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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인터뷰] 가족 안에서 사랑이 계승되는 이야기 - <계춘할망> 창감독

극장 안 여기저기 훌쩍이는 소리, 영화가 끝난 후 화장실에서 눈가가 붉은 관객을 만나는 경험치로 볼 때, 할머니의 내리사랑을 그린 <계춘할망>은 잔잔하지만 분명 파급력을 기대할 만한 영화였다. 하지만 하나의 현상이 된 <곡성> 관람의 열기 속에서 <계춘할망>은 흥행에서 속수무책 비켜나 있는 듯 보였다. 잔잔한 드라마, 투톱 여배우가 약점이 되었을까? 페이스북에서 극장 상황의 아쉬움을 토로하는 감독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창감독은 “배우들에게 미안하다. 윤여정, 김고은 두 배우에게 흥행 성과를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며 얼얼했던 지난 한주에 대한 생각으로 말문을 열었다. 창감독은, 자신의 이야기에서 출발해 스스로 끝까지 고집한 캐스팅과 촬영 중 불협화음 등을 겪으며 완성한 <계춘할망>이 이전 작품인 <고死: 피의 중간고사>(2008, 이하 <고사>)와 <표적>(2014)보다 애착이 많이 가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개봉 1주차인데, 20만 관객이 좀 넘었다. 흥행이 생각보다 안 되고 있다. <고사>의 160만 관객이 기대치 않은 높은 성적이었고, <표적>도 흥행과 칸국제영화제 초청 등으로 화제를 모았다. 두 작품 모두 연달아 흥행한 터라 지금의 성적을 받아들이기 더 힘들겠다.

=<고사>는 예상외로 흥행이 잘됐고, <표적>은 1주차보다 2주차가 더 잘되는, 소위 말해 ‘개싸라기 흥행’이었다. 이번 영화는 영화적으로 가장 자신있었고, 관객이 찾아줄 거라는 느낌도 있었다. 그러나 막상 흥행이 생각보다 안 좋다. 첫주인데 극장에서 많이 내려졌다. 평일 퇴근시간대에 빠지고, 주말에 확 줄고. 왜 우리 영화를 내리지, 스타트가 좋았던 영화인데, 이런 원망이 들더라. 솔직히 말해서 충격받았는데, 지금은 그런 마음을 내려놓았다. 어제 집사람과 술잔을 기울이는데 이런 말을 해주더라. 댓글을 다 읽어봤는데 사람들 평이 좋더라, 감독으로도 한 걸음 더 나아간 것 같더라라고, 세편째 만들지만 이번 영화 하면서 유독 많이 들은 이야기가 이런 영화를 만들어줘서 감사하다는 말이었다. 지인들도 그렇고, 페이스북 채팅, 또 지인이 자신의 아버지의 평이라며 카톡을 캡처해서 보내주기도 했다. <애자>를 연출한 정기훈 감독(이 영화의 공동 제작자 임건중 대표가 <애자>를 제작하기도 했다)이 평점 보고 ‘평론가 점수 6점 넘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잘한 거야’라고 하더라. 정말 큰 위안이 되더라.

-드라마라는 장르, 투톱 여배우라는 상업적 취약점이 다분히 존재하는 영화였다. 기획 단계부터 이런 위험을 예상하지는 않았나.

=그렇지는 않더라. 의외로 투자하겠다는 사람이 많았다. (웃음) 개인적 이야기가 많이 들어가 있는 영화라 처음엔 작은 규모로 가려고 했다. 사실 <표적> 끝나고 시나리오가 어마어마하게 많이 들어왔다. 거대 예산으로 당장 착수할 수 있는 갱스터물 제안도 왔는데, 그건 끝까지 고민하다 거절했다. <계춘할망>을 해야겠다 생각했다. 더 늦어지면 내 순수함이 오염되겠더라. 지금이 아니면 평생 못 만들겠다는 마음이 컸다. 내가 처음으로 기획까지 하고 태동시키는 영화니까 욕심내지 말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영화계에 들어오는 게 워낙 힘드니 무조건 들어오자는 생각이 컸던 탓에 떠밀려서 들어온 게 없잖아 있었다. <고사>도 떠밀려 들어와서 짜내고 짜낸 거였고. 그런데 이번 작품은 기획부터 개입한 영화라 내 연출 색깔을 잘 보여줘야겠다 생각했다. 아주 대규모도 아니었고, 30억원대 영화니 그 안에서 내 색깔을 가져가보려 했다.

