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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제일 안 좋은 건 시도하지 않는 거다”
이화정 사진 최성열 2016-02-24

<동주> 이준익 감독

하늘/ 바람/ 별/ 시. 이토록 서정적인 단어를 쓰는 것조차 금기시되던 시대가 있었다. ‘이런 세상에서 시를 쓰길 바라고, 시인이 되길 원했던 게 부끄러워’ 자신을 질책하고 스물여덟해, 짧은 생을 마감했던 시인 윤동주. 식민조국에서 시인은 언어를 빼앗기고, 신념을 버릴 것을 강요당했다. 이준익 감독이 흑백사진 속 해사한 얼굴과 아름다운 시로 박제된 시인 윤동주를, 타인과의 관계로 얽히고 실질적인 선택의 고민에 휩싸였던 20대 청년으로 육화했다. 영화 <동주>는 충무로에서 문학작가를 소재로 한 흔치 않은 작품이자, 시대극의 필요조건이라 여겨지는 프로덕션을 간소화했다는 점에서 독특한 시도다. 효과적인 소재의 구현을 위해 상업영화의 제작방식 대신 저예산 제작을 선택했다는 그의 변을 들어보았다.

-윤동주는 외적 투쟁을 하지 않은 시인이란 점에서 일제강점기의 공기를 담기에는 드라마가 다소 부족한 인물로도 보인다. 영화의 출발부터 넘고 가야 할 취약점으로 작용했을 텐데.

=맞다. 그것은 윤동주라는 인물이 근 70년 동안 영화는 물론 단막극으로도 재현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소설은 있었지만 영상화되지는 않았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시인인데 왜 주목하지 않았을까. 두 시간가량의 상영시간에 효과적인 이야기를 만들어준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그 해결책으로 영화는 윤동주(강하늘)와 송몽규(박정민)를 대립각으로 설정한다. 송몽규는 행동에 취약한 윤동주를 끊임없이 추동한 인물이자 전형적인 독립투사의 성향을 가진 인물로, 주목할 만한 강렬한 캐릭터로 그려진다.

=윤동주 한명으로는 영화를 만들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윤동주에게는 같은 집에서 석달 먼저 태어났고 같은 감옥에서 한달 뒤에 죽은 사촌 몽규가 있었다. 굉장히 특이한, 전례가 없는 운명적 관계라고 봤다. 그리고 윤동주 시의 바탕에는 송몽규에 대한 열등감이 있다. 첫 번째가 신춘문예 사건이었는데, 송몽규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고 윤동주가 그다음날부터 한 일이 자기가 쓴 시의 연표 작성이었다. 교토에 유학 가서도 몽규는 명문인 교토 제국대학에 합격하고 동주는 성적이 안 돼 교토 도시샤대학에 갔다. 동주에게는 같이 태어나서 한집에서 자랐지만 늘 자기보다 뛰어난 몽규를 향한 열패감, 질투심과 열등감이 상당했을 거다. 동주를 둘러싼 이런 환경과 관계를 설명하지 않고는 한 인간을 설명할 수 없다고 봤다.

-시대에 대처하는 서로 다른 방식이라는 점에서, 영화는 동주와 몽규를 거의 같은 비중으로 다루고 있다. ‘동주’가 아닌 ‘동주와 몽규’가 될 수도 있었겠다 싶다.

=누군가가 이 둘을 행동하는 양심과 행동하지 않는 양심이라고 정의하더라. 영화에는 시인 정지용(문성근) 같은 행동하지 않는 양심과 일제에 협력한 행동하지 않는 비양심도 등장한다. 제목은 무조건 ‘동주’라고 시작했고 그렇게 찍었다. ‘윤동주’가 아니라 친근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성을 빼고 동주로 갔다. 그런데 영화를 찍고 모니터링 시사를 했는데, 몽규의 삶이 도드라지더라. 윤동주보다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지만, 나도 제목에 몽규를 밝히는 게 좋지 않을까 그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건 모두가 반대하더라. (웃음)

-후쿠오카 형무소의 취조실에서 영화가 시작된다. 영화적 시점에서 형무소에 있는 현재의 동주가 형무소에 오기 전 몽규와 엮인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방식으로 구성했다. 전작 <사도>(2014)에서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의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는 것과 마찬가지 방식을 다시 똑같이 불러왔다. 어떤 지점에서 효과적이라고 본 건가.

