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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성가
2002-03-27

신현준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다음번에 이 지면에 글을 쓸 때쯤이면 이삿짐을 꾸리고 있을 것이다. 이사라면 반평생 동안 이가 갈리도록 다녔지만 ‘내집’으로 이사하는 것은 처음이다. 따지고 보면 자수성가다. 집 한채, 방 한칸 없는 사람이 수두룩한데 이런 말 하기가 멋쩍고 쑥스럽고 때론 죄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불알 두쪽으로 결혼해서 산동네 연립주택 13평 반지하에서 시작해서 둘이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장만한 집이니, 마음 한구석에 감도는 뿌듯한 심정까지 감출 수는 없다. 속물이라고 해도 별 수 없다.

그렇지만 기분이 째질 정도로 좋은 건 아니다. 서울특별시도 아니고 ‘신도시’라는 이름의 위성도시들, 그중에서도 중하위권에 속하는 곳, 그중에서도 변두리에 위치한 조그만 아파트 한채에 지나지 않는다(신도시 내에서도 ‘계급’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이회창 ‘빌라 게이트’를 씹으려는구만…”이라고 짐작하는 독자가 있을 것 같은데,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건 줄이겠다. 이글을 쓰는 와중에 진중권이 <한겨레>에 비슷한 글을 써버려서 김새기도 했고….

사실 내가 집을 소유하리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서른이 넘은 뒤에도 ‘얼터너티브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겠다느니 어쩌니 하면서 객기를 부렸고, 그런 삶은 ‘집’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마누라 잘 얻어서 결혼하자마자 아파트 한채를 꿰차거나, 취직한 뒤 잔머리 굴려서 부동산에 재테크를 하는 옛 ‘동지’들을 보면 “그렇게 사느니 뒈져버리겠다, 이 속물들아”라고 속으로 씨부렁거리기도 했다. 대안적 생활양식에 대한 나의 정의는 그저 ‘직장에 취직하지 않고 주식과 부동산을 갖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런데 갑자기 웬 집? 그건 올해 아파트값이 폭등한 데다가 전세가가 매매가의 80%를 넘는 기현상 때문이었다. 이상하게도 예전에 전세금을 융자받을 때 2천만원과 1천만원은 어마어마한 차이로 보였는데, 이번에 주택구입자금을 융자받을 때 8천만원과 5천만원은 별로 큰 차이로 생각되지 않았다. ‘2천만원은 1천만원의 두배나 되는 반면, 8천만원은 5천만원의 1.6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산수법 때문이었다. 그게 중대한 착각이라는 사실은 일을 저지른 다음에야 깨달았다.

그래서 이사를 앞둔 지금 심난하기 그지없다. 내가 그돈을 다 갚을 수 있을까. 설령 허리 휘면서 빚을 다 갚는다고 해도 그때는 이미 50줄에 가까워진 상황일 것이다. 겨우 그제서야 자유? 하지만 눈도 침침해지고 귀도 어두워진 그때 가서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을까? 그 무렵에는 아이가 대학교에 입학할 텐데 그때 등록금이 얼마일지는 상상하기도 싫다. 부모가 갑자기 아프기라도 하면 이런 소박한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것이다. 그 흔한 외국여행은 고사하고 DVD플레이어와 MP3디스크맨조차 군침만 삼키는 상황이 그때까지 지속될 것을 생각하니 갑자기 숨이 막혀온다. 이렇게 매여 사는데 대안적 라이프스타일이란 배부른 이야기일 뿐이다.

‘다들 그러고 산다’고 말할 사람이 꽤 있을 것 같다. 하긴 한국 남자들 대부분 ‘이짓 하면서 살기 싫지만, 이짓이라도 하지 않으면 먹고 살기 힘들다’고 생각하면서 사는 것 같다. ‘다들 그러고 사는 사람들’에 속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상황에서 ‘다들’에 속하지 않으려는 시도 자체가 무모해보인다. 게다가 내 경우 이짓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고, 퇴직금도 연금도 없어서 노후가 불안하기만 하다. 그러고보면 한국의 문화가 이 모양 이 꼴인 데는 직장제도, 교육제도와 더불어 주택제도도 한몫 하는 것 같다. 현대문화란 것이 ‘여가의 심미화’일진대, 한평생 집문제로 시달리면서 어떻게 여가가 심미화되기를 바라겠는가.

그래서 이번 대선에서 노무현을 지지하기로 했다. 정치라면 신물이 나서 ‘사육신처럼 되지 못한 바에야 생육신처럼 살겠다’고 마음먹은 지 오래되었고, 내 취향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 그를 지지하는 사실도 마음에 걸리지만 그래도 그러기로 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언젠가 TV에 나온 그의 집이 내가 사는 집과 그리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시를 패스한 다음 고위직을 두루 거치면서 거대한 집에 살고 있는 이회창이나 이인제에 비하면 그가 ‘대안적’이니까. 달리 말해 밑바닥부터 고생하면서 ‘자수성가’한 사람이니까. 그래서 이번 선거날에는 놀러 가지 않고 투표장에 가서 ‘이회창’을 찍을 것이다. 아, 오해하지 말도록. 이건 초등학교 반장선거를 포함해서 이제까지 내가 참여한 모든 선거에서 내가 찍은 후보가 한번도 당선된 적이 없었다는 징크스 때문에 하는 말이다. ‘저주의 한표’라는 이야기다. 신현준/ 경제학 박사, http://homey.w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