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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스코프] 기적처럼 눈이 오던 순간
이예지 사진 오계옥 2016-02-05

<눈발> 촬영현장

우유팩을 맞고 돌아보는 예주(지우)의 얼굴. 얼음장처럼 창백해 보이는 얼굴에 자포자기한 기색이 역력하다. 수없이 날아드는 우유팩에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 그녀는, “컷” 소리가 나자마자 돌아보고 “왜 이렇게 못 던지냐”며 해사하게 웃는다.

남곤(김기주)의 완력에 사정없이 꺾이는 민식(박진영/GOT7 주니어)의 팔. ‘셔틀’을 거부했더니 돌아온 응징이다. 격한 팔 꺾기에 소품으로 쓰인 휴대폰이 떨어져 케이스와 배터리가 낱낱이 해체됐지만, 배우들은 개의치 않고 연기에만 집중한다.

“나가 죽어라, 안 쪽팔리나.” 살벌하게 예주를 몰아세우는 수정(장희령, 왼쪽)과 유경(박가영). 그런데 테이크 사이 중간중간 들리는 대화들은 귀엽기 이를 데 없다. “니 밥 좀 사라, 안 쪽팔리나.”

컷 사인 후 화기애애하게 돌변하긴 남자배우들도 마찬가지다. 1천원짜리 달랑 한장을 쥐어준 남곤과 진호(이찬희)에게 박진영이 “콜라 4개 사오고 500원 남겨오겠다”며 너스레를 떨고 있다. 카메라 옆에선 조재민 감독과 명필름영화학교 1기생 동기인 이큰솔 촬영감독이 진지하게 이야기 중이다.

눈이 내리지 않는 마을. 조재민 감독이 <눈발>의 배경으로 삼은 경상남도 고성은 그런 곳이다.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건만, 서울에서 4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고성의 햇빛은 따듯했다. 1월25일 고성고등학교의 한 교실에서는 명필름영화학교 1호 작품이자 2015년 전주시네마프로젝트에 선정된 작품 <눈발> 촬영이 한창이었다. 보조출연자로 실제 고성고 재학생 20여명이 동원된 가운데, 교복 차림의 민식(박진영/GOT7 주니어)은 남곤(김기주) 패거리에 둘러싸여 기선제압 당하는 중이다. 그는 ‘음료수 셔틀’을 요구하는 새 친구들에게 소소한 반항을 하지만, 이내 굴복하고 만다. 또래 배우들의 합은 척척 맞아 세 테이크 만에 오케이가 나고, 박진영은 “원래 난 이렇게 지질하지 않다”며 멋쩍게 항변한다. 다음 신은 더 만만찮다. 퀭한 얼굴에 떡진 머리를 한 예주(지우)는 아이들의 괴롭힘을 묵묵히 받아낸다. 어찌된 영문인지, 그녀의 뒤통수를 향해 던진 우유팩들은 죄다 비껴나기만 하고 테이크는 길어진다. 그럼에도 지우의 자세엔 흐트러짐이 없다. 늦은 오후의 교실, 어린 배우들의 집중력이 고요하고 투명하게 빛나는 순간이다. 마침내 들려온 “컷” 소리와 함께 쏟아지는 배우들의 웃음소리에 교실은 현실감을 되찾는다.

<눈발>은 눈이 오지 않는 고성을 배경으로, 전학 온 민식이 왕따 예주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런데 어제 고성에 10년 만에 눈이 왔단다. 눈이 필요한 유일한 신을 찍는 날, 기적같이 내린 눈이었다. “하얀 눈이 한 사회의 부조리를 덮는” 상상을 하며 시나리오를 썼다는 조재민 감독의 바람이 통한 것일까. 2016년 1월1일 새해의 시작과 함께 크랭크인한 <눈발>은 2월 크랭크업해 4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프리미어 상영으로 첫선을 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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