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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전문가 3인, <써클>을 보고 (2)
2002-03-29

“굴레에 갇힌 건, 이슬람 자신이다”

처녀성에 대한 가문의 집착

이희수: 이슬람사회에서는 여성의 순수성과 처녀성이 굉장히 중시돼요. 한 여성의 순결이라는 것은 한 개인을 떠나서 한 가문과 공동체의 순결성과 직결되기 때문에, 그것이 더럽혀졌을 때는 가문의 문제가 되는 거죠. 그러면 정화권을 누가 가지고 있느냐. 아버지나 오빠, 그러니까 남자들이에요. 그런 경우에는 살해를 해도 사회적 관습으로 용인되죠. 이걸 ‘명예살인’이라고 하는데, 이슬람하고 상관없이 부족공동체의 연대의식에서 생긴 관습입니다. 이 영화에서도 파리가 남자하고 불륜을 맺어서 감옥에 갔다 왔을 때, 건장한 오빠 둘이 오토바이를 타고 쳐들어가죠. 보통 죽이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아버지의 간곡한 만류로 쫓아내는 걸로 마무리되죠. 우리 관객들은 이해가 잘 안 될 거예요. 왜 이게 죄가 되나, 하고…. 이슬람권에서는 결혼식날 처녀성을 확인하는 관습이 있어요. 첫날 시트에 묻은 신부의 혈흔을 다음날 아침 모인 사람들 앞에서 친정어머니가 보여주는 거죠. 그렇게 해서 합법적으로 결혼을 인정받아요. 지금 터키만 해도 완전히 서구화되어 가면서도 시골에는 그런 게 남아 있죠. 어때요, 북아프리카는?

최진영: 획일적으로 볼 순 없지만, 단지 그쪽에 국한한다면, 제가 유학할 때 고등학교 선생님이 한분 계셨어요. 대학원 박사과정에 같이 있던 친구였죠. 근데 이 친구가 이혼을 했어요. 뭐 한달 전에 결혼한 놈이, 내가 결혼식에도 갔었는데, 이혼했다고 질질 짜고 있는 거야. 그래서, 너 왜 그러냐, 하니까 하는 말이, 자기 부인이 처녀가 아니었다는 거야. 저는 그때 처음 느꼈어요. 아니 아무리 그렇더라도 어떻게 이혼까지 가능하냐. 근데 자기는 괜찮더라도 부모들이 가만히 안 있는다는 거야. 개인적으로는 걔가 사랑을 하지만 사회적인 관습이 강하구나. 개인의 의지를 앞지르는구나, 하는 걸 알았죠. 그래서 그렇게 이혼하고서 본인은 울고 있는 거예요. (웃음)

이희수: 사전에 젊은 남녀끼리 합의가 되면 공동체의 그런 의식을 피해가기 위해서 친정어머니가 몰래 양피를 넣어줘요. (웃음) 복주머니에다가. 그러면 아침에 나올 때 그걸 바늘로 꼭 찔러서 들고 나오는 거죠. 그러니까 관습법은 지키되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은 또 생기는 거라구요. 이게 과도기적인 현상인데, 참 인류학적으로 너무 재밌어요.

최진영: 남아선호풍습 얘기를 좀 해볼까요. 이 영화도 처음 딸을 낳은 산모 이야기부터 시작을 하는데.

