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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꿈은 극장에 있고, 경기장에는 현실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바르샤 드림스>

한달 전만 하더라도 FC바르셀로나가 올 시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왕좌에 앉는 건 기정사실처럼 보였다. 메시, 수아레스, 네이마르 삼각편대를 앞세워 39게임 무패 가도를 달리고 있었으니 그들의 독주를 막는 건 누구라도 불가능했다. 하지만 팀당 세 게임씩 남겨두고 있는 4월27일 현재, 바르셀로나의 우승 향방은 안갯속이다. 2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3위 레알마드리드가 턱밑까지 쫓아왔기 때문이다. 우승을 하건, 못하건 FC바르셀로나가 세계 최고의 축구 클럽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5월4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바르샤 드림스>를 보면 FC바르셀로나가 왜 세계 최고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축구 전문 매체 <풋볼리스트>에서 스페인 축구를 취재하고, 글을 쓰고 있는 한준 축구 전문 기자가 이 영화를 미리 보고 ‘클럽 그 이상의 클럽’인 FC바르셀로나에 대한 긴 글을 보내왔다.

지난해 2월, 스페인으로 신혼여행을 갔다. 사실 아내는 원래 축구에 큰 관심이 없었다. 축구 기자와 만나다 보니 메시와 호날두를 알게 됐을 뿐이다. 여행 중에 레알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의 경기를 봤다. 난 아내에게 펠레와 마라도나처럼 후대에 영원히 기억될 선수들의 경기를 눈앞에서 보는 경험을 선물하고 싶었다. 하지만 인생이란 게 계획대로 풀리는 법이 없다. 레알의 호날두는 몸이 무거웠다. 그나마 바르샤는 골 잔치를 벌였다. 메시와 네이마르, 수아레스가 멋진 골을 차례로 터뜨렸다. 애석하게도 강행군에 가까운 여행 일정 탓에 아내는 몸이 별로 좋지 않아 경기에 집중하지 못했다. 꿈은 꿈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아내는 그날 경기를 본 기억이 꿈처럼 흐릿하다고 했다. 사실 그렇다. TV 화면으로만 보던 경기를 ‘직관’ 하면 처음엔 몽롱하다. 여러 번 경기장을 찾아야 ‘K리그’처럼 익숙해진다. 꿈은 내 곁에 가까워져야 일상이 되고 현실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FC바르셀로나라는 축구팀은 아직 ‘꿈’이다. FC바르셀로나 같은 축구팀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

승리의 패러다임을 구축하다

5월 개봉하는 <바르샤 드림스>를 홍보하는 사람들에게 4월은 잔인했을 것이다. 2015/2016 시즌 공식 39경기 연속 무패를 달리던 FC바르셀로나가 4월 들어 네 차례나 패배했다. 레알마드리드와 엘클라시코에 패한 것을 시작으로 와르르 무너졌다. 현실에서는 공든 탑이 꽤 쉽게 무너지는 광경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FC바르셀로나는 4월에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 탈락했고, 스페인 리그 우승도 불안해졌다.

몇 경기에서 승리하지 못했다고 FC바르셀로나의 꿈이 퇴색하는 것은 아니다. 팀의 최전성기를 이끈 호셉 과르디올라 감독은 4월 들어 찾아온 친정 팀의 위기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앞으로 몇 경기를 더 지더라도 상관없다. FC바르셀로나는 여전히 특별한 축구를 하고 있고, 어떤 팀도 그와 같은 축구를 하지 못한다. 우승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FC바르셀로나가 스페인 최고의 팀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믿을 수 없는 축구를 보여주는 팀이다.” 축구에 관심이 없는 이들이라면 <바르샤 드림스>의 ‘바르샤’보다 ‘드림스’에 주목해 영화를 본다면 얻는 것이 있을 것이다. 영화를 보면 여러 번 직접 귀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인데, 이 팀의 애칭은 ‘바르샤’보다 ‘바르사’로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다. 그 점을 제외하면 본편 제목이자 한국어판 제목인 ‘바르샤 드림스’는 적절하다. 바르샤를 통해 ‘꿈’을 이야기하는 영화이니 말이다. 지금 언론이 조명하는 바르샤의 중심에는 남미에서 온 3명의 공격수가 있다. 아르헨티나의 메시, 브라질의 네이마르, 우루과이의 수아레스. 일명 MSN 트리오로 불리는 이들은 바르샤가 무자비한 골 세례를 퍼부으며 승리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하지만 축구를 조금 더 열심히 본 사람이라면 이 세 선수에게 안정적으로 공을 공급하는 선수들의 역할을 인지할 것이다. 나아가 이들이 왜 바르샤에서 뛰는 것을 택했는지 알기 위해선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 스토리가 없는 트로피는 공허하다. <바르샤 드림스>는 MSN 트리오의 성공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매 주말 바르샤의 얼굴이 되는 MSN 트리오가 중계방송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바르샤 드림스>는 굳이 이들을 스토리의 중심으로 삼지 않는다. 이들이 뛰는 바르샤를 왜 주목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바르샤가 들어올린 트로피가 그들이 말하는 꿈의 결정체는 아니다. 바르샤만큼 성공적인 역사를 만든 팀은 이웃 국가에도 있다. 우승컵을 들어 올린 횟수로 따진다면 라이벌 레알마드리드가 더 화려하다. <바르샤 드림스>가 알리고자 하는 것은 그보다 더 특별한 꿈이다.

