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TView
[유선주의 TVIEW] <욱씨남정기> 싸울 줄 아는 본부장

드라마 속 매력적인 본부장을 꼽아보니 남자 얼굴만 떠오른다. 유독 여성 본부장이 없는 까닭이 뭘까? 평사원으로 출발해 올라갈 수 있는 실무의 꼭대기이자 위에서 떨어진 낙하산의 출발점이 겹치는 그 자리는 유리천장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많은 일이 ‘이번에 새로 오신 본부장님’에게서 출발하니 드라마에선 가장 역동적인 직책인 셈이다. 러블리 코스메틱에 새로 온 본부장 욱다정(이요원)은 황금화학에서 팀장 이상으로 승진할 기회를 빼앗기고, 실적을 가로채는 이사와 대립하다 중소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불의를 참지 않고 원칙을 따지는 성품은 욱하는 성격으로 평가되고, 출중한 업무 능력의 결과임에도 소파 승진이란 추문이 뒤따랐던 그녀의 이직은 “마누라가 나보다 못난 놈이랑 바람난 기분”이라거나 “자부심을 찾으려면 얼굴에 보톡스나 한방 맞을 일이지” 따위의 저열한 농담거리가 되기도 했다.

업계 관행과 직접적으로 싸우는 욱다정 때문에 하청 일감이 끊기자 러블리의 남정기 과장(윤상현)은 “감정 싸움은 안에서 끝내지 대체 러블리는 왜 온 거냐”고 하소연을 늘어놓기도 했다. 감정 싸움 취급을 당했으나 욱다정은 자신이 맞서 싸우는 상대를 단지 심성이 글러먹은 개인으로 축소하지 않고, 업계의 관행을 대표하는 얼굴로 대한다. 이해관계로 얽힌 유동적인 갑을 관계와 만연한 성차별을 사적인 응징이나 일회적인 시정으로 맞서 통쾌함을 끌어내는 데 한계를 아는 JTBC 드라마 <욱씨남정기>는 욱다정을 통해 문제가 어디서 기인하고 누가 방조하며 묵인하고 착취하는지, 갑이고 을이고 사정없이 모두 까고 관행을 뒤흔든다. 드라마 사상 가장 역동적인 본부장의 탄생이다.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