-영화는 할머니와 손녀의 이야기인데, 본인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어떻게 연결되나.

=내가 4남3녀 중 막내다. 큰형이랑 20살 이상 차이가 나서 형이 아빠 같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전라도 산골 출신인데 어머니가 영화 속 계춘할망처럼 고사리, 취나물을 캐서 팔면서 나를 키웠다. 어머니가 고사리 파는 데 따라가서 옆에서 소리 지르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중학생 땐 어머니가 좌판에서 일하는 게 너무 싫더라. 어머니를 보면 도망가고, 어머니라고 이야기도 안 하고 그랬다. 그러던 어머니가 5년 전에 치매로 돌아가셨다.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남겨야겠구나 싶었다. 그러던 중에 내가 가르치던 제자 하나가 <계춘할망> 트리트먼트를 써서 왔더라. 설정은 지금과 다른데, 그 제목이 가슴 아려서 밤잠을 못 자겠더라.

-반전 코드나 스토리라인이 그다지 새롭지 않은 반면, 감정을 과도하게 밀어붙이지 않는 완급 조절이 돋보인다.

=으레 하듯 그렇게 밀어붙이면 오히려 차별성이 떨어진다고 봤다. 관객이 ‘또 이런 거야’라고 하겠더라. 작품에 관객이 편안하게 다가가는 게 무엇일까 많이 고민했다. 초고는 조미료가 훨씬 덜한 영화였는데, 너무 슴슴하거나 건강식으로만 만들 수는 없는 거니까. 대중적인 영화로 가치를 주기 위해 극적인 요소도 필요했다. 그래서 지금의 반전 요소를 넣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절제해야 한다는 생각은 가져갔다.

-감독이 끝까지 고수하고자 한 장면도 있었을 것 같은데, 그 조율도 관건이었겠다.

=사실 이번 작품은 한 장면 한 장면 애써서 만들었기 때문에 진행 도중 제작과 연출 사이에서 이견이 있기도 했다. 크랭크인 전에 이걸 끝까지 해야 하나 흔들리기도 했는데, 윤여정 선생님이 내 얼굴을 보고 바로 그 고민을 아시더라. 투자, 제작사와 갈등이 있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그냥 다 찍어. 이 영화에 투자한다는 건 엄청난 용기야. 자본을 믿어. 다 내려놔. 그렇다고 창감독 영화가 아닌 게 아니야. 다 찍고 편집 때 창감독이 원하는 대로 해. 내가 뭐든 다 찍을게” 하셨다. 어른의 가르침이었다. 진짜 우리 어머니처럼 이야기해주시더라. “내일부터 심기일전해서 찍겠습니다” 했다. 그때 다짐한 게 있다. 이건 연출이 잘 보이지 않는 영화여야겠구나. 배우가 잘 보이면 연출도 보이겠구나. 배우들이 잘 놀게 해주어야겠다. 그들이 잘 해석하는 게 이 영화의 생명이라는 마음이었다. 현장에서 원래 시연을 많이 하는 편인데, 이번엔 동선 정도만 디렉팅하고 나머지는 대화를 많이 하면서 연출했다.

-<표적> 때 송 반장을 연기한 유준상의 악역 캐스팅도 그랬지만, 이번 캐스팅 역시 의외였다. 윤여정이라는 배우가 지닌 도회적 이미지를 과감하게 덜어낸 극단적 선택이랄까.

