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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전문가 3인, <써클>을 보고 (1)
2002-03-29

“굴레에 갇힌 건, 이슬람 자신이다”

<하얀 풍선>의 자파르 파니히 감독의 신작 <써클>이 상영중이다. 금붕어를 갖기까지 어린 마음에 온갖 고생을 했던 티없는 소녀가 어느새 이렇게 자랐나. 어두운 뒷골목, 이번에는 힘겨운 삶 속에서 차도르 속 두 눈을 부릅떠야만 하는 여인네들의 이야기다. 그녀들이 원하는 건 단지 자유롭게 들이마시는 담배 한 모금, 사랑하는 이와의 사랑, 고향으로 가는 버스표 한장이다. 그러나 그녀들에게 사회는 너무 가혹하다. <써클> 시사회에서 함께 영화를 본 이슬람 전문가들 셋이 모여 영화이야기를 나누는 자리. 좌담은 서울 한 호텔의 모로코풍 레스토랑에서 있었고 점심 메뉴는 쿠스쿠스였다. 이야기는 영화 안에 보이는 것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들이 모두 화제가 되었고, 참석자들은 쿠스쿠스의 향처럼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것들을 조금이나마 가까이 느끼게 해주려 노력했다.

어느 나라에나 뒷골목은 있다. 생소한 나라의 뒷골목은 더욱 생소하다. 그곳을 보여주는 생소한 영화 <써클>. 원제로는 <더 예레>라는 이 영화를 잘 이해하기 위하여, 이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본다. 편집자

대담자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한국 이슬람학회 회장, 터키, 튀니지에서 수학, 국립이스탄불대학교 역사학박사)

최진영: (튀니지 국립대학교 언어학박사. 외대 아랍어과 강사. 튀니지, 모로코, 수단, 요르단 등 북아프리카에서 9년간 아랍언어학 연구)

문은영: (숙대 정치외교학 박사, 외대 중동학 및 이란사 강의. 1977~1984년 이란 거주)

문은영: 제가 어제 영화관에서 나오는데 어떤 분이 저한테 물어보는 거에요. 실제로 이란의 상황이 이래요? 이란 여성들이 이래요? 하고. 이 영화는 현재 이란에 존재하는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를 잘 묘사하는 영화임에는 틀림없어요. 하지만 이슬람이나 이란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영화에 나타난 사회적 문제를 이란 전체 여성의 문제로 확대한다면 이란 사회를 잘못 이해할 우려가 있지요. 현재 이란은 중동에서 이슬람적 원칙을 제일 강하게 표방하는 나라이긴 하지만, 또 개방 욕구를 가장 강하게 표출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해요. 이란혁명(1979년 2월11일 팔레비왕조를 무너뜨리고 이슬람원리주의에 입각한 이란이슬람공화국을 탄생시킨 혁명-편집자 주) 초기에 여성의 사회참여를 억제했던 분위기는 있었지만, 현재는 그런 분위기에 반발해서 여성 문제를 재고하려는 분위기가 팽창되고 있는 상황이죠. 진보적인 정치인의 등장이라든지 이슬람주의 여성운동가들의 활발한 운동으로 이란에서의 여성활동은 여타 다른 중동지역에 비해서 활발한 편이거든요.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이 영화는 이란 안에서도 뒷골목, 혹은 소외된 여성층을 다룬 거라고 봐야 해요.

이희수: 그렇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정권이 이슬람 이데올로기란 이름으로 극악한 여성억압정책을 펴지 않았어요? 남자하고 눈이 마주쳤다고 해서 공개석상에서 태형을 가하고, 책을 손에 잡고 있었다고 해서 매질하고…. 이런 극악한 억압이 이슬람 이름으로 행해지는 한편, 이슬람권 국가들에서 여성이 국가원수로 선출되기도 하죠. 인도네시아의 메가와티, 파키스탄의 부토, 터키의 탄수 칠레르를 비롯하여 방글라데시에서도 여성수상이 등장했죠. 탄수 칠레르는 소위 이슬람권 페미니스트의 대표주자인데 오히려 남편이 아내의 성을 따르도록 요구할 정도예요. 이란만 해도 지금 부총리가 여자이고 여자 국회의원이 비일비재하게 등장하는데, 그런 한편 이 영화는 딸을 낳았다는 이유로, 남자동행 없이 외출했다는 이유로, 규정된 장소에서 차도르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담배를 피웠다는 이유로, 남몰래 한 남자를 사랑했다는 이유로,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들이 감옥에 가야 하는 수렁을 묘사하고 있어요.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영화는 이란에 아직 남아 있는 전통적인 관습을 드러내서 사회를 고발하는 효과는 뛰어나지만, 이란 전체가 가지고 있는 여성의 현실이라든지 이슬람 이데올로기의 현실적용 문제에서는 보편성을 상실했을 소지가 많아요. 아마 그점이 이란이 이 영화를 바깥에 상영하지 못하게 막고, 본국에서도 상영금지시킨 게 아닌가, 이렇게 봐요. 이란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개방돼 있고, 아직 걸림돌이 많지만 분명하게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면서 개방 쪽으로 나가고 있거든요. 이 영화에 나타나 있는 여성억압적 현실도 이슬람 종교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여성의 교육문제, 민도의 문제, 전통사회의 악습문제로 봐야 합니다.