=과거와 대과거가 병렬구조로 가는데, 그게 장점이 있다. 인물이 거쳐온 오랜 시간을 두 시간 분량의 영화에 압축하는데 굉장히 좋다. 레퍼런스로 삼은 고바야시 마사키의 <할복>(1962)을 보면 할복하라는 명령을 받은 사무라이가 현재와 과거를 병렬구조로 오가는데, 이 과정에서 극의 드라마틱함이 증가한다는 걸 목격했다. 과거의 ‘현재’가 이미 인물이 처한 ‘결과’라면, 그사이에 끼어드는 ‘대과거’는 그 ‘원인’이 된다. 극의 드라마틱함을 증가시키는 굉장히 유리한 구성방식이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1950)도 마찬가지고, 그런 작품이 꽤 많은데 한국영화에서는 별로 사용되지 않은 전개방식이기도 하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는 가운데 윤동주가 쓴 13편의 시가 드라마와 연결되어 동주의 내레이션으로 삽입된다. 시인이라는 극의 ‘소재’를 효과적으로 활용한 장치였다.

=<동주>의 각본을 쓴 신연식 감독이 진짜 문학 소년이다. (웃음) <러시안소설>(2012)이나 <조류인간>(2014) 같은 그의 연출작을 보면 영화와 문학을 효과적으로 결합해놓았다. 그런 신연식이 <동주>의 시나리오를 쓴 게 운명적이라고 본다. 시와 접목해서 만들자고 의견을 나누었고, 그 대표적인 장면이 나중에 몽규가 체포되는 장면에서, 윤동주의 시 <자화상>이 나오는 부분이다. 윤동주의 <자화상>에는 자신과 끊임없이 비교당했던 인물인 송몽규와의 아이러니가 있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런데 <자화상>은 일본으로 떠나기 전에 지은 시다. 말하자면 시가 들리는 시점과 쓰여진 시점이 딱 맞지는 않다. 연출자로서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싶은 욕심으로 봐주면 좋을 것 같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의 취조 장면이 진행되면서, 고등 형사(김인우)가 동주에게 일본 제국주의의 사상을 주입시키려 든다. 현실적이라기보다는 연극적 상황처럼 다가오는 측면이 있다.

=서명을 받는 거라 그렇다. 밀고자를 고발하려면 고문 장면이 묘사되었을 거다. 그런데 이건 서명을 받는 거다. 영화적으로 재구성된 픽션이 가미된 장면이다. 실제의 윤동주는 후쿠오카 감옥에 가기 전 교토 경찰서에서 취조를 다 받았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감옥 안에서 그 모든 걸 동시에 겪어나간다. 고등 형사가 지장을 찍으려고 한 건 그러니 허구의 상황이다. 그런데 영화는 고증만으로 가면 흥미지점을 잃고 성립이 될 수 없다. 서명을 한 것인가 아닌가가 바로 동주의 본질을 보여주는 결정적 장면이다. 동주와 몽규는 그 앞에서 각자의 이유로 어떤 선택에 이르게 되고, 그걸 보여주는 게 이 영화의 중요한 지점이기도 했다.

-윤동주라는 실존 인물이 있었고, 거기서 출발한 영화다. 촬영을 하면서 윤동주라는 인물에게 어느 정도 빠져들었을지 궁금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윤동주라는 인물에 빠진 건 아니다. 시대극을 만들 때는 사료를 통해서 상상을 한다. 그 상상이 시나리오로 구현된다. 감독은 그 시대의 공간을 설계하는 사람이다. 그건 공간을 채우는 공기를 만드는 것과 같은 작업이다. <황산벌>(2003) 찍을 때는 1300년 전의 과거, <사도> 때는 250년 전의 과거, <동주> 때는 70년 전 과거의 공기 속에 살고 있었다. 배우에게 자신이 맡은 실존했던 인물을 꿈에서라도 한번 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면, 감독인 나는 그 시대의 공기를 들이켜고 싶은 바람이 있다.

-지난해 최동훈 감독의 <암살>(2015)이 1200만 관객이 넘으며 흥행한 것은 물론, 박찬욱(<아가씨>), 김지운(<밀정>), 허진호(<덕혜옹주>) 감독 등도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영화를 연출하는 이례적 상황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시기를 다룬 시대극은 관객의 호응을 얻기 어려운 시도였다.

=실패 사례로는 내가 제작한 <아나키스트>(유영식 감독, 2000)가 대표적이었다. (웃음) <아나키스트>의 인물들이 가진 실패, 이루지 못한 꿈, 비관적이고 허무한 결론이 상업영화에서 받아들여지는 게 힘들더라. 윤종찬 감독의 <청연>(2005)의 실패를 비롯해 그 시대를 다룬 많은 영화들이 시장에서 호응을 얻지 못했다. 나는 1995년 조철현 대표(타이거픽쳐스 전 대표)와 함께 <아나키스트>를 준비하면서, 자료를 100권 넘게 접했는데, 한국영화의 경우 드라마의 숨은 보물창고가 일제 강점기라고 생각했다. 실패했으니 잠시 미뤄뒀다가 <달마야 놀자>(2001) 제작 당시 또 한번 시도를 했다. 가미카제 자살특공대였던 11명의 조선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는데, 역시 시나리오의 한계에 부딪혔고 만들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수많은 실패가 시행착오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수정과 보안을 통해서 성과도 생길 수 있다. 제일 안 좋은 건 시도하지 않는 거다. <왕의 남자>(2005)가 흥행하기 이전 충무로에서 제작된 사극영화를 생각해봐라. 성공 사례가 거의 없었다. 한편이 되고 나면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최동훈 감독에게 고맙다. (웃음)

-<동주> 역시 상업적인 지점에서 볼 때 선뜻 기획하기 힘든 소재다. 시대극을 저예산 제작방식으로 가져간 건 일종의 역발상이었다.