=윤여정, 김고은 배우가 안 되면 이 영화를 엎으려고 했다. 무기한 연장하든지 애초 가졌던 마음처럼 작게 가려 했다. 김고은(혜지)을 빼놓고, 다른 배역들은 평소 이미지와 달리 의외의 캐스팅이었다. <표적> 때 유준상 선배도 그랬듯이 나 스스로 의외의 캐스팅을 즐긴다. 배우들이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이미지가 있는데 난 그게 재미없고 싫다. 처음에 임건중 형(제작자)이 물어보더라. 누굴 염두에 두고 있냐고. 그때 “윤여정 선생님이죠, 당연히” 했다. 나는 윤여정이라는 배우의 도회적인 모습 뒤에 엄청난 모성이 존재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선생님의 사생활이 언론에 노출되기도 했는데, 본인의 자식들에게 실제로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두 배우의 케미스트리가 이 영화의 울림에 가장 중요한 요소다.

=혜지는 외모 면에서 진짜 같은 사람을 찾고 싶었다. 그렇게 살아온 아이 같은 느낌. 상업영화 영역 안에서 김고은이 가진 매력은 독보적이다. 너무 애정이 가니 타협이 안 되더라. 여자 투톱에 대한 걱정들이 많았으나 나문희, 심은경이 연기한 황동혁 감독의 <수상한 그녀>(2014) 성공사례를 보면서, 배우들이 역할에 맞는 옷을 잘 입으면 사람들이 호감 있게 볼 수 있다는 걸 느꼈다. 생각해야 할 지점도, 힘든 점도 많은 영화였는데 두 배우가 하겠다고 하면서 든든하게 갈 수 있었다.

-<계춘할망> 촬영 당시 제주도에서 촬영이 많았다. 동시에 근처에서 드라마 촬영도 하고 있었고, 제주도가 각광받고 있다. 그럼에도 트렌드하게 배경을 소비하지 않고 이야기에 잘 녹였다.

=영화적 상징성으로 제주도를 썼다. 제주도 하면 돌, 바람, 여자라는 말이 있는데. 거기서 여성, 우리의 어머니가 지니는 상징성이 있다. 사전 준비를 하면서 보니 제주도 해녀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너무 많더라. 물질의 위험을 감내하면서 자식을 키우고, 그러는 사이에 자식도 많이 잃는다. 그런 어머니의 상, 할머니의 상을 가져가고 싶었다, 장소를 앞세우지 않고 은은하게 배어나오게 하기 위해 관광지는 다 배제했다. 그래서 로케이션 장소를 찾는 게 정말 힘들었다. 제주도 날씨가 워낙 변덕이라 영화 찍기 힘들다고 하는데, 다행히 우리를 도와줬다. 윤여정 선생님이 그러더라. “감독이 착하긴 착한가보다. 날씨가 도와주고.”

-영화를 보면 혜지의 입장에서 할머니를 바라보게도 되고, 반대로 할머니의 입장이 돼보는 이들도 있을 테다. 아들이자 지금은 아버지이기도 한데, 영화에서 어떤 지점을 보여주고 싶었나.

=돌아가신 어머니와 9살짜리 내 아들 지유와 만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어머니는 돌아가셨으니 지유는 할머니 얼굴을 못 보고 자라는 거다. 할머니가 있었다면, 나보다 훨씬 큰 사랑을 줬을 거다. 그런 의미에서 <계춘할망>은 교육영화다. 최근 논문을 보니 한국 아이들의 자존감 수치가 형편없다더라. 원인은 부모들이 조건부 사랑을 해서다. 우리 어머니 세대는 일제강점기를 지나 한국전쟁을 겪고 보릿고개를 넘으며 삶의 역동기를 살아왔던 이들이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준다. 그들이 베푸는 사랑을 계승해야겠다 싶었다. 사실 우리 어머니가 그 할머니 같았다. 막둥이한테는 사고를 쳐도 야단 안 치시고 기다려주신다. 영화에서 할머니가 혜지한테 베푸는 그 인내심 같은 것이다. 가출팸(가출한 청소년들이 모여서 원룸이나 모텔 등을 빌려 함께 생활하는 집단) 아이들에 대한 취재도 많이 했는데, 모두 사랑에 굶주린 아이들이었다. 조금만 사랑으로 보듬어주면 엇나가지 않고 성장할 수 있겠더라.