오프닝 타이틀 이후 영화의 전면에 나서는 3명의 선수는 현재의 주역인 MSN 트리오가 아니라, 바르샤의 ‘라마시아’(농장이라는 뜻의 스페인어. 바르샤 유소년 선수 합숙소에 붙은 별명으로, 바르샤 유소년 시스템 전체를 대표하는 말로 쓰인다)에서 자라 세계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은 리오넬 메시,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사비 에르난데스다. 170cm 남짓한 신장의 세 선수는 축구기술의 정점을 보여주며, 공을 가장 잘 다루는 선수가 축구를 지배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바르샤는 축구가 기능보다 지능이 더 중요한 스포츠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바르샤는 ‘어떻게 이길 것인가’라는 문제를 더 중시한 팀이다. 바르샤가 키운 선수들은 타고난 신체 조건보다 공을 다루는 기술과 판단력이 승리를 가져다준다는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이들의 등장으로 큰 체구에 육상선수처럼 발이 빠른 선수들을 주축으로 기계적 조직력과 단단한 수비를 통해 승리를 추구해온 현실주의자와 실용주의자들의 시대가 끝났다.

‘클럽 이상의 클럽’이 된다는 것

바르샤가 남다른 가치를 대표하는 배경에는 구단의 소유 구조가 있다. ‘소시오’(socio)로 불리는 유료 회원들이 구단 회장을 선출하는 투표권을 갖고 있다.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는 바르샤는 막대한 부를 창출하는 프로 축구팀이지만, 특정 사업가나 기업의 ‘자본’에 운영권이 휘둘리는 팀이 아니다. 소시오 제도가 정착된 스페인에서도 현재까지 이 제도를 유지하는 팀은 네팀뿐이다. 바르샤는 꿈에서나 가능할 법한 일을 현실로 만들었다. 민주적인 절차로 구단 집행부를 선출하는 제도로 운영되며, 자체적으로 육성한 선수를 중심으로 팀을 꾸린다. 동시에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뛰고 싶어 하는 팀이다. 연고지의 민족문화 정체성을 대변하며, 매력적인 축구로 승리한다. 바르샤는 그라운드 안에서나 밖에서 전세계가 지향점으로 삼는 팀이다. 축구계에서 ‘꿈’과 동의어가 될 수 있는 팀이다. 실제로 1992년 처음으로 유럽 챔피언에 등극하던 시절 ‘드림팀’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바르샤를 ‘스페인팀’이라고 표현하는 데 거부감이 들 수 있다. 바르샤 팬들은 국왕컵(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서 스페인 국가가 연주되면 야유를 퍼붓는다. 바르셀로나가 속한 스페인 카탈루냐주에는 지금도 자신들만의 나라를 갖기 위한 독립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바르샤가 특별해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자기 나라를 갖지 못한 민족을 대표하는 팀이라는 점이다. 캄노우 경기장에 새겨진 바르샤의 모토, ‘클럽 이상의 클럽’(Més que un club)은 바르샤가 카탈루냐 민족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출발했다.

바르샤는 카탈루냐 민족정신을 대표하는 팀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구단을 만들고 성장시키고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한 이들은 외국인이었다. 창립자인 조안 감페르는 스위스 출신이고, 클럽을 인기 팀으로 만든 주역은 헝가리에서 온 라디슬라오 쿠발라다. 경기 철학을 확립한 인물은 요한 크라위프(네덜란드)고, 이 팀을 국제적인 인기 팀으로 만든 스타는 호나우지뉴(브라질)와 메시(아르헨티나)다. 이들이 가진 또 하나의 공통점은 모두 꿈을 현실로 만드는 데 앞장선 적극적인 이상주의자라는 점이다.

클럽 창립자 감페르는 본래 순수한 아마추어 축구팀으로 바르샤를 만들었다. 자신이 주장 완장을 차고 뛰는 축구팀을 만든 것이 시초다. 큰 인기를 누린 바르샤가 프로팀이 되자 회장으로서 팀을 이끌었다. 영화는 그를 “고대 그리스 문화와 스포츠를 통해 육체적, 정신적 인내력을 시험하고자 한 이상주의자”라고 소개한다. 그는 축구 경기가 승리를 위한 경쟁에 매몰되기보다 산업화와 함께 삭막해진 현대사회에서 우정과 존중의 가치를 배울 매개가 되기를 꿈꿨다. 바르샤는 승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팀이 아니다. 승리함으로써 자신들의 가치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고자 한다. 그 점에서 바르샤는 감페르의 철학을 지금까지도 잘 지켜내고 있다.

