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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 도서 <천사들의 탐정>
문동명 글·사진 백종헌 2016-05-17

<천사들의 탐정> 하라 료 지음 / 권일영 옮김 / 비채 펴냄

<천사들의 탐정>(1990)은 하드보일드 소설가 하라 료의 유일한 단편집이다. 이 소설집 역시 첫 소설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1988)부터 줄곧 작가가 페르소나로 삼아온 사립탐정 사와자키가 주인공이다. 한때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사와자키는 전 주인의 이름을 고스란히 남긴 와타나베 탐정 사무소를 운영하는 중년의 탐정이다. 탐정의 전형이라 일컬어지는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스나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와 영 딴판인 그는 하라 료의 독보적인 스타일로 그려져 나름의 존재감을 떨치며 일본을 대표하는 마초 캐릭터로 자리매김했다.

“현실의 냉혹하고 비정한 일을 감상에 빠지지 않고 간결한 문체로 묘사하는” 것이 하드보일드의 정체라면 <천사들의 탐정>은 어쩌면 하드보일드와 거리가 먼 여섯(혹은 일곱) 가지 이야기로만 채워졌다 할 만하다. 제목의 ‘천사들’은 저마다 다른 곤경에 처해 있는 10대 아이들을 뜻한다. 엄마를 살리고 싶은 소년, 섹스 중독의 아버지를 미행하는 여고생, 잘못 걸린 전화에 다짜고짜 자살할 거라고 선언하는 아이돌 등 상황도 제각각. 사와자키는 늘 그래왔던 대로 조용히 사건을 지켜보다 비상한 추리를 발휘해 끝내 해결하고, 그 사건에 놓인 아이들을 ‘마음으로’ 끌어안는다. 물론 사와자키와 아이들의 우정이 절절 끓는 드라마로 그려지는 건 아니다. 표지의 빗방울이 떨어진 잿빛 도시처럼, 건조함과 촉촉함이 아슬아슬하게 공존하는 양상을 유지할 따름이다. 다만 그 따뜻한 마음만큼은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닿는다.

부록으로 놓인 10페이지짜리 초단편 <탐정을 지망하는 남자>는 본문의 여섯 이야기만큼이나 인상적이다. 사와자키가 어떻게 탐정이 되었는지 그린 이 소설은 <천사들의 탐정>을 정리하는 한편, 또 다른 사와자키 시리즈 <내가 죽인 소녀>(1989), <안녕, 긴 잠이여>(1995) 등에 깊이 빠질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하라 료는 이 작품으로 일본모험소설협회대상 최우수단편상을 받았다.

처음 본 니시오 부인은 열 군데가 넘는 카페를 주무르는 여성답게 평범한 가정주부에게는 볼 수 없는 세련미가 풍겼다. 갸름한 얼굴에 코가 오뚝한 미인이라 입고 있는 전통 상복이 잘 어울렸다. 원래 상복이란 그런 법이다. 가족 가운데 누군가를 잃고 상복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은 뭔가 이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왠지 니시오 부인의 아름다움은 남자들을 감탄하게는 만들어도 정신이 팔리게는 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130쪽)

나하고 비슷한 연배에 잘생긴 남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옛날 파트너인 와타나베가 성인이 돼서 양자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팔십 퍼센트가 잘생긴 남자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양자의 첫째 조건은 능력이나 인격, 건강한 신체가 아니라 외모라고 한다. 그런데 그 이유가 사회통념과는 달리 인간은 외모가 뛰어난 사람에게 오히려 우월감을 품기 때문이라고 했다. 특히 외모만 뛰어난 사람에게.(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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