-공포영화 <고사>에 이어 액션물인 <표적>을 할 때도 그랬지만, <계춘할망>을 선택한 건 의외였다. 작품의 선택이 대부분 예상치를 벗어난다.

=답변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한 작품만 했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싶다. 해오던 장르를 똑같이 하고, 그걸 했던 사람만 찾는다. 나도 액션영화 했더니 액션 시나리오만 엄청나게 들어오고 그쪽으로 유도하더라. 그럴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장르적 변주가 감독에게 나쁜 것이냐, 정체성이나 색깔이 없는 것이냐 했을 때, 나는 아닌 것 같다. 만듦새가 썩 좋지 않았지만 <고사> 때도 공포물 안에 지금의 교육 현실에서 오는 아버지의 들끓는 분노를 담고 싶었다. <표적>도 원래 원작과 가장 달랐던 점이 형제와 가족이라는 코드였다. 간접적인 가족을 형성하는 과정이 이야기에 담겨 있다. 그런 게 내가 해왔던 것이다. 스타일은 달라도 메시지는 일맥상통하는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 그런 차원에서 내가 못하는 장르도 있다. 코믹을 전면에 내세우는 영화나 온전한 호러영화는 자신이 없다. (웃음)

-<계춘할망> 찍고 나서 개봉 전에 한•중 합작영화 <치명도수: RESET>을 연출했다. 다른 환경에서 느낀 바가 없나? 그리고 차기작 계획은.

=<치명도수: RESET>은 성룡이 제작에 참여하고 양미, 곽건화가 출연한 SF영화다. 현재 대륙의 톱스타들인 양미와 곽건화와의 작업은 무척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언젠가 제대로 소개된다면 더 많은 얘기를 들려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카지노>라는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도박이 소재지만 인생 이야기에 가깝다. 케이퍼무비를 만들라고 했으면 안 했을 것이다. 최동훈 감독님처럼 잘할 자신도 없고. <타짜>나 <신의 한 수>처럼 캐릭터성이 강조되는 게 아니라 좀더 인간적인 면모가 부각되는 이야기다. 꾼들이 나오는 영화가 아니다. <계춘할망>은 2주차 성적도 봐야겠지만, 너무 후유증을 겪지 않고 또 다른 일을 열심히 하려고 한다. 내가 다짐한 게, 이 일을 하면서 가난하게 살지 말자다. 그래서 생활형 감독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치명도수: RESET>을 제외하면 감독으로서 어느덧 세 편의 장편을 내놓았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어떤가.

=고2 때부터 연기하겠다고 극단 생활을 하다가, 26살 때 <동양의 횃불 안중근>을 연출, 출연하면서 연출 세계를 알게 됐다. 촌놈이 영화한다고 아무것도 없이 서울에 와서 살다보니 정말 비참한 생활도 많이 했다. 영화 처음 할 때 현장에서 ‘니들은 수업료 내면서 다녀야 되는 거야’ 이런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방세는 내야 할 것 아닌가. 그래서 광고판으로 옮겼다. 감독이 왜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떤 의미에서는 좀 게으른 게 아닐까. 부지런하면 안 될 게 없다고 본다. 한달에 서너편씩 작업하는 뮤직비디오를 오래 만들어서 그런지 일을 여러 개 하는 데 부대낌이 없다. 이번에 가족들과 머리 식히러 제주도에 일주일 동안 다녀왔는데 그 정도 휴식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고귀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내겐 직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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