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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인터뷰] “영화제 정관 개정만 된다면 명예회복은 그걸로 됐다고 생각한다” -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전 집행위원장 인터뷰

200m.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영화의전당과 동서대학교 센텀캠퍼스 사이의 거리다. 지난 2월26일 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서의 임기를 마친 이용관 전 위원장은 현재 동서대 센텀캠퍼스 임권택영화예술대학 학장으로 재직하며 영화학자로서의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여전히 몇 걸음만 걸으면 영화제 사무국에 쉽게 닿을 수 있는 거리이건만, 지난 2014년부터 계속되고 있는 <다이빙벨> 상영을 둘러싼 부산시와의 갈등은 결국 이용관 전 위원장이 20년간 몸담아왔던 영화제와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있어 부산국제영화제와 관련된 투쟁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부산시가 업무상 횡령 혐의로 검찰 기소한 영화제 집행부의 공판이 지난 6월1일 시작되었고, 이용관 전 위원장이 연임을 내려놓으면서까지 얻으려 했던 영화제 정관 개정에 대한 약속은 아직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서대 센텀캠퍼스에서 만난 그는 “이제는 영화제와 이용관이라는 개인을 분리해야 할 때”라고 말하면서도 ‘선 정관 개정, 후 영화제 개최’라는 원칙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바람을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 공식석상에서 마지막으로 본 건 지난 4월 말 전주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서다.

=학교 생활에 충실하려 노력 중이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2학기 중에 공판도 끝나지 않을까 예상하니까, 그때가 되면 좀더 편하게 학교에 전념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그동안 영화제에 몰두하느라 학교에 소홀했던 게 늘 미안한 마음이었다. 차라리 잘됐다. 정년퇴임까지 4년 정도 남았으니 유종의 미를 거두자는 생각이다.

-지난 20년간 부산국제영화제에 몸담아왔다. 영화제 준비를 하지 않는 여름을 20년 만에 처음 맞는 거다. 영화제에 있었다면 지금쯤 어떤 업무를 볼 시기인가. 영화제를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좀 낯설지는 않나.

=영화제에 있었다면 지금쯤 협찬 유치 때문에 서울과 부산을 바쁘게 오가고 있었을 거다. 프로그래머들과 진행 상황을 계속 체크하고, 내 입장에서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계속 점검하고 있었겠지. 하지만 지금의 이 상황이 낯설게 느껴지진 않는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이빙벨> 상영 이후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그만둘 때가 됐나 하는 생각을 처음 했다. 그리고 일련의 일들을 겪으면서 영화제를 그만둘 마음의 준비를 해왔다. 원래는 올해 영화제까지 치르고 그만두자고 생각했지만 그게 잘 안 됐고, 필요하다면 밖에서 도울 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하기 때문에 별다른 아쉬움은 없다. 요즘 드는 생각은, 학교로 돌아오는 게 어찌 보면 더 자연스러운 일이지 않겠냐는 거다. 긴긴 여행에서 지금 막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다. 이 여행의 끝이 무엇일까를 생각한다. 오디세이처럼 끝날까, 아니면 오이디푸스일까, 그것도 아니면 새로운 귀향이 시작되는 것일까. 아무쪼록 해피엔딩이 되길 바라고 있다.

-지난 6월1일 부산국제영화제 전•현직 간부 네명의 첫 공판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다른 세 사람의 혐의에 대해 사전에 보고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혐의들에 대해 언제 어떻게 알게 된 것인가.

=전양준 부위원장과 강성호 전 사무국장에 대한 혐의(허위 중개수수료 계약서를 꾸며 자신의 차명계좌로 되돌려받은 혐의)는 검찰조사 과정에서 알게 됐다. 다시 말하면 검찰에 고발됐던 사안이 아니라 조사를 받으며 뒤늦게 알게 된 거다. 양헌규 사무국장의 혐의(허위 협찬 중개계약을 한 뒤 중개수수료를 지급한 혐의)는 <다이빙벨> 사건이 터지면서 그때부터 알게된 것이니, 감사원 감사에서도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감사원에서 진술을 했고 해명이 된 걸로 알고 있는데 검찰에서 또 기소를 한다는 게 의아했다.

-다른 세 간부는 혐의가 있어 기소되었지만 당신은 개인적 비리가 없다는 사실이 이미 알려졌음에도 기소가 되었다. 도의적인 책임을 묻는 거라 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억울할 수 있다.