이희수: 아랍 말에 남아가 행복이다, 라는 속담이 있어요. 가문을 승계하려면 남자가 필요하니까요. 영화에서도 딸을 낳아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여자가 나오는데, 실제로 법적으로는 그럴 수 없지만 관습적으로는 그럴 수 있어요. 이슬람사회는 이슬람종교 이전 유목부족사회였죠. 여성의 가치가 높으려면 여성의 노동생산성이 높아야 하는데, 농경사회에서는 여성이 얼마든지 밭에 나가 일할 수 있잖아요. 근데 유목사회는 목축과 사냥과 교역, 그게 안 되면 전쟁과 약탈을 통해서 필요한 물자를 공급받는데, 목축·사냥·교역·전쟁·약탈 어느 것에서도 여성이 생산활동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가 봉쇄돼 있거든요. 그러다보니까 여자는 2세생산을 위한 최소한의 인원만 필요한 것이고, 그래서 이슬람 이전 부족사회 때는 여아살해 관습도 있었죠. 이슬람 이후에는 금지됐지만. 하지만 지금도 남아선호사상이 절대적으로 많이 남아 있어요. 이슬람 종교화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유목사회 전통이 아직 영향을 미치는 거죠. 우리는 농경사회지만 유교사상 때문에 남아선호사상이 있는 것이고.

최진영: 어떻게 보면 또 역설적으로, 딸이 많으면 부자가 된다는 생각도 있어요. 결혼할 때, 남자가 신부 집에다가 신부값을 주는 게 있었거든요. 옛날에는 양도 주고 낙타도 주고. 요새는 법적으로 일정 액수를 정해놨어요, 국가마다. 그래서 아랍에서는 잘 키운 딸을 많이 데리고 있으면 돈을 많이 벌 수도 있어요. 딸이 정말 살림밑천이죠.

문은영: 결혼지참금은 요즘에는 형식적인 것 같아요.

이희수: 일부다처제는 비이슬람권이 가장 자주 오해하는 사항이죠. 이슬람에서 다처는 권장한다기보다는 문호가 열려 있는 거죠. 실제로 우리가 생각하기로는 이슬람에서는 다처를 굉장히 많이 할 것 같죠. 하지만 지금 다처를 제일 많이 하는 나라가 사우디아라비아인데, 전체 기혼자 중 3퍼센트 미만이거든요. 실제로 다처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거죠. 다처를 하는 가장 주된 이유가 첫번째 부인이 아들을 갖지 못했을 땝니다. 그것도 일부다처의 95퍼센트 정도가 일부이처고, 삼처 사처 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죠. (웃음) 한 남자가 여러 아내를 가진다 해도, 우리처럼 정실과 첩의 관계가 아니고 모두 정실부인입니다. 법적으로 상속지분이 동등합니다. 자식들 역시 적자와 서자의 구분 없이 모두가 적자입니다. 두번째 세번째 부인의 자식들이 사회에 진출하는 데 하등의 편견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일부다처가 전체적으로 없어져가는 추세입니다. 튀니지, 레바논, 터키 같은 곳에서는 다처를 법으로 금해버리기도 했죠. 이라크는 일부다처가 금지됐다가 최근에 다시 허용됐어요. 전쟁 이후에 전쟁 미망인들이 너무 늘어났기 때문이죠. 법으로 예전에 다처를 없애버렸는데 그런 상황에서 여자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매춘과 장기매매를 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 된 거예요. 그 상황에서 여성을 구제하고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일부다처를 허용하는 방법밖에 없었던 거죠. 이렇게 다처는 시대적인 상황과 연관시켜서 생각해야 합니다.

여성의 꿈, 희망, ‘굴레’

문은영: 이 영화는 국내개봉명이 써클인데, 영어로 써클은 원이라는 의미와 순환이라는 의미가 있잖아요. 이란어 원제로는 ‘더 예레’ 인데, 순환이라는 의미보다는 원, 동그라미라는 의미가 더 강조되는 단어예요.

최진영: 아랍어도 ‘다 이라’라 하는데 원이라는 뜻입니다.

문은영:: 그 ‘더 예레’라는 게 이 영화에서는 굴레가 아닐까, 싶어요.

최진영: 음, 맞습니다. 굴레라고 볼 수 있겠죠.

