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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여, 다시 한번, <사랑의 행로>
2002-03-27

1990년, 유학간 지 2년이 되던 해 베를린의 겨울은 혹독하게 추웠고 나는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참담하게 메말라 있었다. 집안의 반대나 나 스스로의 망설임은 차치하고서라도 어렵게 도달한 그때까지의 시간들이 조금씩 조금씩 마치 욕실벽면의 타일조각이 떨어져 나가듯 무너져내리고 있던 때였다. 음악 한다는 일이 너무도 힘겹게 느껴졌고 더불어 공부마저 유급위기를 가까스로 넘기며 절망적으로 진행중이다 보니 장래는커녕 그냥 그때까지의 시간들이 ‘중도포기’라는 절대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던 시기였던 게다.

베를린의 중심가에는 베를린영화제로도 유명한 조 팔라스트 극장이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며 서 있고 그 외에도 국내의 멀티플렉스 영화관 못지않은 시설을 자랑하는 호화영화관들이 즐비했다. 우스운 사실은 그곳의 입장료는 다른 곳에 위치한 극장들에 비해 비싸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가난하기로 유명한 독일의 대학생들은 중심가가 아닌 변두리 영화관을 이용하기 마련인데 밥은 굶어도 책은 못 사도 보고 싶은 영화만은 기어코 보고야마는 나 역시도 변두리 극장의 애용자였던 것은 당연지사….

우울했던 시절, 음악에 대한 꿈도 희망도 모조리 접자고 결심했던 그 시절, 그래도 가끔씩이나마 위안이 되었던 것은 영화였고 또한 죽고 못살게 좋아하던 배우들이었다. 90년 겨울 어느 날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극장에 미셸 파이퍼의 얼굴이 담긴 포스터 한장이 나붙었다. 아! 미셸 파이퍼가 누구던가! 고등학교 때 보았던 <레이디 호크>의 여주인공이자, 소위 삐짜비디오로 훔쳐보았던 <그리스2>의 가녀린 여인이 아니던가! 게다가 그녀는 <스카페이스>에서 알 파치노의 섬뜩한 마음을 설레게 했던 정부였고 내게는 뒤늦게 찾아온 아이돌 스타였다.

원어 그대로의 직역이라면 <전설적인 베이커 형제들>인 이 영화에 그녀가 웬일일까 하는 기분으로 내 세끼 식사분의 입장료를 지불하고(독일학생식당은 저렴하기로 유명하다. 물론 그나마도 내게는 부담이었지만…) 들어선 극장에서 황감하게도 그녀는 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주었고 눈부신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전혀 사전 정보없이 보았던 그 영화는 음악인을 소재로 한 영화였고, 게다가 영화 속 베이커 형제들은 보잘 것없는 살롱 피아니스트들로서 하루하루 꿈도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몰락해가는 음악인의 삶을 대변하고 있었다. 실제 형제인 제프 브리지스와 보 브리지스가 연기한 형제 피아니스트는 각기 다른 이유에서 음악을 하지만 한 무대에서 십수년을 함께 공연한 뮤지션이며 몇년째 마땅히 설자리가 없어 고심하던 끝에 여성 보컬리스트 영입을 꾀하고 그마저도 쉽지 않다. 그러다가 결코 절박하달 수 없는 여성 보컬리스트를 고르게 되고 그들은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해 나가지만 결국 세명으로 이루어진 팀은 역시 각기 다른 이유로 다시금 파경을 맞이한다는 굴곡 없는 내용의 영화.

하나도 슬프지 않은 영화를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상상해 보았는가. 영화 중반을 넘기면서 미셸 파이퍼의 노래가 흐르던 때를 제외하고는 적어도 내게 있어 이 영화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미워도 다시 한 번>이요, 다시금 꿈으로의 회귀를 부추기는 <E.T>였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입장에서의 음악, 들려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음악, 그러면서도 가슴속에 사무치는 것은 음악이 아닌 내가 한 사람의 가족구성원이자 생명이라는 사실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음악을 접자던 내 결심이 다시 펼치자는 쪽으로 변해 있었고 영화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그다지 비범하달 수 없는 그 한편의 영화는 이미 내 인생 한가운데 깊숙한 곳에 위치하며 10년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게 성경의 잠언으로써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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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재권/ <킬러들의 수다> <피도 눈물도 없이> 영화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