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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주의 TVIEW] 가장 큰 상실의 순간

<기억>

대기업의 구린 일을 마다하지 않는 처세와 능력의 조화로 대형 로펌의 에이스가 된 변호사 박태석(이성민)에게 알츠하이머가 찾아왔다. 태석은 오래전 이혼한 전 부인의 집으로 퇴근하는가 하면, 현재 가족과의 저녁약속 장소를 기억하지 못해 대로변에서 패닉에 빠지기도 한다. 김지우 작가와 박찬홍 감독의 전작들에서 감정표현을 절제하는 주인공을 위해 마련되었던 클로즈업이 tvN <기억>에선 벌컥 화내고 내키는 대로 고함치는 중년 남자를 향한다. 태석이 어떻게든 정신을 붙잡으려 연거푸 마른세수를 하거나 머리를 감싸쥔 뒷모습이 깊이 각인되는 한편, 속되기 짝이 없는 중년 남자가 현실에 차고 넘치는데 무슨 필요로 이렇게 다채로운 클로즈업을 봐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둑이 터진 듯 쏟아내는 감정에 휩쓸리는 순간이 있었다. 학교폭력에 휘말린 아들을 정신없이 찾아 헤매던 태석이 옥상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는 아이를 발견하고 품에 안은 때였다. 안도감이 북받쳐올라 눈물과 웃음으로 범벅된 얼굴로 태석은 말한다. “아빠가 정말 무서웠어. 우리 정우 잃어버릴까봐.”

세월호에 탔던 아이들이 구조되었더라면 저렇게 재회했을 거라 생각하니 부모가 자식을 안고 우는 심상한 장면에 덩달아 눈물이 터졌다. 15년 전 뺑소니 사고로 유치원생 아들이 죽고, 괴로운 기억을 억누르며 살아왔던 태석에게 알츠하이머로 자기 자신을 잃어가는 것보다 두려운 건 아이를 또 다시 잃는 것이다. 그리고 태석의 병은 해결하지 못하고 덮어둔 과거의 사건과 장소로 그의 정신을 되돌린다. 드라마 <기억>은 납득하지 못한 죽음들을 제대로 애도하지도 못하고 시간을 억지로 멈춘 이들이 되짚어가는 진실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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