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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기획과 투자 모두 모험심이 필요하다” - <무서운 이야기3: 화성에서 온 소녀> 김곡, 김선, 백승빈 감독
이예지 사진 백종헌 2016-06-09

김곡, 백승빈, 김선 감독(왼쪽부터).

옴니버스 공포영화 <무서운 이야기>가 세 번째 시리즈로 돌아왔다. 한때 호러 장르는 한국영화의 여름 시장에서 신인의 등용문 내지는 실험의 장으로 특별한 의미를 지녀왔지만, 최근 몇년간 급격히 위축되어왔다. 이런 시장 환경 속에서도 다양한 단편들로 꿋꿋이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는 <무서운 이야기>의 뚝심은 인정할 만하다. 이번 시리즈의 각 브리지에 해당하는 에피소드는 민규동 감독이 만들고, 첫 시리즈에서 가장 빛났던 작품 <앰뷸런스>의 김곡, 김선 감독이 돌아와 각각 미래의 에피소드 <기계령>, 현재의 에피소드 <로드레이지>의 연출을 맡았다. 여기에 <장례식의 멤버>(2009)로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부문에 초청됐던 신예 백승빈 감독이 새로이 합류해 과거의 에피소드 <여우골>을 연출했다. “영화 마니아가 갈 수 있는 가장 윗단계가 호러광”이라며 호러 예찬을 벌인 김곡, 김선, 백승빈 세 감독을 만나 <무서운 이야기3: 화성에서 온 소녀>(이하 <무서운 이야기3>)에 대한 비하인드부터 한국 공포영화의 사양화 현상까지, 함께 나눈 이야기를 전한다.

-김곡, 김선 감독은 첫 번째 시리즈 참여 후 <무서운 이야기3>에 복귀했고 백승빈 감독은 새로이 작품에 합류했다.

=김선_호러영화를 하는 감독 자체가 적지 않나. <무서운 이야기2>는 다른 작품 때문에 고사했다가 3편은 다시 참여했다.

김곡_과거, 현재, 미래로 에피소드들을 구성하겠다는 기획으로 제안을 받았다. 마침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SF호러를 해보고 싶던 참이었다.

백승빈_워낙 호러영화를 좋아한다. <무서운 이야기2> 제안을 받았을 땐 준비하던 장편이 있어 참여를 못했다. 이번엔 듀나의 <여우골>이라는 소설을 꼭 영화로 보고 싶던 차라 과거 부분을 맡게 됐다.

김선_미래, 과거가 선점돼서 나는 현재 이야기를 맡았다. (웃음)

-김선 감독의 <로드레이지>는 전작 <앰뷸런스>처럼 달리는 차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일상적인 공포를 극대화한다.

=김선_현대의 공포를 반영하기 위해 당대의 현상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중 보복운전 아이템을 파고들었는데 사례가 어마어마하게 많더라. 나도 밤길을 가다 이정표를 보려고 쌍라이트를 켰는데, 화물 트럭이 따라붙어 무서웠던 경험이 있다. 현대 한국 사회는 익명성의 문화가 강하고, 차를 자기 정체성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차는 가면이자 투구, 갑옷 같은 거다. (웃음) 이런 사회의 병적 증상을 투영해낸 에피소드다. 트럭 안에서의 시퀀스가 만만찮았는데, 몇몇 컷은 실제 주행 중 덤프를 올려서 찍었다. 배우가 덤프 안에 매달리는 건 세트에 트럭을 놓고 덤프를 세운 뒤 와이어를 달고 연기한 거다. 경수진, 박정민이 엄청 고생했다.

-김곡 감독의 <기계령>은 인공지능 로봇 소재를 호러로 푼 점이 참신하다.

=김곡_세계 최초의 로봇귀신이다. (웃음) 한국은 IT 산업이 발달하다보니 기계에 대한 집착이 큰데, 그만큼 빨리 갈아치운다. 1년마다 폐기되는 휴대폰 양이 엄청나다더라. 그렇게 착취되는 기계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이 보였다. 현대사회에서 인간도 일회용 부품처럼 교체되니까.

김선_인공지능도 정서가 있을 거라는 가정은, 인간이 스스로의 모습을 투영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일 터다.

