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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의 야간재생] “희망 없는 세상을 알려주마” <크람푸스>
김현수 2016-06-23

마이클 도허티 감독의 <크람푸스>는 두 가지 의미에서 잔인하다. 한 아이가 크리스마스에 지긋지긋한 가족들을 불평하자, ‘산타의 그림자’라 불리는 괴물 크람푸스가 나타나 그 아이 혼자만 남겨둔 채 모두 죽여버린다.

희망 없는 세상을 알려주는 가장 잔혹한 해결책이다. <그렘린> <사탄의 인형> <나이트메어> 등 1980년대 호러영화의 진수와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괴물들이 대거 등장해 사람들을 온갖 잔혹한 방식으로 괴롭히는 <크람푸스>는 잔인한 재미와 의미를 모두 갖춘 즐거운 가족영화다.

01 크리스마스 시즌의 대형마트에서는 옆집보다 더 행복한 연휴를 보내기 위해 주먹다짐도 불사하는 촌극이 종종 벌어진다. 주인공 맥스네 집 안 풍경도 별반 다르지 않다. 성격도 취향도 너무 다른 린다 이모네 식구들이 크리스마스를 맞아 맥스 집에 들이닥치자 난장판이 펼쳐진다. 겉으론 가족의 의무를 다하고자 모였지만 속으론 모두가 불편해하는 중이다. 맥스는 화목(하다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의 크리스마스가 마냥 그립다. 그래서 산타클로스에게 단란했던 과거를 돌려달라고 편지를 쓰지만, 매사 지저분하고 괴팍한 성격의 사촌들이 그걸 훔쳐내 놀려대자 짜증이 치솟는다.

02 평소 못되게 구느라 산타클로스의 선물을 받지 못한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가는 형벌을 주는 ‘크람푸스’는 바이에른 지역의 알파인 전설 속 괴물이다. 염소와 악마의 형상을 섞어 의인화한 이 고대 괴물이 어린 맥스의 순간적인 증오심을 놓칠 리가 없다. 크람푸스는 ‘이럴 거면 차라리 가족 따위는 없는 게 낫겠다 싶은’ 맥스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명목으로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괴물 하인들을 이끌고 그의 집 앞에 나타난다. 이들은 먼저 맥스의 집 주변을 지독한 눈보라로 고립시켜버린 다음, 어쩔 수 없이 집을 나서는 가족들을 일일이 찾아가 먹어버리거나 찢어 죽여버릴 계획을 세운다 .

03 <크람푸스>는 장르영화로서 전형적인 전개 방식을 충실하게 따르며 캐릭터와 배경 설명을 잘 마친다. 본격적으로 괴물들과의 전투가 벌어지기 시작할 때도 서스펜스를 위해 괴물 각자의 등장 방식이나 타이밍이 탄탄하게 짜여 있다. 크람푸스의 하인들이라 불리는 괴물들 각자의 등장 컨셉이나 크리처 디자인도 징그러울 정도로 독창적이어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사탄의 인형>의 처키를 떠올리게 하는 잔혹한 진저 브레드 쿠키 군단, 사람의 경정맥을 물어뜯는 날개 달린 테디 베어 드라큘라, 보아 뱀처럼 사람들을 꾸역꾸역 삼켜버리는 엽기적인 식인 피에로 등이 그것이다. 블루레이 메이킹 영상에는 괴물들의 제작 과정을 포함해 촬영을 위해 직접 조종까지 도맡은 웨타 워크숍 직원들의 상세한 제작 뒷이야기가 담겨 있다.

04 맥스의 할머니는 맥스만큼 어렸을 때 누구보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녀는 서로 사랑하지 않는 부모 밑에서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잔인한 크리스마스를 겪어야 했다고 전한다. 세상 누구도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고 오히려 뺏으려 들었던 것. ‘산타의 그림자’ 크람푸스라는 상상 속 괴물이 왜 만들어졌는지 알 것도 같다. 세상에는 밝고 화려하고 생기 넘치는 희망찬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없는 이들이 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고 가질 수도 없는 이들의 절망은 누구 때문일까. 그들은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선물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빼앗아가는 크람푸스의 실체가 어렴풋하게나마 손에 잡힐 무렵, 맥스는 크람푸스를 향해 “소원을 취소해줘!”라고 소리친다. 이 소년이 할 수 있는 건 그게 전부다.

05 <엑스맨2> <수퍼맨 리턴즈> 등의 영화 각본에 참여했던 도허티 감독은 <폴터 가이스트> <나이트메어> <다크 크리스탈> <그렘린> <런던의 늑대인간> 같은 영화들을 보며 자랐다고 한다. 블루레이의 부가영상에서는 일반판과는 다른 엔딩 장면을 볼 수 있다. 두 가지 버전으로 만들어놓고 최종 결정을 내린 모양인데 <크람푸스>의 결말이 마음에 든다면 직접 찾아보고 비교해봐도 재미있겠다. 이 결말은 영화의 정서를 훨씬 쓸쓸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잔혹한 유년 시절을 겪어낸 아이들이 보다 굳건해지길 바라는 감독의 진심과 호러 마니아로서의 ‘덕업일치’가 뒤섞인 엔딩이다. 할리우드에서조차 오랜만에 등장한 재미있는 가족 호러영화, <크람푸스>를 기꺼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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