최진영: 동감입니다. 제가 오늘 오다가 라디오에서 뉴스를 들었는데 우리나라 여성교육개발원에서 발표한 성별에 따른 임금격차 통계가 나왔어요. 남자가 100을 받으면 여자가 68을 받는다는군요. 남녀간의 차별은 어느 사회에나 있지만, 다만 이슬람 사회는 우리가 접하지 않은 세계이기 때문에 그런 남녀간의 격차가 너무 생소하게 느껴지고, 또 우리와 비교할 때 너무 차이가 난다고 느껴지는 것 같아요.

베일을 쓰라는 강제, 베일을 쓸 권리

최진영: 담배 피우는 문제에서도, 같은 아랍국가들 안에서도 차이가 많습니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북아프리카의 모로코나 튀니지 같은 데서는 여자가 담배 피는 게 전혀 문제가 안 돼요. 강의시간에 필 수도 있고 나와서도 남자랑 같이 필 수도 있고….

이희수: 제가 이스탄불에 있었을 때는, 터키가 많이 개방된 나라긴 하지만, 여학생이 담배를 물고 교수보고 불 붙여달라고 하는 일도 있었거든요. 큰 문화적인 충격을 받았죠. 우리 사회에서도 그 정도의 행태는 받아들이지 않는데, 어떻게 이슬람 사회에서 그럴 수 있는지.

문은영: 근데 영화에서 금연은 상징적인 것 아닐까요? 저는 이란에서 담배 때문에 불편을 겪는 사람을 못 봤거든요. 단지 자유에 대한 상징으로, 억압적 상황을 드러내는 도구로 영화에 나오는 것 같아요. 저는 77년 팔레비 체제 때 이란에 가서 이란혁명을 직접 경험했어요. 팔레비 체제 때는 정부가 추진한 일종의 서구모방 근대화정책으로 여성들에게 강제로 베일을 벗게 했어요. 그러다가 혁명이 나고 이슬람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베일을 쓸 것을 강요했죠. 베일을 벗었던 여성들이 다시 베일을 쓰면서 고충을 겪었어요. 사실 베일착용을 반대하는 여성도 있지만, 베일의 편리함 등 자기들만의 문화로서 베일문화를 강조하는 부류도 상당합니다. 그러니까 베일을 벗고 싶어하는 부류와 베일을 고수해야 한다는 부류가 나뉘어 있지요. 최근 들어서 베일 강요가 이슈로 등장한 것은, 베일착용 자체보다도 그것을 정부에서 강요한다는 것이에요. 베일착용은 그 사람들의 문화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거부감은 별로 없어요. 단지 강제정책에 반발하는 거죠. 현재 이란에서는 공공장소에서 꼭 베일을 착용해야 해요.

이희수: 바로 옆에 있는 터키에서는 정반대예요. 공공장소에서는 베일을 못 쓰게 돼 있어요. 예를 들어서 학생이 베일을 쓰면 교문 출입이 안 돼요. 결국 베일이라는 것이 이슬람의 상징이기 때문에, 베일 쓰는 행위를 서구화 혹은 현대화 정책을 펴는 정부에 대한 저항세력의 정치적 연대행위로 해석하는 거죠. 그러니까 베일을 벗겨야만 서구화 현대화를 이룬다, 라는 견해에요. 그래서 터키 같은 곳에서는 오히려 지적 엘리트 계층들이 베일을 많이 써요. 베일을 씀으로써 자기의 종교적인 정체성이나 전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거죠. 지금 그런 식으로 베일을 쓰는 사람들이 오히려 늘어나고 있어요. 이슬람 세계는 이렇게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어요. ▶ 이슬람 전문가 3인, <써클>을 보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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