문은영: 릴레이처럼 스토리 스토리가 이어지는 형식이, 그 이음새가 너무 깔끔하고 자연스러운 게 영화의 매력인 것 같아요. 마치 여러 여성의 이야기가 나오지만 한 여성의 이야기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처음에 가장 순수했던 나르게스라는 여성의 꿈과 희망이 나오다가 점점 분위기가 절망적인 분위기로 흐르잖아요. 여러 여성의 이야기지만 한 여성이 겪는 사회적 굴레에 대한 이야기로 저는 받아들였거든요. 게다가 최종적으로 그 여성들이 결국 한 감옥에 모이게 되니깐요.

이희수: 자파르 파나히가 몇살이죠?

문은영: 60년생이에요. 젊죠.

이희수: 젊으니까 그렇게 하는 것 같아요. 키아로스타미만 해도 좋은 영화를 만들겠다는 의지는 있지만 체제 바깥을 벗어나지 못하니까 포커스를 아이들한테 맞춰서 그냥 영상미를 가지고 승부를 했는데, 파나히만 해도 젊은 세대니까….

문은영: 젊은 세대고 혁명세대죠.

이희수: 그러니까 용감하게 할 수가 있는 거죠. 앞으로 이란영화의 방향을 결정해주는 하나의 방향타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당장은 이란 국내에서 상영이 금지돼 있지만, 아마 개혁파 쪽에서는 이 정도는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을걸요. 다만 보수파들의 반대 때문에 형식적으로 상영금지를 시킨 걸예요. 사실 이란 사회가 이 정도는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거든요.

문은영: 정부가 영화제 출품을 허용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변화죠. 현재 대통령 하타미가 대통령 되기 전에 홍보장관이었거든요. 대통령 선거에 나왔을 때 공약으로 문화적인 자유를 외쳤어요. 그게 하타미가 대통령이 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죠. 대통령이 된 뒤 하타미는 지금 개혁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하메네이 같은 보수적인 지도자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이란 내의 개혁파와 보수파의 갈등이 이 영화의 상영금지처분 같은 방식으로 나타나지 않나 싶습니다.

이란 민중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희수: 왜 이란 영화가 많은 이슬람권 영화 중에서 우리에게 많이 들어와서 감동을 줄까, 그런 의문도 가능해요. 제가 볼 때 영화라는 것은 그야말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의 압축이거든요.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죠. 이란은 페르시아라는 위대한 문화의 토양이 아주 탄탄히 뿌리를 내리고 있고, 팔레비 시절부터 중동 내에서는 가장 교육수준이 앞서 있고 민도가 높은, 지식기반이 뛰어난 나라였거든요. 그런 배경들이 오늘날 이란영화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봐요.

최진영: <하얀 풍선>이 어린 소녀가 어떤 난관에 부딪치는 일화를 그렸는데, <써클>은 그것을 훌쩍 넘어서서 여인들을 다뤘잖아요. 그 다음에는 어떤 작품으로 자파르의 영화가 도약할 것인지 궁금해요. 그리고 이 사람의 영화가 앞으로 이란사회 내에서 얼마나 수용되고 또한 계속 그런 예술세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 또한 앞으로 이란 민중들, 즉 사회구성원들이 어떻게 이 사람의 영화를 받아들일지 기대가 됩니다.

문은영: 이란사회가 여성을 상징으로 부각시키는 경우가 많거든요. 혁명 전후를 통해 여성의 베일문제를 마치 근대화의 상징인 양 혹은 이슬람화의 상징인 양 민감하게 반영했듯이요. 이 영화에서도 여성문제는 우리가 어떤 상징으로 받아들여야지, 단지 여성의 문제로 국한시킨다는 것은 이란사회 전반을 이해하는 데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봅니다. 끝으로 아직도 다분히 폐쇄적인 이란의 사회분위기에서 사회문제를 용감히 영화화한 감독의 용기와 작품성에 찬사를 보냅니다. 정리 최수임 sooeem@hani.co.kr▶ 이슬람 전문가 3인, <써클>을 보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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