김곡_때때로 컴퓨터들은 의미 불명의 오류를 일으키고 엔진은 이유 없이 급발진한다. 인간이 실수하는 만큼 기계도 실수한다면, 인간이 분노하는 만큼 기계도 분노하지 않을까. 기술이 발달하면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 같은 모습이 될 거다.

-로봇 둔코 역의 이재인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김곡_어린 친구가 신체와 마인드를 컨트롤해야 하는 기계 연기를 기막히게 하더라. 수도꼭지를 여는 건 쉽지만 잠그는 건 어려운데.

김선_리딩할 때 “재인아, 둔코가 왜 화가 난 것 같니?” 하고 묻자, 재인이가 “화가 난 게 아니라 진구랑 놀고 싶은 것뿐인데요” 하더라. 정확한 해석이었다.

-백승빈 감독은 듀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여우령>을 연출했다.

=백승빈_듀나의 영미문학적 감성을 좋아한다. 그의 글 중 영화화하고 싶은 작품이 몇 있는데, 듀나 월드의 오프닝 문단 같은 게 <여우골>이다. 향토적인 배경에 SF가 결합된 느낌이 흥미로웠다. 거기에 후반부를 각색해 작가 러브크래프트식의 결말을 섞어 덧붙였다. 원래 취향은 고딕적인 것을 좋아하고 마리오 바바, 자크 투르뇌 감독도 좋아한다.

김곡_미술이 인상 깊었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드라큘라> 같은 느낌이 있더라. ‘조선 고딕’이라고 해야 할까. (웃음)

-<무서운 이야기3>는 SF적인 색채가 가미됐고, 각 에피소드들은 인간에 대한 회의라는 주제로 수렴한다.

=김곡_SF적 색채가 입혀지는 건 시대적 요청이다.

김선_초월적 관점에서 인간을 해부대 위에 놓고 관찰하기에 회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구성이다. 공포감은 이전 시리즈보다 다소 덜할 수 있어도 메시지는 더 강렬할 거다.

-최근 몇년간 한국 영화시장에서 공포영화 장르가 사멸해가고 있다.

=김선_양극화 현상 탓이 크다. 중간 규모 영화들에 대한 판단이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보니 서브 장르는 판돈이 작아지게 된다.

김곡_여성혐오 사태도 그렇고 정치도 그렇고, 현실이 무서워 공포영화를 볼 힘이 없는 건 아닐까. (웃음) 공포영화가 현실과의 접점을 잃어버린 점도 있었을 거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가령 <올가미>(1997)같이 공감되는 현실적인 호러다.

백승빈_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 같기도 하다. 수많은 공포영화가 청춘스타들의 등용문으로 만들어지던 때, 기획의 용이성 때문에 오히려 ‘K-호러’가 재미없다는 인상을 관객에게 심어준 것은 아닐까. 저예산영화일수록 기획의 힘이 뒷받침되어야 했는데 말이다.

김곡_그렇네. 얕은 기획을 남발한 폐단일 수도 있겠다.

백승빈_최근 본 것 중엔 <팔로우>(2015)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처럼 좋은 기획과 연출력이 잘 만나면 장르영화 시장이 다시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

김선_기획도 모험심을 가져야 하지만, 투자쪽에서도 모험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이런 환경에서 <무서운 이야기> 시리즈가 세 번째까지 왔다는 건 의미가 크다.

=김선_단비 같은 존재였으면 한다.

김곡_할리우드의 <어메이징 스토리>처럼 4편, 5편도 만들어지길 바란다.

-앞으로도 공포영화를 계속할 건가. 차기작 계획은.

=김곡_한때 호러가 어렵다는 걸 깨닫고 그만해야지 싶었다. 그런데 장르가 사멸되어가면서, 사명감까진 아니어도 호러를 계속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공포영화를 더 보고 싶으니까.

김선_오기가 생기긴 한다. 곡이랑 나는 같은 배를 탔으니까. 각오는 아니고 오기다. (웃음)

백승빈_호러는 상업영화 시스템에서 내 취향을 가장해 만들어내기 좋은 장르물이다. 나는 상업영화로 데뷔할 수 있는 기회가 다소 지난 중고 신인 같은 존재라(웃음) 다른 연출자들과 차별화된 전략을 생각해봤다. 번역문학을 보면서 형성한 취향을 바탕으로, 사극과 고딕멜로 장르를 크로스오버한 영화를 찍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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