=억울하다기보다 어이가 없다. 어쨌거나 이 일들이 전부 내가 집행위원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동안 일어난 것이니 도덕적으로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지는 앞으로 고민해야 할 사항이다. 하지만 굳이 검찰에서 나를 끼워맞추기식으로 기소해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수긍하기가 어렵다. 법정에서 간부들로부터 사전보고가 아닌 사후보고를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 최선을 다해 해명하고 정리된 다음, 이 세 사람과의 관계와 이로 인해 물의를 빚은 것에 대한 책임에 대해 고민해보려 한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영화제에 대한 마지막 도리라고 생각한다. 기소되던 날 검사들이 개인 비리가 없다는 걸 특별히 언급해줬는데, 이것만으로 개인적인 명예는 회복되었다고 생각한다.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기소되었다는 점에 마음이 편치 못하지만 앞으로 잘 해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각에서는 공판이 열린 6월1일, 서울에서 김동호 조직위원장과 강수연 집행위원장이 부산국제영화제 지키기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관계자들을 만나 영화제 개최를 위한 도움을 요청했다는 사실에 의아해하기도 한다. 영화제쪽에서 공판에 힘을 실어줄 수도 있었던 것 아닌가.

=나는 그런 걸 예상하지도 않고 바라지도 않았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랬다. 먼저 김동호 조직위원장, 강수연 집행위원장 입장에서는 영화제를 원만하게 치르려면 하루빨리 나를 잊어야 한다고 봤다. 간부들의 검찰 기소와 영화제를 분리해야지 같이 끌고 들어가면 문제가 더 복잡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제와 이용관을 분리시켜달라는 건 내 바람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 점에서는 두분이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고 생각한다. 다른 하나는, 만약 두분이 법정에 나타났다면 다시 한번 이 문제가 정치 이슈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그렇다면 김동호 위원장이 조직위원장을 맡는 의미가 흐릿해지는 게 아닌가. 그래서 개인적으로도, 일의 흐름을 봐서라도 안 오시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김동호 조직위원장, 강수연 집행위원장이 비대위를 만나기 하루 전인 5월31일, 당신도 비대위를 만나 입장을 전달했다고 들었는데 그 자리에서는 어떤 말이 오갔나.

=점심시간이 한 시간가량 되었는데 영화제 얘기는 20분 정도 한 것 같다. 그분들은 내 입장을 확인하는 자리였고, 나는 그 자리에서 두 가지 얘기를 했다. 하나는 김동호 조직위원장의 행보가 어떻게 보면 나이브하다는 거였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계가 부산국제영화제 보이콧을 철회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영화계도 명분을 잃지 않고, 영화제나 김동호 조직위원장, 강수연 집행위원장에게도 힘을 실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건 예전부터 누누이 얘기해왔던 것이지만 비대위와 공식적으로 만나 얘기해본 건 처음이었다. 또 한 가지는 영화계의 보이콧이 왜 마지막 남은 보루인가에 대한 얘기였다. 영화계가 보이콧을 하면 실제로 영화제를 열기가 불가능해진다. 레드카펫이 사라지고, 출품하는 사람이 사라지는데 어떻게 영화제를 개최할 수 있겠나. 그렇게 되면 영화제 개최 무산에 대한 공과는 부산시의 책임이 된다. 나는 부산시가 현재 굉장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조직위원장을 맡은 김동호 위원장에게도 힘이 생기는 것이고, 이 기회에 정관 개정을 빨리 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고 보는 것이다. 거기에 동의하는지에 대한 여부는 조심스러워 묻지 못했지만, 나는 내 입장을 전달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하루 사이에 한쪽에서는 영화제 보이콧을, 한쪽에서는 영화제 개최를 비대위와 논한 거다. 이러한 입장 차이는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가.

=내가 참담했던 건 5월24일 부산국제영화제 임시총회가 열리던 날의 얘기를 전해들었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김동호 조직위원장은 올해 영화제를 열기 전 정관 개정을 하면 좋겠다는 영화인들의 입장을 전달했다고 하는데, 서병수 부산시장은 ‘시간에 너무 구애받지 말자’는 식으로 나왔다는 거다. 그 말을 듣고 아찔했다. 정치적 탄압에 개인 비리 혐의까지 받으며 영화제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정관 개정만큼은 지키려고 한 건데, 정관 개정 문제가 꼬여버리면 영화인들이 보이콧까지 해가며 고수하려 했던 입장을 하나도 성취하지 못하는 게 되어버리는 거니까. 김동호 위원장님은 조직위원장을 맡은 다음 위원회를 정비하고 부산시쪽을 잘 설득해서 정관 개정에 대해 논의하면 되지 않나 하고 처음에는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런데 그동안 부산시와의 논의 과정을 돌이켜보면, 정관 개정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부산시가 영화제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너무 많다. 그래서 영화제를 열기 전에 정관 개정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선행되지 않으면 보이콧을 철회하지 말아야 한다고 누누이 얘기했던 거다.