=상업영화로 접근했다면 상업적 성공이 불가능한 작품이라고 판단했다. 상업영화로 가려면 제작비만 족히 100억원 이상 필요하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경성, 용정, 교토, 교도소를 모두 세트로 제작해야 한다. <암살>처럼 스펙터클한 액션 장면이 있는 영화도 아닌데, 그런 예산은 감당이 안 된다. 나는 감독 이전에 제작, 배급, 수입업자 출신이다 보니 사이즈에 대한 감이 확실하다. <동주>라는 영화를 만드는 데 ‘시대’를 배경으로 제작비를 산출하는 건 기획력이 없는 거다. 이건 어디까지나 동주와 몽규 두 인물의 심리, 관계를 따라가야 한다. 그래서 저예산 제작과 흑백 촬영을 선택한 것이다. 이 부분은 저예산 제작방식에 통달한 신연식 감독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초고를 ‘1억5천만원에 맞춰 써달라’고 했는데 얼마 후 연락이 왔다. ‘그건 도저히 안 될 것 같다’고 해서 지금의 5억원 규모가 된 거다. 스탭 모두 신연식 감독팀으로 꾸렸다. <사도> 때 스탭의 1/3인 30명 정도였다.

-흑백 화면이 시대상을 담고 영화적인 소재를 돋보이게 하는 효과로 작용하기도 했지만, 촬영의 질감이 좀더 풍성하지 못한 건 아쉬운 지점이다.

=저예산이다 보니 어느 정도 타협하고 가야 했다. 소니 NEX-7같이 저렴한 카메라가 B카메라였고 조명에도 많은 투자를 못했다. P&A 비용도 제작비 이상은 절대 안 가는 게 원칙이었다. 흔한 버스 광고도 안 했다. 초반 반응이 괜찮더라도 비용을 더 쓰지 않는다는 기준을 세웠다. 상대적으로 상업영화 감독이 저예산영화의 영역을 침범했다는 비난이 있을 수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이 영화에 스타 캐스팅 같은 말은 성립이 안 된다. 강하늘을 캐스팅했을 때만 해도, 그가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 드라마 <미생>(2014)을 찍기 전이었다. 알려진 대로 유아인이 출연시켜달라고 했는데, 내가 제작규모를 따져서 안 된다고 한 거였다.

-당신은 ‘사극’이라는 수식을 뗄 수 없는 감독이다. <동주>와 같이 시대극을 포함해 과거의 이야기와 동시대와의 접점을 고민하는 듯하다.

=나는 내가 과거에 특별히 집착한다고 보지 않는다. 계속, 지속적으로 만들 뿐이다. 현실적으로 기획적인 타이밍을 맞추는 계산도 없다. <왕의 남자>를 한다고 하니 다들 ‘언제 적 광대냐’고 했고, <사도>를 만들 때 ‘또 연산 이야기냐’는 지겹다는 반응부터 나왔다. 소재 면에서 보면 진부한 소재만 고른다. 현실에 맞게 과거의 소재를 불러오는, 짱구를 못 굴리는 사람이다.

-‘은퇴 선언’ 이후 발표한 <소원>(2013)에서부터 영화가 한결 부드러워졌다고 해야 할까. 극화할 때보다 ‘개인’이 도드라진다는 느낌도 일견 받는다 . <동주>도 윤동주의 시선을 중심으로 한 ‘고운’ 톤이 바탕을 이룬다.

=내가 지금 50대 후반인데, 6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내고 70년대 중•고등학교를 거쳐 80년대 대학을 나온 사람들은 집단주의를 떨칠 수가 없다. <평양성>(2010) 때까지 내가 만든 영화들을 보면 집단의 가치와 개인의 갈등을 표현하고자 했다. <왕의 남자>의 광대 이야기도 그렇고 <황산벌>도 그랬다. 그런데 <소원> 때부터 개인주의가 싹텄다. 집단에 대한 의식보다는 개인에 대한 가치에 더 집중하게 됐다. <사도>를 노론과 소론의 갈등이 아닌 부자간의 갈등으로 풀어낸 것이나, <동주>를 윤동주와 송몽규의 관계로 조명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난 20세기형 인간인데 21세기의 가치가 뒤늦게 찾아온 거다. 나에게 21세기형 유심 칩을 넣은 거지.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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