스페인 내전 이후 바르샤의 부흥기를 이끈 첫 번째 스타는 헝가리에서 망명한 쿠발라다. 영화는 쿠발라가 “사람들이 전에 보지 못한 것을 보여줬다”고 소개한다. 1950년 입단한 쿠발라는 이전에 보지 못한 화려한 축구 기술로 바르샤의 우승 행진을 이끌었다. 쿠발라는 바르샤를 최고의 기술을 꿈꾸는 팀으로 만들었다. 쿠발라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바르샤 경기장은 ‘쿠발라 경기장’으로 불리기도 했다. 바르샤는 늘어나는 관중을 맞이하기 위해 1957년 캄노우 경기장 건립했다. 이후 막대한 건설비로 진 빚 때문에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선수 수급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이 시기에 레알마드리드는 전성시대를 맞았다. 바르샤는 무관의 세월을 견뎌야 했다. 바르샤가 세계 최고 팀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불구대천의 원수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이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선수와 감독들이 인정한다. 레알마드리드다.

스페인과 별개의 문화와 언어를 가진 카탈루냐는 스페인 내전 당시 극우 세력의 군부독재에 강하게 저항했다. 바르샤도 그 정신을 계승했다. 독재 정권에 항거하는 과정에서 감페르는 정치적 공격을 받은 뒤 자살했으며, 그 뒤를 이었던 회장 호셉 수뇰은 군부 인사에 의해 암살됐다. 바르셀로나에 가면 ‘카탈루냐는 스페인이 아니다’라는 구호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바르샤 드림스>를 통해 수도를 연고로 하는 팀 레알마드리드에 대한 적대감이 어디서 기인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내전 당시 바르샤 팬들은 스페인 국가가 울리면 야유를 퍼붓거나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그때는 바르샤 축구 경기장이 폐쇄됐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세상이 왔다. 축구장 안에서 지킨 가치가 민족을 지켰다.

자신이 뛴 첫 엘클라시코에서 5:0으로 승리를 이끌며 14년 만에 스페인 리그 우승을 이끈 요한 크라위프는 카탈루냐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자유롭게 해줬다. 경기장 안뿐 아니라 경기장 밖에서도 개방적 가치관을 드러내며 바르샤를 현대적이고 역동적이며 창조적인 조직으로 만들어놓았다. 그가 구현한 축구는 카탈루냐 사람들의 의식까지 바꿔놓았을 정도다.

네덜란드에서 ‘토털 사커’의 시대를 연 크라위프는 단지 승리만 가져다준 것이 아니라 승리하는 법을 가져왔다. 크라위프는 바르샤의 선수뿐 아니라 감독으로도 황금기를 이끌며 현재 ‘티키타카’로 발전한 패스 중심의 공격적인 경기 운영 방식을 정착시켰다. 꾸준히 바르샤 철학을 몸에 새긴 선수를 배출하는 라마시아 설립과 운영 철학을 확립한 이가 크라위프다.

크라위프는 선수로서나 감독으로서나 위대했지만, 바르샤를 절대 무적의 팀으로 만든 주역은 그의 수제자로 꼽히는 과르디올라와 메시다. <바르샤 드림스>가 제작된 배경에는 2008년부터 2012년 사이 14개의 우승컵을 쓸어 담으며 축구 역사상 최고 팀으로 불린 과르디올라와 메시의 팀이 거둔 성공이 있다. 크라위프가 1군 선수로 발탁한 과르디올라는 크라위프의 철학을 경기장에서 완벽하게 구현했다. 메시는 바르샤의 철학이 승리할 수 있도록 마법을 부렸다. “우리는 멈추지 않고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재미있는 여행이 될 겁니다. 모두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십시오!” 과르디올라는 자신 있게 외쳤고, 역사상 가장 완벽한 축구를 선보였다.

당연한 우승은 없다

사람들은 종종 힘겹게 이룬 것에 대해 무감각해진다. 바르샤는 꿈을 이룬 팀이지만, 그들이 사는 곳은 꿈이 아닌 현실이다. 120년간 꿈을 심어준 팀도 질 때마다 비판받는다. 영화에 출연한 사비 에르난데스는 “사람들은 우승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바르샤 드림스>를 보는 동안, 사람들은 잠시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극장을 빠져나와 패배를 목격하게 되면 다시 실망과 분노를 쏟아낼 것이다. 꿈은 극장에 있고, 경기장에는 현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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