 속에서 나왔다. 그런데 시각에 변화를 줘야겠다고 생각한 다음부터 시나리오를 쓰는 게 어려워졌다. 플롯을 어떻게 연결시키려 하는지, 시나리오를 쓴 사람이 인물을 어떻게 움직이려 하는지, 그런 의도를 숨기면서 최대한 자연스러운 이야기 메커니즘을 만드는 게 힘들었다.

-캐릭터와 캐릭터의 관계를 대사로 설명하지 않고 묘사하는 방식도 좋았다. 여자가 소녀에게 옷을 선물했을 때, 자기 앞에서 옷을 갈아입으라고 하면 소녀는 돌아서서 옷을 갈아입는다. 그때 카메라는 소녀의 도드라진 날개뼈와 소년의 것 같은 맨등을 찬찬히 비춘다. 소년과 소녀, 아이와 어른 그 경계에 소녀가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되는데, 모성으로 충만한 여자와 소녀의 대비 그리고 둘 사이의 긴장감이 증폭되는 장면이었다.

=소녀가 옷을 갈아입는 장면에선 아름답지만 무언가 끔찍한 느낌을 남기고 싶었다. 그 밸런스를 잡는 게 중요했다. 영화가 뒤로 갈수록 무겁고 끔찍해지는데, 그렇게 서서히 분위기를 쌓아가는 게 중요했다. 그 신에서 소녀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많은 느낌이 담겨야 했다. 소녀 캐릭터는 대사가 많이 없기 때문에 느낌과 에너지가 중요했다. 신체적으로, 감정적으로 소녀 캐릭터에 딱 맞는 배우를 캐스팅하는 게 관건이었다. 안지혜 배우가 표현을 잘해줬다. 영화 작업할 땐 배우들이 캐릭터를 채워나갈 수 있도록 배우들과 얘기를 많이 나눈다. 영화 속 캐릭터가 이 세상에 단 한명뿐인 특별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려고 신경을 많이 썼다.

-얘기한 것처럼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하다. 한국 배우들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좋은 배우들을 캐스팅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영화를 볼 때 유심히 보는 게 연기다. 스토리나 액션은 두 번째 보면 재미없는데 좋은 연기는 볼 때마다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다. <인 허 플레이스> 작업하면서도 이 영화가 배우들의 ‘액팅 쇼케이스’가 됐으면 했다. 캐스팅의 경우, 캐나다에선 한국의 상업영화밖에 접할 수가 없어서 한국에 올 때마다 한국 독립영화들을 많이 찾아봤다. 조감독이 영화와 배우를 많이 추천해줬다. 윤다경 선배님은 <사물의 비밀>(2011)을 보고서 꼭 한번 같이 작업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소녀의 꿈 장면은 영화의 유일한 판타지이자 소녀의 욕망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롱테이크로 찍은 꿈 장면이 매우 도드라져 보였다.

=꿈 장면은 남자친구가 소녀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영화의 터닝포인트가 되는 장면이다. 현실에서 소녀는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지 못한다. 소녀는 꿈속에서만 온전히 그녀 자신이 될 수 있다. 그 장면이 7분이 넘는 롱테이크다. 컷을 나눠서 찍지 않았다. 그래야 소녀가 꿈에서 깼을 때 꿈에서 현실로 강렬하게 빠져나왔다는 느낌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영화는 언제부터 좋아했나.

=어렸을 때부터 영화만 좋아했다. 컴퓨터 게임에 빠져본 적도 없다. 부모님이 캐나다에서 식당일을 해서 늘 바쁘셨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 집 옆 비디오가게에서 영화를 많이 빌려봤다. 혼자서 영화를 많이 보다 보니 그 나이에 봐서는 안 될 영화도 많이 봤는데, 열살 때쯤인가, <닥터 스트레인지러브>(1964), <시계태엽 오렌지>(1971), <샤이닝>(1980) 이 세 영화를 한 사람(스탠리 큐브릭)이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 ‘아, 나도 그거 하고 싶다, 영화 하고 싶다’ 그런 마음을 먹게 된 것 같다.

-앞으로 만들고 싶은 영화는 어떤 영화인가.

=이마무라 쇼헤이도 좋아하고, 허우샤오시엔도 좋아하고, 동시에 스티븐 스필버그도 좋아하는데, 제일 좋아하는 감독은 리안이다. 그의 영화도 영화지만 여러 가지 스타일을 넘나들며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서 좋아한다.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는 딱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잖아. 그런데 리안은 <헐크>(2003)를 만들었다가 <브로크백 마운틴>(2005)을 만들고, <아이스 스톰>(1997), <와호장룡>(2000) 등 여러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었다. 나도 그러고 싶다. 지금은 드니 빌뇌브의 <에너미>를 제작한 캐나다의 영화사에서 상업장편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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