-‘원포인트 개정’은 그동안 부산국제영화제가 추진해온 정관 개정의 핵심이다. 이 개정안의 내용 중에서 부산시장의 영화제 조직위원장 당연직을 금한다는 것 외에 현재 실현된 게 없다는 점이 많은 영화인들이 지적하는 바다.

=우리가 원포인트 개정안을 들고 나왔던 건, 부산시가 영화제와의 약속을 어겼기 때문이었다. 지난 2월17일 부산시와 약속한 게 있다. 내가 연임을 하지 않는 대신 정관 개정을 해준다고 하더라. 그런데 2월18일 서병수 부산시장이 영화제 집행위원장직에서 사퇴한다는 발표만 있었을 뿐, 정관 개정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 다시 한번 영화제가 부산시에 당한 거다. 그러면서 우리도 다소 초조해졌다. 그래서 우리 내부에서 핵심적인 사항만 추려 들고 나왔던 게 원포인트 개정안이다. 여기에는 조직위원장의 당연직에 대한 내용뿐만 아니라 조직위원회의 당연직을 없애고 상임집행위의 권한을 강화하자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나머지는 다 어디로 가고 김동호 위원장님이 조직위원장을 맡는 문제만 남은 거다.

-영화제쪽과의 입장 차이가 알려진 건 5월 초 조직위원장직을 수락하지 말아달라는 당신의 제안을 김동호 위원장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내가 그런 제안을 했던 건, 위원장님이 조직위원장직을 수락하지 않음으로써 수세에 몰린 부산시로부터 정관 개정에 대한 약속을 받아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지금 제안을 받으면 부산시의 논리에 말려들 수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보시는 건 어떻겠냐고 말씀을 드린 거였지만 위원장님은 이 기세를 몰아 조직위의 기반을 다지고 영화제를 준비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5월7일경 이런 입장 차이를 확인하고 헤어졌고, 나는 나대로 영화인들에게 이런 상황 속에서 보이콧의 필요성에 대해 호소하고 다녔던 거다. 그런데 어제 영화인들을 만나 영화제를 개최하기 이전 정관 개정을 반드시 이뤄내겠다는 김동호 위원장님의 말씀을 기사로 접했다. 그 얘기를 전해듣고 내 역할은 정말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제 기분 좋게 술 한잔을 했다.

-남은 정관 개정에 대한 논의는 영화제쪽에서 앞으로도 계속 전개되겠지만, 부산시로부터 어떠한 사과도 받지 못했고 불명예스럽게 퇴진하게 됐다. <다이빙벨> 사태의 가장 큰 희생양은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는데.

=물론 허탈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정관 개정만 된다면 이용관은 어떻게 되어도 좋다. 감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나 하나 희생해 영화제가 살아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명예회복이 아닌가 생각한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정관 개정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영화제가 다시 멋진 축제가 되어가는 모습만 본다면, 그걸로 됐다. 명예회복은 그걸로 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얼마 전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는 참석하지 않겠다. 출장을 가려고 한다”고 말했는데.

=그건 영화계가 보이콧을 철회하지 않은 상황이나 정관 개정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영화제가 열렸을 경우를 말한 거다. 이 모든 것들이 해결된다면 당연히 갈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모더레이터를 맡아도 좋을 것 같다. (웃음) 20년간 영화제에 몸담았던 정으로 얼마든지 도울 수 있다. 다만 정관 개정을 하지 않은 채 영화제를 열겠다고 하면 뒤돌아보지 않겠다는 거다.

-앞으로 어떤 삶을 계획하고 있나.

=일단은 교수로서의 임기가 4년 정도 남았으니 학생들에게 좋은 선생이 되는 데 충실해야겠지. 요즘 수업에 필요한 자료들을 보면서 내가 지금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학생들과 <오디세이아>를 함께 읽고 있는데, 이 작품이 스토리텔링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생각하며 DVD도 사고 자료도 찾아보고 있다. 또 진화론에 대한 책도 읽고 있다. <코스모스>나 <이기적 유전자> 같은 책을 읽고 있는데, 너무 재밌더라. 서사에 대한 연구를 하다가 진화론과 만나게 되었다는 점이 재미있다. 이런 즐거움을 잊고 살았었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 그리고 요즘 이런 생각도 한다. 우리 사회에는 ‘친다’라는 말이 너무 많더라. 당구 치기, 골프 치기, 고스톱 치기. 왜 ‘하기’라는 말은 별로 없는 걸까. ‘치기’가 일종의 반응이라면, ‘하기’는 능동적인 행동이잖나. 그동안 너무 ‘치는’ 삶 속에서 살아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앞으로는 ‘하기’의 삶을 살아봐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영화인들이 들으면 웃을 것 같다. (웃음) 시간이 남으니 이런 엉뚱한 생각도 종종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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